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유, 우리 남편 38년 만에 드디어 땅으로 내려오셨네
38년 신어왔던 키높이 구두를 버리다.
하지만 뭐 어떤가.
키는 잃었어도 발목을 얻었으니, 이 정도면 꽤 훌륭한 노후 준비다.
키가 작았다.
온라인 게임생활을 시작하면서 수제화 가게에 가서 키높이 구두를 맞춰 신었다. 그냥 조금 높아지는 정도가 아니었다. 실제 키를 6센티미터 이상 올려주는, 말하자면 내 젊은 날의 신문명이었다.
처음 그 구두를 신고 나갔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평소 나보다 키가 컸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해 보였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나보다 작아 보이기도 했다. 세상이 갑자기 조금 낮아진 것 같았다.
주위에서도 말했다.
“어, 키가 좀 커졌네?”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듣기 좋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흐뭇했다. 구두 밑창 아래에 자존심을 숨겨놓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 구두는 대단했다.
한쪽만 신고 서 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양쪽 높이가 맞지 않아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걸으면 절름발이처럼 되었다.
그렇게 38년을 신었다.
평균 2년에 한 켤레를 신었으니, 15켤레 이상을 소비한 셈이다.
나는 같은 높이의 자존심을 계속 새것으로 갈아 신고 다닌 셈이다.
키높이 구두를 신다 보니 출근 복장도 자연스럽게 정장이 되었다.
구두를 가리기에는 정장바지가 제일 좋았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나는 늘 정장 차림이었다.
남들은 내가 옷을 깔끔하게 입는다고 했다.
“누가 매일 이렇게 코디를 해 줘요?”
그럴 때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내가 사다 놓으면, 나는 그냥 그걸 입습니다.”
공은 늘 아내에게 넘겼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아내가 와이셔츠도 사고, 넥타이도 골라 주고, 계절이 바뀌면 양복도 챙겨 주었다.
무엇보다 와이셔츠 다리느라 참 수고가 많았다.
그런데 속사정을 말하자면, 그 깔끔한 정장 차림은 키높이 구두를 가리기 위한 꼼수였다.
참 세상이 재미있다.
꼼수가 내 패션을 결정했고, 그것이 어느새 내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정장 잘 입는 사람으로 기억했지만, 나는 사실 구두 밑창을 들키지 않으려던 몸부림이었다.
그렇다고 정장이 아주 불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래 입다 보니 편해졌다.
아니, 편하다기보다 익숙해졌다.
아침에 와이셔츠를 입고 단추를 채우고, 바지를 입고 벨트를 매고, 구두를 신는 순서가 내 출근 의식이 되었다. 젊은 날의 꼼수가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된 것이다.
그런데 올봄부터 발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구두가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발목을 붙잡았다. 오래 걸으면 발목 안쪽이 묵직하게 아팠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 몸이 약해진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젊은 날에는 나를 높여주던 구두가 이제는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예전에는 자존심이었다.
조금 과장하면 자랑이기도 했다. 그 구두를 신으면 세상 앞에서 덜 작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발목이 아프기 시작하자 그 자존심도 신발장 안에서 힘을 잃었다. 자존심도 관절을 이기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38년을 함께한 키높이 구두를 과감하게 버렸다.
버리려니 조금 미안했다.
구두 한 켤레를 버리는 일이었지만, 어쩐지 젊은 날의 체면 한 조각을 검은 봉투에 넣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었다.
처음에는 허전했다. 키가 낮아진 만큼 세상도 조금 높아 보였다. 사람들도 괜히 커 보였다.
그런데 몇 걸음 걷자 발목이 먼저 알았다. 이상하게 가벼웠다. 발이 땅에 솔직하게 닿는 느낌이었다.
정년을 1년 남겨둔 오늘, 나는 정장에 운동화를 신고 출근했다.
현관을 나서는데 내 뒷모습을 보던 아내가 한마디 던졌다.
“어유, 우리 남편 38년 만에 드디어 땅으로 내려오셨네.”
맞는 말이다.
38년간 구두 위에 올려놓았던 자존심을 내려놓으니 다리가 좀 짧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키는 잃었어도 발목을 얻었으니, 이 정도면 꽤 훌륭한 노후 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