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마기는 처음부터 다정하지 않았다

산다는 건 어찌 보면 그저 내 몸 하나 편하자는 일인지도 모른다

by청산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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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거창한 박수소리보다 내 척추의 신음이 더 크게 들리는 나이.

인류사란 결국 내 몸뚱이 하나 편해지려는 처절한 투쟁사였던 것이다.


신혼 초 우리 집에는 안마기가 하나 있었다.

바닥에 눕혀 놓고 사용하는 납작한 안마기였다.

어느 날 집에 오신 장인어른이 그 위에 누워 보시더니 한참 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만 천천히 끄덕이셨다. 그 침묵은 최고의 찬사였다.

며칠 뒤, 그 안마기는 처갓집으로 갔다.


나는 원래 홈쇼핑 광고를 잘 믿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화면 속 사람들이 안마의자에 몸을 맡긴 채 너무도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세상 모든 근심을 등 뒤로 밀어낸 자들의 평온함. 저렇게까지 좋을 일인가 싶다가도, 저 정도 호사는 나도 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보상 심리가 슬그머니 올라왔다.

결국 나는 덜컥 안마기를 렌탈했다.

작년의 일이다.


배송된 기계의 설명서는 친절했다.

'천천히 사용하십시오. 몸 상태에 맞게 강도는 약하게 시작하십시오.'

문장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안마기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기계에 등을 기댄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왔다.


“으악!”


안마기를 처음 사용해 본 사람은 안다.

이 거대한 기계는 결코 처음부터 다정하지 않다. 차라리 인간 고문 기구에 가깝다.

등뼈를 따라 롤러가 지나갈 때마다 굽이굽이 살아온 세월이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온몸에서 항의가 올라왔다.

"혹시 이거 불량 아냐? 잠깐, 불량은 기계가 아니라 내 몸인가?"


안마기는 아무 말이 없었다.

드르륵,

위이잉,

툭툭.

무정한 기계음만 등 뒤로 흘렀다.


이어서 맑은 물소리와 숲속 새소리가 들려왔다.

티베트 어디쯤에서 흘러나올 듯한 명상 음악이었다.

등은 아픈데 귀는 평화롭다니, 참으로 이상한 현대 문명의 모순이다.

육체는 고문을 당하고 있는데 귀에는 힐링 음악이 흐른다.


온열 기능이 켜지자 등허리가 따뜻해졌다.

인간이란 참 단순하다. 몸은 아프다면서 온도가 주는 안락함에 고통을 잊는다.


일주일쯤 지나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몸살을 앓을 것 같던 통증이 묘한 시원함으로 바뀌었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내리는 롤러에 몸이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 몸이 기계에 적응한 것이다.

아니, 진화라고 해야 할까.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길들여진다.

처음엔 비명을 지르던 몸뚱이가 며칠 만에 “어 시원하다”는 탄성을 내뱉는다.

몸은 철학보다 빠르게 현실과 타협한다.


산다는 건 어찌 보면 그저 내 몸 하나 편하자는 일인지도 모른다.

좋은 집도, 좋은 차도, 돈도, 명예도 전부 마지막에는 이 낡아가는 육신의 안락함으로 환원된다.


안마기 하나 들여놓고 행복해하면 그것도 인생이다.

내 허리 하나 덜 아프게 만드는 일이 고대 문명의 발생보다 더 절실하고 위대하게 느껴진다.

세상의 거창한 박수소리보다 내 척추의 신음이 더 크게 들리는 나이.

인류사란 결국 내 몸뚱이 하나 편해지려는 처절한 투쟁사였던 것이다.


주말 오후. 내가 슬그머니 안마기에 몸을 눕히려는데 아내가 한마디 한다.

“나 지금 하려고 하는데.”

“당신 아까 했잖아.”

“언제?”

“아침 먹고.”

“그건 오전 거고.”

안마에도 오전과 오후가 있다는 새로운 규칙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하루의 고단함을 먼저 내려놓겠다고 옥신각신하는 아내가 있고,

기꺼이 등을 내어줄 듬직한 고문 기구가 거실 한가운데 버티고 있다.


행복하다.

이만하면 꽤 괜찮은 신문명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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