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묶는 인수결합은 왜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전원을 누른다.
그런데 이놈이 대답을 하지 않는다.
삼십 년 가까이 함께한 인켈 리시버 앰프 RV-6100G가 끝내 입을 다물었다.
아침이면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인켈 오디오를 켜는 게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볼륨을 올려보고, 전원을 켰다 꺼보고, 콘센트도 바꿔 꽂아봤다.
먼지도 털어주고, 옛 기계는 두드리면 살아난다기에 괜히 툭툭 두드려도 봤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함이 더 크게 들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다 해봤다.
“결론은 하나다. 회생 불가.”
버튼 하나로 흐르던 음악이 멈추자 아침의 리듬도 함께 끊겼다.
새것을 사기에는 아깝고, 버리기에는 추억이 너무 많았다.
인터넷을 뒤져 같은 모델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리 뒤져도 없었다.
사라진 건 물건이 아니라 한 시대였다.
결국 비슷한 야마하 앰프로 방향을 틀었다.
인켈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었다.
며칠 뒤 택배가 도착했다.
이제 끝난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선이 문제였다.
빨강, 하양, 검정. 굵은 선, 가는 선.
색깔도 몇 가지 안 되고 생김새도 단순한데, 뒤판을 들여다보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요즘 전자제품은 전원만 꽂으면 끝난다.
그런데 옛날 오디오는 뒤를 보는 순간 갑자기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
설명서를 펼쳤다.
읽기는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꽂았다가 뺐다. 다시 꽂았다가 또 뺐다.
이건 오디오 설치가 아니라 인수결합이었다.
문제는 학교에서 인수분해는 배웠어도 인수결합은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빨간 선은 빨간 선끼리, 하얀 선은 하얀 선끼리 만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선은 전기가 아니라 관계였다.
아내가 옆에서 말한다.
“색깔대로 끼워 봐.”
말은 참 쉽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도 다 거짓말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했던가.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한참을 씨름하다 보니 선 하나하나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길이가 다르고, 들어가는 곳이 다르고, 제 모양에 맞는 자리가 따로 있었다.
억지로 끼운다고 연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마지막 선 하나가 제자리를 찾았다.
전원을 눌렀다.
“빠바바밤.”
베토벤의 운명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겨우 음악 한 곡인데 오래된 아침의 리듬이 다시 살아난 느낌이었다.
야마하가 뿜어내는 소리는 인켈과 달라지만, 내 아침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나는 블루투스보다 인켈이 좋다.
선도 없이 연결되고, 작고 편리하고 빠른 요즘 방식도 물론 좋다.
하지만 나는 오래된 방식에 마음이 간다.
손이 한 번 더 가고, 한 번 더 들여다보고, 한 번 더 맞춰야 비로소 소리가 난다.
그 기다림이 맛있다.
선을 하나하나 이어야 비로소 소리가 나는 그 방식이 좋고,
손을 움직여야 연결되고 완성되는 그 수고로움이 정겹다.
사람 사이도 그런 게 아닐까.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연결되는 관계는 드물다.
한 번 더 말을 걸고, 한 번 더 기다리고.
엇나간 마음을 맞춰야 비로소 소리가 난다.
오래 살아보니 알겠다.
사람도 선처럼 제자리가 있다.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는 인수분해를 참 열심히도 가르쳤다.
쪼개고, 나누고, 하나씩 풀어내는 법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배웠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시 묶는 인수결합은 왜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우리는 나누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다시 묶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바카라임은 교육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