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nur für brunch

byAltusSolum

나는 엉뚱한 상상을 자주 하는데,

내가 존경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오토 폰 비스마르크,

윈스턴 처칠을 만나서 고민상담을 하면

지금 그분들은

무슨 말씀을 해주실까?

https://blog.naver.com/altus_solum/224328708283


결국 차떼고 포떼고 다 떼면

결국은 딱 하나가 남을것 같다.

Do not Fear! 두려워하지마!

그 분들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서 그렇게 살았던건 아닐꺼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두려움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 불안과 고난을

무릅쓰고 지켜낼 무언가가 있었던것일꺼다.

결국 내가 느끼는 모든 미세한 감정들의 근원에는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그 두려움이 무의식에서 어떻게 소화되는지에 따라서

불안을 승화시키는 그릇의 크기가 되거나

아님 스스로 부셔버리거나 둘중에 하나겠지..


신뢰는 두려움을 이긴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거나,

누군가를 내가 정말 그렇게 신뢰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어떤 빈틈도 생기지 않는다.

JS와 해리엇 사이가 그랬고,

아나와 표도르 사이가 그랬다.

내 인생의 짝꿍(The One)에게 신뢰를 받는,

그 존재를 신뢰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것과 같아서

그런 사람들은

남의 미움이나 의견에 별로 좌우되지 않고,

심지어 그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더더욱이 없다고 한다.


난 아쉽게도 그렇게 누군가를 믿어본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 신뢰는

내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내 신뢰는 그렇게 쉽게 침식된걸까?

오랜 세월동안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었던것도 아닌데..

그냥 흩어져버렸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신뢰를 준적이 없어서일까?

당연히 그런 신뢰를 받아본적도 없다.


"Unspoken expectations are premeditated resentment."

말해지지 않은 기대는 계획된 원한이다.


이 문장을 처음 들은건 지난해였다.

알랭 드 보통과 크리스 윌리암슨의 대담에서다.

나는 때론 너무 좋거나,

너무 감동적이면 모른척한다. 회피한다.

못들은척하거나, 못본척하거나.

난 그렇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감정적 압도감(overwhelming)에

어쩔줄 모르고 당황해서 차단하고자 한다.

어쩜 그 모습이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을 알기때문에

그런 사람을 잘 알아본다.

저 문장을 들었을때도 그랬다.

너무 찔려서 피가 철철났다.

저 문장은 닐 스트라우스라는 작가가 쓴

<진실(The Truth)>에 나온다.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상대가 온전히 나에게 있는 그대로

수용받지 못한다고 느꼈던것 같다.

내가 아니었다고 있는 그대로 수용했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면 아닌거니까..

내가 행여라도

상처를 줬다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말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말해지지 못한 나의 모든 마음들이 모여

기대가 되고

그 기대는 결국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나보다.

결국 신뢰의 문제였다.

내가 나를 믿지 못했다.

결국 모든것이 자기신뢰의 문제였다.

두려움이었다...



**나는 실증도 잘 느끼고 예민한 편이라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으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것에 상당히 취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많이 들은 대담이 있다면 바로 이 둘의 대화였을꺼다. 알랭드보통의 목소리나 말투도 좋지만(나에게 알랑의 목소리는 asmr 심신 진정용), 그 내용이 뭐랄까.. 곰국같달까? 그의 주장에 모두 동의를 하든 하지않든 상관없이 들을때마다 다른 진실이 다가오는 마법이 있다. 한번쯤은 꼭 들어보시길 추천드림^^


https://youtu.be/9S_ha84YVn8?si=fgql4U8bIdbZMCD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