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다시
첫 번째로 그린 것은 평범한 고슴도치였다.
등에 가시가 촘촘히 돋아 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모습. 하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두 번째는 가시를 지우고 다시 그렸다. 둥글고 부드러운, 털뭉치 같은 고슴도치였다.
연약하고 여린 것을 그리면 아이 마음에 들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이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세 번째는 반대로 가시를 한껏 키워 그렸다.
크고 날카로운,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것 같은 고슴도치였다.
이번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아이는 그림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줌마는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네."
그 한마디가 나를 멈춰 세웠다.
보통의 고슴도치, 연약한 고슴도치, 무서운 고슴도치
— 나는 세 번 모두 겉모습만 바꿔가며 그렸을 뿐이었다.
아이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종이를 다시 펼쳤다.
이번엔 고슴도치를 그리지 않았다.
나무를 그렸다.
더 자세히 말하면
나무 밑동 굴을 그렸다.
그 안에 편안히 몸을 웅크리고 쉬고 있는 고슴도치를.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서는 가시를 세우지 않아도 되는,
아무도 찌르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다.
나무 밑동 굴에는 구멍이 세 개 있었다.
숨 쉬는 구멍이라고, 나는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안이 아무리 아늑해도 숨은 쉬어야 하니까.
완전히 닫힌 곳이 아니라, 조금은 바깥과 이어져 있는 곳.
아이는 그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 공주는 그제야 마음을 열어준 듯했다.
아이의 마음을 그림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
— 내 생각대로 그리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그날 나는 처음 배웠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배움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원고를 써놓고 투고 기간이 길어지자,
자가출판을 하게 되면 삽화는 내가 직접 그리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글을 그림으로 나타내기 위해 AI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다.
사용할수록 내 마음같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캐릭터가 자꾸 변했다.
설명하고, 그림이 나오고, 고민하고, 수정하고, 다시 설명하고.
설명하고, 그림이 나오고, 고민하고, 수정하고, 다시 설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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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나 삽화 언제 다 만들지 생각했다.
그래서 플랫폼의 삽화디자이너를 선택해서 물어보았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