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us Solum_ Archive
오늘은 현충일이다.
1956년에 제1회 현충일이 제정되어
처음 엄수된 이후, 올해로 71번째다.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는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이 공포되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왜 8년이나 지나서야 제1회 현충일이
지정되었을까?
바로 6.25 전쟁(1950~1953) 때문이다.
1948년에 갓 세워진 위태로운
국가의 뼈대는 1950년에 발발한 참혹한 전쟁으로 완전히 무너질 뻔했다.
이때 수십만 명의 국군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며 산화했다.
1953년 7월 휴전이 성립된 후,
이 엄청난 수의 전사자들을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예우하고 추모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남겨졌고
전후 복구 속에서 안정을 찾아가던 국가는
전사자들을 안치할 국군묘지를 1955년에 조성했다.
이듬해인 1956년 4월 대통령령을 통해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공식 지정되었다.
즉, 1948년에 국가의 '헌정'이 시작되었다면,
1956년은 그 헌정을 목숨 바쳐 지켜낸 수호자들에게 국가가 영원히 잊지 않고 예우하겠다는
'제도적 계약(현충일)'을 공식적으로 체결한 원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 커서 생각해보니 우리집은 어릴때부터 동작구 현충원에 정말 자주 갔었다.
나무가 참 많고 산바카라로로도 자주 애용했는데 특히나 가을엔 정말 아름다웠다.
물론 가서 참배하고 들었던 여러 대통령들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
초중고때 학교에서 무슨 경진대회 같은 것을 하러 가기도하고,
성인이 된 후에 현충탑 앞에 모이는 계기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현충원과
친구, 동료들이 현충원에는 심리적 거리가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 현충원은 뭔가 생각을 정리하게 하는,
오늘의 내가 누리는 당연한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일종의 각성과 감사를 주는 치유와 침잠의 공간이었다.
내 기억속에 첫번째 군인은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목소리가 동굴처럼 울렸고, 문장이 짧았는데 뭔가 내용이 다 들어가 있었다.
한자가 많이 들어간 신문과 바카라들을 읽었고, 내가 그걸 쳐다보면 막 설명을 해줬는데 당연히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
내가 기억나는 한가지는 할아버지가 나를 굉장히 인간으로 예우해줬다는거다.
애들도 안다. 어른이 지금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나이가 들어보니... 그렇게 내가 눈에보이지 않게 의식하지 못한채로
존재적 가치를 배려 받았던 순간들이
가장 어려운 순간 나를 붙잡아준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배우면서
군에 대한 대한민국의 인식이 복합적이고 번민이 드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군에 의해 헌정 질서가 중단되거나 심각하게 위협받았던 변곡점은 4번이 있었다.
마음이 불편하고 정리가 되지 않을때는 우선 펼쳐서 제대로 분석해보는것이 최고다.
1️⃣ 1961년 5.16: 고전적 쿠데타
행위자: 이념적 정당성(반공)과 물리력, 엘리트주의로 무장한 기획자 그룹
작동 메커니즘: 기존의 허약한 민주적 헌정 질서를 외부에서 무력으로 완벽하게 파괴하고 들어온 전형적인 고전적 쿠데타
조직 역량과 목적: 이들은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으나 권력을 잡은 뒤 국가 시스템 전체를 뜯어고치는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라는 거대한 뼈대를 설계할 역량은 있었음. 군 조직 전체의 엘리트들이 근대화를 명분으로 관료제를 장악하고 체제 정립
2️⃣ 1979년 12.12 ~ 1980년 5.17): 친위 구데타
행위자의 본질: 공조직(정규군)이 아닌 '하나회'라는 무력화된 사조직 내의 권력 투쟁 집단
작동 메커니즘: 절대 권력자의 공백(10.26)이라는 제도적 진공 상태를 틈타, 권력 내부에서부터 야금야금 국가 통제권을 장악해 나간 '다단계 친위 쿠데타
<1단계> 1979년 12.12: 군대 내부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 연행한 '하극상이자 군사 반란'
이때까지만 해도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의 내각이라는 합법적 정부가 껍데기나마 존재
<2단계> 1980년 5.17: 군부를 장악한 신군부가 팽창하는 시민슬롯의 민주화 요구에 위협을 느끼고,
마침내 국무회의를 무력으로 겁박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날.
국회를 봉쇄하고 정치인들을 체포하며 실질적인 국가 권력을 완전히 찬탈한 쿠데타 완수
조직 역량과 목적: 거시적인 국가 개조의 비전은 없었으나, 권력을 찬탈하고 유지하기 위한 음모적 기획력과 잔인할 정도의 실행력은 압도적. 무자비한 유혈 진압(광주)을 불사하며 국가 폭력을 완벽하게 사유화하고 통제할 수 있는 국가의 야만적 실체를 드러냄. 그 이후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3S(Screen, Sports, Sex) 장려
그러나 사실 이 3S 정바카라은 그 정권이 발명한 것은 아니었다. 고대 로마 제국 시대, 귀족들이 평민들의 정치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밀을 공짜로 나누어 주고 검투사 경기를 열었던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 정바카라의 현대판 버전이락 볼 수 있다.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라자르(Salazar)가 썼던 '3F 정바카라(Fátima-종교, Football-축구, Fado-음악)'이나 일본 제국주의의 우민화 정바카라 등, 정통성이 없는 독재 정권이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해 공통적으로 선택하는 '제도적 수면제'라고 할 수 있다.
3️⃣ 1987년 6.29: 타협을 통한 체제 연착륙
행위자의 본질: 군사 정권의 2인자였으나, 팽창한 시민슬롯의 물리력을 깨닫고 '선거'라는 제도를 수용한 생존주의자
작동 메커니즘: 이는 헌정 중단이 아니라, 오히려 권위주의가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체결된 타협적 이행(Pacted Transition)
조직 역량과 목적: 거대한 6월 항쟁(1987) 앞에서, 군을 동원한 무력 진압(하드볼)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제 스스로 '교정(Correction)'한 사례. 제도를 부수지 않고, 오히려 헌법 개정(직선제)에 동의함으로써 분열된 야당을 상대로 선거에서 승리해 권력을 연장하는 고도의 정치적 유연성을 보임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중요한 사건이 있다.
바로 4.19 혁명 (1960년)이다.
4.19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완벽한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자 '자정 작용의 성공 경험'이다.
쿠데타나 비상계엄은 무력을 쥔 소수 집단이 하향식(Top-down)으로 폭력을 행사해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인 반면
4.19는 부패하고 룰을 조작한 권력(3.15 부정선거)에 맞서, 주권자인 시민들이 상향식(Bottom-up)으로 저항하여
그 권력을 끌어내린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4.19가 위대한 이유는 단지 독재자를 쫓아냈다는 결과 때문이 아니다.
이 마저도 지도자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초대 대통령의 하야라는 결정이 쉽다고 혹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30년 이상을 살아왔다.
그런데 그 이후 몇번의 탄핵 사건을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하야'라는 결정은 '제도'에 대한 일말의 애정과 수호정신이 있어야 가능한 매우 지적인 사유의 결과라는 것을...
초대 대통령의 하야 이후 허정 과도정부가 들어서고,
개헌을 통해 제2공화국(내각제)을 출범시키는 등 폭력을 사유화하지 않고 합법적인 제도의 궤도 위로 곧바로 복귀할 수 있었다.
즉, 4.19야말로 부패한 권력의 하드볼에 맞서 시스템 스스로 썩은 것을 도려내고
새로운 질서를 빚어냈던 위대한 제도의 쇄신과 진화의 성공경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4.19는 3.15 부정선거에 맞서 학생들이 주도하고 시민이 가세하여
정권을 무너뜨린 최초의 민주주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4️⃣ 2024년 12.3: 무능이 빚어낸 체제
행위자의 본질: 거시적 비전도, 군 조직 전체를 통제할 장악력도 없는(심지어 군 내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던 무능한)고립된 소수 파벌과, 합리성이 거세된 비선(무속 등)이 결합된 기형적 그룹. 거죽만 군복을 입었을 뿐, 본질적으로는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한 무능한 관료나 동네 주민센터 직원 수준의 행정력으로 국가의 폭력을 다루려 함
작동 메커니즘: 이미 공고화된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극심한 정치적 교착 상태를 돌파하기 위해 제도의 룰을 강제로 무기화하려 한 최악의 '헌법적 강경전술(Constitutional Hardball)'의 실패작
조직 역량과 목적: 과거의 군인들은 잔인하고 무식했을지언정 국가 기구를 통제하는 실력과 노력이라도 있었지만, 이들은 패스트푸드점에서 계엄을 모의하고 무지한 기획에 의존하는 등 권력 탈취의 기본적 아키텍처조차 구성하지 못함. 직업 군인들이 철저한 문민통제 아래 놓인 21세기에, 1980년대식 명령이 통할 것이라 믿은 시대착오적 퇴행이 빚어낸 블랙 코미디
4.19 혁명 (1960년)과 6월 항쟁 (1987년)은 27년의 시차를 두고 있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시스템의 궤도를 시민의 힘으로 강제 수정해 낸 가장 완벽한 자정 작용(Corrective mechanisms)'의 시작과 완성이라는 점에서 완벽하게 연결된다고 본다. 1960년에 헌정 질서를 회복해 본 성공경험은 1987년 민주화 이행에 순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세계사를 보면 독재자가 권력을 잃는 방식은 보통 두 가지다.
리비아의 카다피나 시리아의 아사드처럼 국가를 처참한 내전으로 끌고 가며 끝까지 폭력을 행사하거나, 해외로 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1960년 4월의 초대 대통령은 달랐다.
경무대(청와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 명령이 내려져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명백한 비극이자 독재의 참상이었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뒤,
대통령이 서울대병원을 찾아가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문하며 눈물을 흘리고
"불의(不義)를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다. 청년 학생들이 참으로 장하다"라고 말한 대목이나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겠다"며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장면은 세계 독재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점이다.
https://www.ehistory.go.kr/view/movie?mediasrcgbn=KV&mediaid=228
관련해서 뭉클한 일화가 있다.
1960년 4월 26일,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이화장으로 물러나자,
대만의 장제스 총통은 깊은 충격과 연민을 담아 위로의 편지를 보낸다. 평생을 독립운동과 반공에 바친 노쇠한 정치인이 자신이 세운 나라의 학생들에게 쫓겨나듯 권좌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비슷한 처지의 장제스에게는 남 일 같지 않은 비극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편지를 받은 대통령이 장제스에게 보낸 답장의 내용은 장제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나는 위로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내가 평생 바라던 똑똑하고 정의로운 백성이 국가를 위해 궐기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초대 정부 12년의 가장 큰 치적 중 하나는 '의무교육의 도입'이다.
이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교육'을 강조했고,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란 불의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비록 정권 말기의 3.15 부정선거라는 치명적인 '하드볼'을 던졌으나,
자신이 교육시킨 그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부정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자,
국가의 뼈대(시민의 자정 능력)가 제대로 세워졌음을 직관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반면 장제스는 끝까지 대만에 계엄령(세계 최장기 계엄)을 유지하며 권력을 내놓지 않고 철권통치를 이어갔다.
반면 시위대의 총탄에 맞은 학생들을 찾아가 눈물을 흘렸고,
장제스에게 "불의에 저항하는 백성을 얻어 행복하다"고 선언하며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이것이 바로 지적인 사유의 핵심이다.
아무리 권력욕에 눈이 멀었더라도,
국가를 건국했던 학자적 지도자로서 자신의 역사적 명분(Text)과 현실(Context)이 충돌했을 때,
군대를 동원해 나라를 내전 상태로 밀어 넣는 대신 자신의 패배를 선언하고 시스템의 숨통을 터주었다는 점 말이다.
이 퇴진 덕에 대한민국은 국가 붕괴를 면하고,
허정 과도정부를 거쳐 합법적인 선거로 제2공화국을 출범시키는 헌정적 회복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체제적 자정 작용과 하야의 의미가 왜 한국 역사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을까?
쿠데타로 탄생한 그 다음 체제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1961년 5.16 쿠데타 총구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민주적 정통성이 없었다.
합리화를 위해서는, 앞선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 전체를 '절대적인 무능과 부패, 혼란의 시대'로 규정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초대 대통령의 하야 과정을 "국민의 뜻에 승복한 지적이고 헌정적인 결단"으로 긍정 평가해 버리면,
시민의 힘으로 회복한 헌정 질서를 1년 만에 무력으로 짓밟아버린 자신의 명분이 치명상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쿠데타 세력의 정치적 인센티브로 인해, 4.19는 그저 '혼란을 잉태한 미완의 사건'으로 격하되었고,
초대 대통령의 결단 역시 철저히 폄하되며 현대사의 균형 잡힌 조명을 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이처럼 때로는 이교도(Infidels, 아예 다른 이념, 종교등을 추종하는 외부)보다
이단(Heretics, 같은 가치를 주창하는 내부)이 서로를 더 미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잘 아는 내부의 친밀한 폭력이 더 잔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속해서 이러한 유사한 사례를 접하면서 살아가는 중이다.
헌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총구가 시민을 향했던 계엄과 독재의 역사,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부 군이 누렸던 부당한 권력과 일탈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앞서 우리가 어제 살펴보았던
'하드파워(물리적 억제력)라는 뼈대'가 무너지면
국가라는 살이 모두 흘러내린다는 것
또한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이 감정적 트라우마와 국가적 생존이라는 괴리를 메꿔나가야 한다.
우리가 과거의 군인을 불신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악해서가 아니라,
'직업적 본분(전쟁 억제력)'을 버리고 '정치적 행위자(권력자)'로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Max Weber)의 관점에서 본다면,
국가 폭력을 독점하도록 위임받은 집단이
그 폭력을 헌법 수호가 아닌
권력 찬탈에 사용함으로써
'바카라임윤리(Verantwortungsethik)'를 철저히 위반한 뼈아픈 제도의 실패였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바로 이 선을 넘은 정치 군인들이다.
이 괴리를 줄이는 가장 완벽한 정치학적 해법은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이
<The Soldier and the State: The Theory and Politics of Civil-Military Relations, 군인과 국가: 민군관계의 이론과 정치>에서
제시한 '객관적 문민통제(Objective Civilian Control)' 개념이다.
군대를 정치권력에 종속시키려 하거나, 이념적으로 길들이려 할수록(주관적 통제) 군은 부패하고 정치화된다.
군인들이 오직 '전투와 안보'라는 본연의 전문성(Professionalism)에만 집중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다만 그 전문적 영역에 대해 만큼은 국가가 군의 위엄과 최고의 존중,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 순환이 명명백백하게 유기적으로 흘러야
군은 가장 강력해질 수 있다.
즉, "너희는 헌법의 통제를 철저히 따르라. 그 대신 우리는 당신들의 목숨을 건 전문성을 국가의 이름으로 최고로 예우하겠다"라는
제도적 계약을 맺는 것이다.
과거의 그림자와 현재의 제도를
선명하게 분리해내야 한다.
지금 전방에서 밤을 새우고,
잠수함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는
젊은 군인들과 제복 입은 공직자들은
우리의 일부다.
이분들은 철저히 우리의 '뼈대'를 지탱하고 있는
헌법의 수호자들이다.
선입견과 트라우마에 갇혀
묵묵히 신의성실을 지키는 '직업 군인'들까지
정치적 잣대로 핍박하고 조롱한다면,
이는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며,
스스로 국가의 하드파워를 해체하는 자해 행위다.
미 육군 예비역이자 역사학자인 찰스 M. 프로빈스(Charles M. Province)가 쓴 시를 읽었을때
나도 모르게 뭉클해져서 눈물이 났다.
It is the Soldier (군인이란)
“It is the Soldier, not the minister
Who has given us freedom of religion.
우리에게 종교의 자유를 준 것은 목사가 아니라
군인이다.
It is the Soldier, not the reporter
Who has given us freedom of the press.
우리에게 언론의 자유를 준 것은 기자가 아니라
군인이다.
It is the Soldier, not the poet
Who has given us freedom of speech.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를 준 것은 시인이 아니라
군인이다.
It is the Soldier, not the campus organizer
Who has given us freedom to protest.
우리에게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준 것은 시민운동가가 아니라 군인이다.
It is the Soldier, not the lawyer
Who has given us the right to a fair trial.
우리에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준 것은 변호사가 아니라 군인이다.
It is the Soldier, not the politician
Who has given us the right to vote.
우리에게 투표할 권리를 준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바로 군인이다.
It is the Soldier who salutes the flag,
국기에 경례를 하고,
Who serves beneath the flag,
국기 아래서 복무하며,
And whose coffin is draped by the flag,
마침내 죽어 그 관을 국기로 덮는 그 군인 이야말로,
Who allows the protester to burn the flag.
시위대가 광장에서 국기를 불태울 수 있는 자유마저 허락한 사람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슬롯 공동체 내에서 존중과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어릴때 할아버지께서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하는것 처럼,
아빠가 할아버지를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하는 것처럼,
지금 아이들도 우리가 과거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예우하는지
그리고 지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분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다 기억할 것이다.
어느 순간 아이들의 희망직업에서
군, 경찰, 소방관 등이 사라진 이유는 어쩌면
아이들이 그 직업을 가진 어른들의 삶이 전혀 좋아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직업적 소명이나 가치, 보람이라는 선택 요인이 사라졌고
오직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원한다고 누가 뭐라할 수 있을까?
독립 전쟁을 직접 통솔했던 군인이자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조지 워싱턴은
청년들의 헌신는 과거 영웅들에 대한 예우에 달려 있다고 했다.
"The willingness with which our young people are likely to serve in any war,
no matter how justified,
shall be directly proportional to
how they perceive the Veterans of earlier wars were treated and appreciated by their nation."
"미래의 청년들이 국가가 부를 때 기꺼이 헌신할지 여부는,
그 국가가 과거의 영웅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예우했는가를 청년들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정확히 비례한다."
그러므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헌신을 당연시 여기거나,
쓰다 버리는 소모품처럼 대우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국가의 제도적 채무 불이행(Default)이다.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국가를 위해 기꺼이 피를 흘릴 바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그 국가는 하드파워(뼈대)가 녹아내려
캘빈 쿨리지(제30대 미국 대통령)의 경고처럼 역사 속으로 잊혀지게 될 것이다.
"The nation which forgets its defenders will be itself forgotten.
자신을 지켜준 수호자들을 잊은 국가는, 결국 그 국가 자신도 역사 속에서 잊혀지게 될 것이다."
헌신을 예우하지 않는 국가의 끝은
결국 '국가 자체의 소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