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us Solum_ Archive
오늘은 드디어 경쟁적 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ism)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이 개념은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루칸 웨이(Lucan A. Way)가 정립했다.
3번 글에서 헌법적 하드볼(Constitutional Hardball)과 제도적 자제(Forbearance)의 파산과정을 설명할때
언급한 바 있었다. 사례로 분석했던 헝가리, 베네수엘라, 터키의 행위자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혼종 체제(Hybrid Regime)'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경쟁적 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ism)
ㅇ 본질: 기울어진 운동장(Uneven Playing Field)
전통적인 독재(전체주의)는 선거 자체를 없애거나 야당을 불법화한다.
하지만 경쟁적 권위주의에서는 '선거라는 민주적 형식'을 철저히 유지한다.
야당도 존재하고, 독립 언론도 일부 존재하며, 정기적인 선거도 치러진다.
하지만 핵심은 '운동장이 끔찍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집권 세력은 국가의 자원과 제도를 사유화하여 야당이 승리할 가능성을 사실상 제로에 가깝게 만든다.
즉, "합법적인 선거를 치르지만, 권력자는 결코 지지 않는 게임의 룰"을 세팅한 것이다.
ㅇ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3개의 기둥 (헌법적 하드볼의 결과물)
사법과 법집행의 무기화: 가장 치명적인 기둥이다.
집권자는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국가의 사정기관과 심판(법원)을 자신의 진영으로 채워 넣거나 통제한다.
이를 통해 정적과 야당 인사들을 부패나 국가안보 위반 등의 '합법적 혐의'로 끊임없이 수사하고 기소하여 손발을 묶는다.
반면 집권 진영의 스캔들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덮거나 솜방망이 처벌로 끝낸다.
'법대로 한다'는 핑계 뒤에서 심판을 사유화한다.
국가 자원의 독점: 국가의 예산, 공기업, 관급 공사 등의 자원을 철저히 집권 진영의 인센티브로 활용한다.
여당은 풍부한 국가 자원을 바탕으로 선거 운동을 하는 반면,
야당에 후원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는 세무조사나 행정적 불이익이라는 암묵적 보복이 가해진다.
미디어 생태계의 왜곡: 언론사를 강제로 폐간하지는 않지만,
우호적인 언론에는 광고와 혜택을 몰아주고
비판적인 언론에는 명예훼손 소송, 방송 통제, 압수수색 등을 가해
지속적인 자기검열 모드로 돌입하게 한다.
ㅇ '합법'의 가면을 쓴 야만
경쟁적 권위주의가 지능적으로 악날하고 교묘한 이유는
국제슬롯나 국민들이 쉽게 저항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독재자는 군대를 동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수사 기관이 법에 따라 범죄자를 수사하는 것일 뿐", "정당한 선거를 통해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일 뿐"이라며
철저히 법의 문구(Der Buchstabe des Gesetzes) 뒤에 숨는다.
하지만 법의 정신(Der Geist des Gesetzes)은 이미 죽었다.
경쟁적 권위주의는 세 가지 기둥(사법 무기화, 자원 독점, 미디어 통제) 의 붕괴를 토대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그냥 권위주의, 전체주의, 술탄주의, 공산주의, 독재 등 이 수많은 ~주의와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다를까?
햇갈릴땐 제대로 찬찬히 차근찬근 살펴보면서 개념의 해상도를 높이는 것이 최고다.
권위주의(Authoritarianism)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라는 단어 자체는 19세기 후반부터 존재했지만
당시에는 주로 권위를 맹신하는 태도나 낡은 보수주의를 비판하는 일반 명사로 사용됨
후안 린츠(Juan Linz)의 위대한 공헌 (1964년): 냉전 시대에는 세상을 오직 '민주주의 vs 전체주의(소련, 나치)'라는 이분법으로 분석
그런데 린츠가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을 연구하다 보니,
이 정권은 당연히 민주주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스탈린이나 히틀러처럼 시민의 영혼까지 개조하려는 미친(전체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
그래서 린츠는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제3의 체제가 있다"며
이를 '권위주의'로 명명하고, 그 개념과 특징을 학술적으로 완벽하게 규명
ㅇ "나대지 마라, 그러면 간섭하지 않겠다"
권위주의의 핵심은 '제한된 다원주의'와 '정치적 무관심의 조장'
목표: 오직 '정치 권력의 독점'과 '체제 생존'
특징: 거창한 유토피아적 이념(Ideology)이 없음. 대신 국가안보, 경제성장, 질서 같은 느슨한 '정신 상태'만을 강조.
대중이 정치에 열광하여 거리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며,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채 각자의 일상과 경제활동에만 집중 조장
통제의 범위: 정치 권력에 도전하지만 않는다면,
종교, 예술, 사유재산 등 시민슬롯의 사적 영역은 어느 정도 허용 (예: 70년대 남미의 군부 독재, 개발도상국의 군부 정권)
그렇다면 이와 유사한 전체주의는 뭘까?
전체주의(Totalitarianism)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와 칼 프드리히(Carl Friedrich)가 분석한 전체주의는 권위주의보다 훨씬 파괴적이고 극단적
목표: 정치 권력 독점을 넘어, 시민의 공적/사적 영역의 경계를 완전히 소멸시키고
슬롯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개조하여 영혼까지 국가와 일치시키기를 조장
특징: '마르크스-레닌주의' 같은 종교에 가까운 강력하고 목적론적인 이데올로기 보유
정치적 무관심을 용납하지 않으며, 끊임없는 대중 동원과 열광을 강요
광장으로 나와 수령을 찬양하지 않는 것은 곧 반역
통제의 범위: 제한된 다원주의조차 용납X
비밀경찰과 공포 정치를 통해 가족과 이웃 간의 신뢰를 파괴하고,
오직 개인과 국가(당)의 수직적 관계만 남김. (예: 스탈린 치하의 소련, 조지 오웰의 《1984》)
그럼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뭐였을까?
파시즘(Fascism)
파시즘은 전체주의의 한 형태이면서도, 특유의 극우적 신화와 폭력성을 결합한 역사적 특수 체제
파시즘 연구의 대가인 옥스포드의 로저 그리핀(Roger Griffin) 교수님은 <파시즘의 본질 (The Nature of Fascism,1991)>에서
이를 '팔링게네시스적 초국가주의(Palingenetic Ultranationalism, 국가 부활의 신화를 곁들인 극단적 민족주의)'로 정의
***고대 그리스어의 합성어: Palin (팔린)= '다시(Again)' 또는 '거꾸로' + Genesis (게네시스): '탄생(Birth)' 또는 '창조'
즉, 팔링게네시스는 종교적 혹은 신화적인 의미의 '부활(Rebirth)'이나 '재생'을 뜻함
단순히 제도를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죽었거나 썩어빠진 상태에서 불사조처럼 새롭게 태어나는 극적인 부활을 의미
핵심: 계급 투쟁을 앞세운 공산주의(좌파 전체주의)에 대항하여 등장
이들은 자유주의의 무능과 공산주의의 위협 때문에 국가가 썩어가고 있다고 선동하며,
위대한 국가(민족)의 부활을 위해 소수자(유대인, 이민자 등)를 희생양으로 삼아 배제
행동 양식: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숭배(Führerprinzip)를 강요하며, 폭력과 군국주의를 미화
파시즘은 논리나 이성이 아니라,
제복, 횃불, 깃발, 행진 같은 감정적이고 미학적인 스펙터클을 통해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킴 (예: 히틀러의 제3제국,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그렇다면 독재는 뭔가? 엄밀하게 말하면 독재와 권위주의는 정치학적으로 같은 층위에 있는 단어가 아니다.
'독재'가 최상위의 거대한 우산(Umbrella)이라면, '권위주의'는 그 우산 아래에 있는 구체적인 종(Species)이라고 볼 수 있다.
독재 (Dictatorship / Autocracy): 민주주의가 아닌 모든 체제를 통칭하는 가장 넓고 거친 단어
기원은 고대 로마 공화정 시대,
국가 비상사태 때 한 사람에게 한시적으로 모든 권력을 몰아주던 직바카라인 '딕타토르(Dictator)'에서 유래
즉, 선거를 통한 정당성이나 견제 없이 권력을 휘두르는 모든 형태를 독재라고 명명
현대 정치학은 이 거친 '독재'라는 바구니 속을 작동 방식에 따라 세밀하게 분류
정리하면,
ㅇ전체주의 (Totalitarianism): 독재 중에서도 뇌 속까지 통제하려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 (예: 스탈린, 북한)
ㅇ권위주의 (Authoritarianism): 정치만 간섭하고 사생활은 놔두는 형태 (예: 70년대 남미 군부)
ㅇ술탄주의 (Sultanism): 국가를 통치자의 사유물처럼 다루는 족벌 형태 (예: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여기서 햇갈리지 말아야 할 개념이 또 하나 있다. 공산주의(Communism)다.
공산주의는 권위주의나 전체주의와 분류 기준 자체가 다르다.
권위주의나 전체주의가
권력을 '어떻게(How)' 통제하고 억압하는가를 따지는 '정치 체제(Political Regime)'의 개념이라면
공산주의는
부를 어떻게 분배하고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Why/What)를 따지는
'경제 시스템이자 이데올로기(Ideology)'다.
마르크스(Karl Marx)가 머릿속에서 그린 공산주의는 억압이 사라진 이상 슬롯였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사유재산을 철폐하고 평등을 강제'하려면 필연적으로엄청난 국가 폭력을 필요로했다.
왜냐하면 사유재산 철폐라는 유토피아는 인간 본능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닌과 스탈린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 위해 '전체주의(Totalitarianism)'라는 정치 체제를 도구로 선택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혁명의 열기가 식은 1970년대 브레즈네프 시대의 소련이나 현대의 중국은,
더 이상 대중을 광장으로 끌어내 열광시키지 않는다.
즉,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슬롯주의)를 표방하지만,
정치 체제는 전체주의에서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로 다운그레이드된 상태로 볼 수 있다.
즉, 모든 권위주의는 독재지만
모든 독재가 권위주의인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의 목적지가 사유재산의 소명이라면,
전체주의나 권위주의는 그 목적지로 꾸역꾸역 대중을 끌고가는 고장난 기관차였다.
1820년,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이
베를린 대학(Friedrich-Wilhelms-Universität, 1949년부터 Humboldt-Universität zu Berlin))의 정교수가 되자
자신의 강의에 참석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수업용 교재를 발간했다.
그 바카라이 바로 역사속에 남은 <법철학 강요>다.
원문의 제목은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oder Naturrecht und Staatswissenschaft im Grundrisse
(법철학 강요, 또는 자연법과 국가학 요강>이다.
바카라의 서문에 "이 바카라은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위한 지침서로 쓰였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바카라은 절대로 친절한 에세이가 아니라, 모두들 고통을 받으며 읽어냈다.
학생들이 이 뼈대(텍스트)를 읽어오면, 헤겔이 교단에 서서 풍성한 살(강의)을 붙여 설명하는 방식이었는데
본문의 내용은 체제 설계자(헤겔)가 자신의 수제자들에게 남긴 극도로 압축된 '설계도면'인 셈이었다.
그런데 헤겔은 그 짧은 서문에 엄청난 내용을 또 써뒀는데, 그로인해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다.
당시 헤겔의 수업을 듣던 베를린 대학의 젊은 학생들 중 상당수는,
프랑스 대혁명의 낭만에 취해 급진적인 유토피아를 꿈꾸거나,
반대로 과거 게르만 민족의 낭만주의적 전통으로 회귀하려는 몽상가들로 나뉘어 있었다.
헤겔은 훗날 프로이센(독일) 국가의 관료와 체제 설계자가 될 이 젊은 엘리트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지적으로 호통을 친 것이다.
"Was das Individuum betrifft, so ist ohnehin jedes ein Sohn seiner Zeit;
개인에 관해 말하자면, 누구나 어차피 자기 시대의 아들이다.
so ist auch die Philosophie, ihre Zeit in Gedanken erfaßt.
철학 또한 마찬가지로, 사상(생각) 속에서 포착된 자신의 시대이다.
Es ist ebenso töricht, sich einzubilden, irgendeine Philosophie gehe über ihre gegenwärtige Welt hinaus, als, ein Individuum überspringe seine Zeit, springe über den Rhodus."
어떤 철학이 자신의 현재 세계를 초월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한 개인이 자신의 시대를 뛰어넘거나 로도스(Rhodus) 섬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töricht) 일이다.
헤겔이 여기서 언급한 '로도스'는 고대 그리스 이솝 우화인 <여행자와 허풍쟁이>에서 가져온 고도의 지적인 은유다.
한 여행자가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이 로도스 섬에 있을 때 엄청난 넓이뛰기 신기록을 세웠다며 허풍을 떤다.
그러자 듣고 있던 사람이 이렇게 응수합니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봐라! (Hic Rhodus, hic salta!)"
헤겔은 이 우화를 끌어와,
현실에 발을 딛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있어야 할 이상향(과거의 이념이나 미래의 유토피아)'을 떠드는 학자들을 비판했다.
즉, "내가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면(혹은 로도스 섬에 있었으면) 엄청난 도약을 했을 텐데"라고 허풍을 떠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다.
또, 헤겔은 이 문장 직후에 그 유명한 변용 명제를 덧붙였다.
"Hier ist die Rose, hier tanze." (여기가 장미다, 여기서 춤추라.)
***로도스(Rhodus)가 그리스어로 장미(Rhodos)를 뜻한다는 점을 이용한 언어유희
결국 역사 속 모든 '~주의(Ism)'는 그 시대가 직면한 모순을 돌파하기 위해
당대의 사유 수준에 걸맞는 '생존의 공식'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초연결과 인공지능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지난 과거의 수많은 이념과 체제들을 굳이 해부하고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열장 속에 놓인 낡은 '~주의'들 중 가장 그럴싸한 기성품을 골라잡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기왕에 있던 것 중 무엇이 제일 훌륭했노라며 과거의 향수에 기대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마르크스(K. Marx)나 히틀러(A. Hitler)는 알고리즘이 대중의 감정을 지배하는
SNS와 AI의 시대를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했다.
이념이 붕괴하고 기술이 권력을 재편하는
이 미증유의 시대 속에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의 번민 앞에
19세기의 철학이나 20세기의 낡은 뼈대로 21세기의 살을 온전히 지탱할 수는 없다.
우리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만 한다.
과거의 렌즈를 과감히 깨부수고,
오직 지금 이 시대의 맨얼굴을 직면해서(아무리 추악하더라도)
우리 시대에 걸맞은 완전히 새로운 '문제 해결의 아키텍처(Architecture)'를 도출해 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불편한 역사를 기꺼이 펼쳐놓고 분석해야만 하는 유일하고도 절박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