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파트너쉽이란..
역사 속에 박제된 천재들의 결과물은 늘 매끄럽고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사상은 진공상태에서 잉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얽히고 설킨 인간사의 잔혹한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다. 그 결과물이 잉태되는 과정의 본질은 축복이라기보다는 파괴적인 핏빛 재앙에 가깝다. 천재성이란 본디 제멋대로 날뛰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무질서한 '혼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폭발적인 에너지는 그것을 감당할 압도적인 그릇을 만나지 못하면, 톨스토이의 가출이나 헤밍웨이의 엽총처럼 비극적인 파멸로 증발해 버리고 만다.
우리가 어제 다루었던 마리와 마리안네가 죽음이 남긴 파편을 수습한 위대한 설계자였다면, 오늘 이야기할 두 명의 동반자는 살아 숨 쉬며 폭주하는 천재의 광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기어이 '구조'라는 그릇으로 담아낸 가장 강력한 현실의 지배자들이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과 해리엇 테일러의 결합은 인류 지성사에서 가장 독특하고도 숭고한 20년의 투쟁이었다. 이들의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존 스튜어트 밀이라는 인간이 겪었던 끔찍한 실존적 붕괴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밀은 영국의 저명한 공리주의 철학자였던 아버지 제임스 밀(James Mill)에 의해 철저하게 기획된 '지적 실험체'로 자라났다. 세 살에 그리스어를, 여덟 살에 라틴어를 마스터했지만, 그의 내면에는 문학적 감수성이나 타인을 향한 공감 능력이 완벽하게 거세되어 있었다. 오직 이성과 논리만으로 직조된 이 천재적인 '사유의 기계'는 20세가 되던 해, 거대한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빠지며 산산조각 나고 만다.
이 무너진 천재의 폐허에 1830년, 유니테리언파 목사 윌리엄 폭스의 주선으로 열린 만찬에서 해리엇 테일러가 등장한다. 시와 예술을 사랑하고 급진적인 인권 의식을 갖추었던 해리엇은, 기계처럼 차갑던 밀의 세계에 불을 지른 최초의 감각이자 거대한 지적 닻(anchor)이였다. 밀은 단숨에 그녀의 지성에 매료되었지만, 해리엇은 이미 존 테일러(John Taylor)라는 남자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였다.
당시 런던의 부유한 도매 약재상이었던 존 테일러는 지적으로는 아내와 통하지 않았으나, 무척 관대하고 선량한 인물이었다. 그는 아내가 밀과 깊은 정신적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폭력을 행사하거나 쫓아내지 않았다. 당시 영국에서 여성이 이혼을 요구하면 모든 재산과 자녀 양육권을 완벽하게 박탈당하는 잔혹한 법적 한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해리엇을 옭아맨 것은 자신을 존중해 주는 선량한 남편의 체면을 스캔들로 무너뜨릴 수 없다는 거대한 '도덕적 부채감'이었다.
결국 이들은 남편 존 테일러가 사망할 때까지 무려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육체적 선을 넘지 않은 채 밤을 새워 철학과 정치를 논쟁하는 기형적이고도 숭고한 금욕을 택한다. 이들의 관계는 런던 사교계의 가십거리가 되었고, 가장 뼈아픈 비수는 밀의 지적 은인이자 동지였던 토머스 칼라일 부부에게서 날아왔다.
밀은 과거 칼라일이 무명일 때 그를 후원했고, 자신의 하녀가 칼라일의 《프랑스 혁명사》 원고를 불태웠을 때도 거액의 위로금을 건네며 그가 다시 일어서도록 도운 완벽한 은인이었다. 그러나 칼라일과 그의 아내 제인은 해리엇을 '지적 허영심에 차서 밀을 조종하는 요부'로 취급하며, 밀이 숭배하는 그녀를 조롱 섞인 어조로 '플라토니카(Platonica)'라 불렀다.
세상의 온갖 멸시와 배신 속에서도 해리엇은 밀이라는 천재의 학문적 한계를 부수고, 그를 철저한 개인의 자유와 여성 해방을 부르짖는 자유주의의 거두로 탄생하는데 기여했다. 이 숨 막히는 금욕과 철학적 통제의 시간은 훗날 <자유론(On Liberty)>과 <여성의 종속(The Subjection of Women)>이라는, 21세기 인류의 보편적 헌법 가치가 된 불멸의 업적(Legacy)을 잉태했다. 밀은 자신의 최고 명저 첫머리에 "이 바카라에 담긴 모든 훌륭한 사상은 내 것이 아니라 내 아내의 것"이라고 선언하며, 그녀가 텍스트의 완벽한 지분권자임을 역사에 못 박았다.
해리엇이 고상한 서재에서 지적 광기를 벼려냈다면, 안나 도스토옙스카야는 빚쟁이들의 고함과 잉크 냄새가 진동하는 가장 처절한 현실의 밑바닥에서 천재를 통제한 인물이다.
안나가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에 뛰어들었을 때, 그는 말 그대로 파멸의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그의 첫 번째 아내 마리아는 오랜 시간 결핵을 앓다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고, 가장 의지했던 형 미하일마저 급사했다. 도스토옙스키는 남겨진 형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형이 남긴 천문학적인 빚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극심한 뇌전증 발작과 도박 중독에 시달리던 그는 악덕 출판업자 스텔롭스키와 "26일 안에 새 장편소설을 완성하지 못하면 향후 9년간의 모든 저작권을 무료로 넘긴다"는 끔찍한 노예 계약을 맺고 만다.
이 절대적인 절망의 순간, 구술 속기사로 고용된 20세의 안나 스니트키나가 등장한다. 그녀는 도스토옙스키의 미친 듯한 구술을 속기하여 단 26일 만에 소설 <노름꾼(The Gambler)>을 완성해 내며 그를 노예 계약에서 구출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결혼하지만, 천재와의 현실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신혼여행으로 떠난 유럽에서 도스토옙스키는 또다시 룰렛의 광기에 빠져들었다. 그는 결혼반지와 안나의 속옷까지 전당포에 잡히며 도박장으로 달려갔고, 그 사이 안나는 첫딸 소냐와 막내아들 일리야를 병으로 잃는 짐승 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안나는 이 무질서한 파괴력 앞에서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그녀는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도 남편의 도박을 통제했고, 빚쟁이들의 문 두드리는 소리를 막아내며 남편의 구술을 받아 적어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같은 인류 최고의 역작을 기어이 출판사에 넘겼다.
나아가 안나는 중간 출판업자들의 착취 구조를 간파하고, 종이 원가와 서점 유통망을 독학하여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남편의 소설을 자비로 출판하여 천문학적인 도박 빚을 모두 청산하고 저작권을 온전히 방어해 낸 그녀는, 러시아 역사상 최초의 독립적인 '여성 출판 경영자'였다. 안나는 펄펄 끓는 예술적 재능을 '비즈니스'라는 세속의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하여 불멸의 구조로 정착시킨 가장 강력한 현실의 지배자였다.
천재성은 종종 찬양의 대상이 되지만, 그 본질은 곁에 있는 사람의 뼈와 살을 태워버리는 무자비한 불꽃이다. 해리엇과 안나가 보여준 삶은, 누군가의 진정한 동반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처절한 실존적 결단을 요구하는지 서늘하게 증명한다.
그들은 완벽한 껍데기(명함)나 안전한 거리에 숨지 않았다. 세상의 멸시(해리엇)와 빚쟁이의 추궁(안나)이라는 복잡한 인간사의 지옥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 그 파괴적인 에너지가 증발하지 않도록 자신의 삶 전체를 단단한 가마솥으로 내어주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제품' 같은 타인만을 찾아 헤매며 작은 흠집에도 쉽게 관계를 포기하는 우리에게 이 거대한 공동 창조자들은 묻고 있다. 당신은 상대의 그 무질서한 광기와 심연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혹은 당신의 삶은 누군가의 혼돈을 감당하고 영원한 레거시로 빚어낼 만큼 단단한 바닥(Altus Solum)을 가지고 있는가?
해리엇 밀과 안나 도스토옙스카야가 자신들의 뼈와 살을 깎아 잉태해 낸 이 불멸의 레거시(Legacy)는, 단순히 당대의 텍스트로 박제되지 않았다. 이들의 처절한 실존적 투쟁은 정확히 100년 뒤, 길을 잃고 붕괴해 가던 20세기의 또 다른 위대한 천재를 구원하는 단단한 바닥이 되어주었다.
1950년,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1974)한 오스트리아의 거장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예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는 세기의 스캔들에 휩싸인다. 평생을 갈망하던 첫사랑과 재혼하기 위해 조강지처를 버린 그는, 영국 지식인 슬롯의 맹렬한 비난을 받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은인이었던 학자들에게 완벽하게 절교당했다. 당시 근무하던 런던정경대학(LSE)을 비롯한 학계와 사교계에서 조롱받고 버림받아 도망치듯 미국 시카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하이에크는 극심한 고립과 우울증 속에서 하나의 과거 텍스트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자신과 똑같이 런던 사교계의 멸시와 토머스 칼라일 같은 은인의 조롱을 견뎌내며 20년간 사랑과 지성을 관철했던 존 스튜어트 밀과 해리엇 테일러의 낡은 편지들이었다. 세상의 모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실존적 결단을 포기하지 않았던 하이에크는, 100년 전 해리엇과 밀이 주고받은 맹렬한 서신들을 직접 수집하고 편집하여 1951년 <존 스튜어트 밀과 해리엇 테일러>라는 바카라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학자의 일탈이 아니었다. 세상의 껍데기와 권위를 버리고 사랑 때문에 지옥의 바닥까지 추락해 본 자만이 알아볼 수 있는, 시공간을 초월한 동병상련이자 거대한 실존적 연대였다.
천재의 폭발하는 광기와 복잡한 번민 속에서 기어이 텍스트라는 '구조'를 세워 올린 위대한 동반자들의 궤적은 이토록 무시무시한 생명력을 갖는다. 내가 온몸을 던져 지켜낸 누군가의 혼돈은, 백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또 다른 지성을 위로하고 부활시키는 불멸의 씨앗이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의 펄펄 끓는 파편을 외면하지 않고 묵묵히 엮어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치열하고도 고단한 '합일'의 과정만이, 언젠가 길 잃은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지탱해 줄 영원한 우리의 업적(Our Legacy)으로 남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마리아 포포바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소개된 두 커플 관련 글>
https://www.themarginalian.org/2019/06/18/john-stuart-mill-harriet-taylor/
https://www.themarginalian.org/2016/02/15/anna-dostoyevsky-reminiscences-marri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