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2026.7.30.

byAltusSolum
2026 제주밤바다 taken by NICE OF YOU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왜냐하면 취향은 습관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즉, 습관은 취향의 일부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기원전 322)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이 곧 우리 자신이다. 따라서 탁월함은 단일한 행동이 아니라 습관(Ethos)이다"라고 강조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의 말처럼, 취향은 주체가 어떤 사람인지를 슬롯적으로 드러내고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잣대가 된다.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Habitus)' 역시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습관' 개념에 슬롯학적 살을 붙인 것이다. 즉, 취향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돈을 주고 단번에 획득하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무례한 소음을 피하고, 고요한 여백을 선택하며, 타인의 본질을 목소리와 향기로 식별해 내는 나 자신만의 고유한 '습관'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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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악을 들을까? 어떤 사람과 거리를 둘까? 어떤 공간에 머물까? 매 순간 본능적으로 행하는 이 습관적인 선택들은 결국 '나를 다치지 않게 하려는' 치열한 방어 기제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그 습관적 선택들이 오랜 시간 누적되면서, 폭력적인 세상의 중력을 튕겨내는 나 자신만의 아주 견고한 성벽이 된 것이다. 습관이 취향의 일부를 넘어, 취향을 잉태하는 굳건한 토양(Altus Solum)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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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본은 '단일한 행위'를 흉내 낼 수 있다. 비싼 향수를 사고, 클래식 공연장의 로열석을 예매하는 것은 돈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타인을 대할 때 0.1 나노초의 찰나에 드러나는 태도랄지, 목소리의 톤이나 말투랄지, 혼자 있을 때의 정서나 마음상태 등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습관의 합'은 돈으로 결제할 수 없다. 습관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신경계와 근육에 새겨진 '시간의 지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취향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거나 '급조된 완장을 찬 자'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고귀하고 배타적인 실존의 증명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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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백화점에 전시된 신발을 고르듯, 사람을 조건에 맞춰 만나 결혼을 한다. 그러한 서비스의 효용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선택의 전제가 함축하고 있는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다. 결혼은 일종의 일회성의 '계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선택어로 이어져야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재산, 학력, 병력 등 서류로 사람을 증명해야 하는 이 시대에, 오히려 그 조건의 최상단에 '취향'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의 대여 목록, 넷플릭스의 시청 목록, 유튜브 구독 리스트, 가장 많이 들은 음악 플레이리스트. 이런 것들을 공유하는 것이 상대의 본질을 알아보는 가장 정확한 렌즈다.

싫어하는 영화나 바카라을 억지로 한 번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일상에서 '반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취향에는 피할 수 없이 진짜 내가 드러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시대의 가장 투명한 아카이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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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취향은 '나는 누구인가'를 지성적으로 드러내는 우회로다. "내가 이런 사람이야"라며 폭력적이고 직접적으로 주입하는 대신, "이건 좋고, 저건 별로다"라는 선택의 축적을 통해 내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을 타인 앞에 조용히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억지로 자아를 내세우며 타인에게 자신의 불행과 감정을 강요하는 미분화된 태도와 달리, 묵묵히 자신의 바닥(Solum)을 다지는 세련된 생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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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딜 오면 항상 제일 먼저 음악 얘기를 하네.. "라고 짚어준 사람이 있었다. 내가 그런지 나도 몰랐다.

나는 레스토랑의 음식이 조금 덜 맛있고, 커피숍의 커피가 평범해도 그 공간의 음악이 좋으면 다시 그곳을 찾게된다. '좋은 음악을 고르는 안목을 가진 주인이라면, 결국 본업도 제자리를 찾겠지'라며 관대하게 기회를 주게 된달까? 이것은 전적으로 내 취향이다. 내가 안전함을 느끼는 세계를 구축하는 나만의 노하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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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갑자기 이 '취향'이라는 화두를 꺼낸 이유는, 타락한 능력주의 슬롯가 남긴 내면의 억울함과 분노를 소화해 낼 유일한 해독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능력주의의 타락'이라는 주제에 수천 명의 2030 세대가 깊이 공명하는 것을 보며 그 상실감의 깊이를 다시금 실감했다. 청년기의 2030이 느끼는 분노는 기성세대의 분노와 결이 다르다. 기회를 갖고 시도한 후 실패라는 경험을 해 본 것과, 애초에 기회 자체도 공정하게 주어지지 않은 채 부당한 서열화 속에서 존재를 거부당하는 상실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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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을 졸업하고도 단 한 번도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해보지 못한 대졸 청년이 30만 명에 육박한다는 통계를 보았다. '안정된 온라인 게임'이라는 최소한의 슬롯적 토대마저 거세당한 청년들이, 대체 삶의 어디에서 스스로의 효능감을 확인하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내일'을 꿈꿀 수 있단 말인가. 부모찬스를 쓰지 않고 내 실력으로 경쟁하고 싶지만, 늘 그들은 골대를 옮겨버린다. 나에게는 가차없는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온정적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정말 세상을 살고 싶지가 않다. ​그와중에 '너의 능력이, 자격이, 출신이 등등등이 부족해서'라는 거짓된 수치심을 강요하며 운동장 밖으로 밀어낼 때, 그 부당한 폭력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바로 외부의 자본이 아닌 내면의 '취향'을 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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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나는 이 슬롯가 정해놓은 '숙제'를 제때 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때로는 남들보다 늦었고, 아예 해내지 못한 것들도 많다. 그래서일까. 정상 궤도에서 벗어난 '소수'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예민함의 해상도가 조금 높다. 세상의 미세한 주파수와 공기 중의 분자까지 직관하는 안테나를 가진 '예민쟁이'로 사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남들은 무던하게 넘어가는 문제점들이 먼저 느껴지고 우려되는 이 감각은, 기만적인 세상을 꿰뚫어 보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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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상실감에 빠져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자본과 부조리가 지배하는 트랙 위에서 억지로 달리는 것을 멈추고, 당신만의 '취향'을 기르자고. 취향을 키우는 일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다. (물론 돈이 있으면 수월할 수는 있겠지만..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무례한 소음을 끄고 나의 주파수를 찾는 것, 그것은 온전히 나와 대면하는 치열한 '시간'과 '의지'만 있으면 충분하다. 전근대 슬롯에서는 개인이 미적 판단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현대 슬롯에서는 나 스스로 존중받아야 할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취향은 과거의 상처들을 통과하며 만들어낸 자기 성숙의 결과물이자,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당신만의 견고한 성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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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이 온전히 각자의 잠재력을 발휘하며 살 수 있는 생태계(Altus Solum)를 만들고, 딜렉티오(Dilectio, 존중과 지적 사랑)의 연대를 구상한다. 이는 어쩌면 과하게 이상적인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의 궤적을 흉내 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한 명씩 늘어난다면, 언젠가 우리는 거대한 강의 합류 지점처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다. 거대한 강의 합류 지점을 뜻하는 Confluence (콘플루언스)다. 이 단어도 역시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함께'를 뜻하는 'Con'과 '흐르다'를 뜻하는 'Fluere'가 결합하여 만들어졌다. 즉, 여러 갈래의 흩어져 있던 강물이 한곳으로 모여 더 크고 도도한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 물리적인 '합류'를 뜻한다. 물길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처럼, 사람들의 사유나 문화, 서로 다른 에너지들이 한곳으로 모여 융합되면 얼마나 좋을까? 원활하게 융합하기 위해서라도 나 자신을 잘 알고, 내 취향을 쌓아두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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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리 실망하지 말자.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 존경하는 분께서 내게 해준 말씀을 나눈다.

"실망하지말고, 무너지지 말고 작더라도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되는 길을 개척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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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누구와 함께 있든

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자.

그렇게 세상의 소음을 끄고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걷다 보면,

그 단단한 취향이

성곽이 되어 날 보호하는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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