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인켈, 볼륨을 올리다.

다시 울리는 나의 청춘, 시간을 머금다.

by청산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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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켈은 오래된 오디오가 아니다.

장인어른이 내게 맡긴 믿음이고, 우리 부부가 함께 견뎌낸 세월이며, 잊고 살았던 젊은 날의 생명력이다.


1991년, 장인어른은 인켈 오디오를 사주셨다. 결혼 선물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그 시절의 오디오는 집 안의 자존심이자 가장 호사스러운 가전이었다. 어지간한 살림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아낸 그 물건은, 사위에게 건네는 말없는 신뢰였다.

“내 딸 잘 부탁하네.”


인켈 오디오를 품기에 신혼집은 너무 겸손했다. 스피커에서 소리를 한 번 뽑으면 집 전체가 '웅웅' 울린다. 벽이 떨고, 바닥이 떨고, 내 마음도 같이 떨렸다. 그것은 음악이기보다 일종의 진동 안마기에 가까웠다.


그 시절 아파트는 참 정직했다. 내가 뭘 듣는지, 언제 청소기를 돌리는지, 부부싸움의 주제가 무엇인지까지 이웃과 공유했다. 요즘은 개인정보 보호가 중요하다지만, 그 시대의 아파트 벽은 개인정보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얇은 벽 하나 사이로 우리는 서로의 삶을 무료 구독했다.


좋은 음악이 나오면 소리를 높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일 거다. 명곡을 작게 듣는 게 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손이 볼륨에 닿는 순간, 아랫집 천장이 떠오르고, 윗집의 발소리가 떠오르고, 옆집의 인내심이 떠오른다.

우리는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살지만, 그 벽 너머의 사람은 얼굴도 모른다. 대신 그 사람의 발소리, 물소리, 의자 끄는 소리는 안다. 마음은 멀고 소리는 가깝다. 정은 닿지 않는데 소리는 너무 닿는다.


우리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웃음도 줄이고, 음악도 줄이고, 아이들에게는 “뛰지 마”를 하루에 몇 번씩 말했다.


아이들이 현관을 구르며 남기고 간 자전거 바퀴 자국과 함께, 거실 바닥을 쿵쿵 울리던 유년의 시간도 지나갔다. 아이들의 성화와 이웃의 눈치를 받아내느라 우리 부부의 마음에는 잔잔할 날이 없었다. 세상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고, 얇은 벽 틈새로 눈치를 보며 납작하게 엎드려 살아온 세월이었다.

마음 놓고 오디오 한 번을 크게 틀지 못했다.


아이들의 손때에 볼륨 노브는 헐거워졌고, 오디오는 어느새 먼지를 뒤집어쓴 채 거실 한구석의 애물단지가 되었다. 세상의 눈치를 보며 사느라, 정작 내면의 악기는 스위치마저 잊힌 채 늙어갔다.


작년에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를 왔다. 집이 넓어지니 마음도 조금 넓어졌다. 낡은 인켈을 꺼내 서재 한쪽에 설치했다. 묵직한 본체와 거대한 스피커를 서재 바닥 한편에 든든하게 안치하고, 뻣뻣한 전원선을 더듬어 콘센트에 꽂았다. 손가락 끝에 닿는 투박한 플라스틱과 쇠붙이의 감촉이 유난히 정겹다.


조심스럽게 전원 버튼을 눌렀다.


‘딸깍.’


요즘 블루투스 스피커처럼 화면을 쓸어내리거나, 가볍고 똑똑하게 반응하는 맛은 없다. 매끄러운 디지털의 편리함 대신, 묵직하고 정직하게, 어딘가 옛날 사람 같은 소리가 흐른다.


쇼팽의 녹턴이다.

스피커가 깊고 오랜 숨을 쉰다. 다만 이번엔 그 볼륨이 죄가 아니라 위로 같다.

이 정도 볼륨은 괜찮을 것 같다.


가슴에서 둥둥, 잊고 있던 젊은 날의 북소리가 메아리친다.


“그래, 이 맛이야.”


나이 들어 좋은 것 중 하나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례함 앞에서 잠시 눈감아도 좋을 만큼의 뻔뻔함이 생기는 것이다. 술 한잔하고 들어온 날이면 마음이 호기로워진다. 술기운에 흥이 오른 나는 서재에 앉아 용감하게 인켈을 켠다.


비틀스의 「Let It Be」다. 볼륨을 올린다.


“소리 좀 줄여.”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조금’은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다. 아내 기준으로는 이미 관리사무소와 외교 문제가 시작되는 단계다.

나는 술기운에 몸을 흔들며 엄숙하게 말한다.

“비틀스는 인류의 위대한 문명이고 문화야.”


아내도 엄숙하게 대답한다.

“지금까지 밖에서 위대한 문명이고 문화 실컷 즐겼잖아.”

이 말에는 반박이 어렵다.

대꾸가 궁색한 나는 슬그머니 볼륨을 더 올린다.


인켈은 오래된 오디오가 아니다.
장인어른이 내게 맡긴 믿음이고, 우리 부부가 함께 견뎌낸 세월이며, 잊고 살았던 젊은 날의 생명력이다.


오늘도 나는 볼륨을 한 칸 더 올린다.

“비틀스는 인류의 위대한 문명이고 문화였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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