“아줌마, 나 고슴도치 한 마리 그려줘.”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내가 무슨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고슴도치를 그려 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에게 무언가를 그려 준 기억조차 거의 없었다.
그런데 병실 침대에 누워 있던 아이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내게 종이와 펜을 건넸다.
나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고슴도치를 그렸다.
엉성했다.
내가 봐도 고슴도치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했다.
몸은 둥글었고, 얼굴은 어색했고, 가시는 제멋대로였다.
아이에게 그림을 내밀었다.
아이는 잠시 그림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아.”
나는 웃었다.
“그래? 그럼 다시 그려 줄게.”
두 번째 고슴도치를 그렸다.
이번에는 조금 더 신경을 썼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고슴도치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의 모양도 고치고, 가시도 조금 더 촘촘하게 그렸다.
그림을 다시 건넸다.
아이는 또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아니야.”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떤 고슴도치인데?”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고슴도치.”
그 말을 듣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까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닮게 그리는 것.
예쁘게 그리는 것.
누가 보아도 고슴도치라고 알아볼 수 있게 그리는 것.
그런데 아이가 원한 것은
그런 고슴도치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는 그림을 보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림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좋아하는 고슴도치.
자기 마음속에만 있는 고슴도치.
나는 세 번째 고슴도치를 그렸다.
이번에는 잘 그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좋아할 만한 표정을 생각했다.
조금 작게 그리고,
조금 둥글게 그리고,
가시는 너무 날카롭지 않게 그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건넸다.
아이는 한참 그림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그림을 받아 들고
가만히 웃었다.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내가 고슴도치를 그린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 한 조각을 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고슴도치 한 마리가
훗날 내가 쓰게 될 이야기의 시작이 될 줄은.
더 몰랐다.
그 고슴도치가
내가 소설 작가가 되는 길의 첫 번째 질문이 될 줄은.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내가 소설 작가가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글을 쓰는 사람을 동경한 적은 있었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오래 바라보았고,
마음에 남는 바카라을 만나면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하지만 그것과 내가 쓰는 일은
전혀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을 만나고,
학교에서 하루를 보내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때로는 상처받고,
또 때로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며 살아가는 사람.
그러다 어느 날,
뜻밖의 사고를 겪었다.
삶의 속도가 갑자기 멈췄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의 말투.
침묵의 길이.
누군가의 표정.
그리고 아이의 작은 부탁 하나.
“고슴도치 한 마리 그려줘.”
나는 그 부탁을 받고
처음으로 오래 바라보았다.
사람의 마음을.
그 뒤로 나는 종종 생각했다.
작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글을 잘 쓰는 사람일까.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일까.
많은 바카라을 읽고,
멋진 문장을 만들어 내는 사람일까.
한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조금씩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작가는 어쩌면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것을
한 번 더 바라보는 사람이 아닐까.
아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누군가가 왜 갑자기 침묵했는지.
웃고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지.
상처를 가진 사람이
왜 어떤 날에는 유난히 작은 말에도 흔들리는지.
나는 그런 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야기는
상상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한 사람을 오래 바라본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세 번째 고슴도치를 그린 날 이후에도
나는 한동안 그 일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슴도치는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가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다가도 생각났다.
‘그 아이가 원했던 고슴도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왜 세 번째 그림에서야 아이가 좋아하는 고슴도치를 그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그 질문 앞에서 멈춰 섰다.
어쩌면 아이는
고슴도치를 그려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때부터였다.
내가 사람의 마음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훗날 나는
그 고슴도치에게 이름을 붙였다.
별가시.
가시는 그대로였다.
날카롭고,
때로는 누군가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가시.
하지만 그 가시 끝에는
작은 별빛이 맺혀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쓰면서
한 가지를 배웠다.
상처는 없애야만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어떤 상처는
그대로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가시가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길을 밝혀 주는
작은 별빛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내가 작가가 된 시작은
어쩌면 첫 문장을 쓴 날이 아니었다.
세 번째 고슴도치를 그린 날이었다.
한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기 시작한 날.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보는 것’과
‘상대가 느끼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그날 이후 나는
사람을 바라보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
그리고 이야기를 쓰는 법도
조금씩 배워 갔다.
아직은 몰랐다.
언젠가 내가 만든 이야기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그림이 되고,
문장이 되고,
한 권의 바카라이 될 줄은.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내가 오히려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될 줄은.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