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6.8.(월)
오늘 오전 치과에 다녀왔다.
어쩔 수 없이 틀어져 있는 방송을 보게 되었다.
3시간 가까이 대기시간이 이어졌다.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집에와서 조지 오웰의 <1984>를 다시 펼쳤다.
정치슬롯학적으로 권력자가 대중을 통제하고 기만하기 위해 언어의 본래의미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조작하여, 언어를 지배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사유 자체를 지배하려는 현상을 비판할때 오웰식 화법(Orwellian Speak)이라고 쓴다.
오웰식 화법의 가장 큰 특징은 단어가 가진 본래의 뜻을 정반대로 뒤집어 사용하는 것이다. <1984>에 등장하는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의 3대 슬로건인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 대표적이다.
현실 정치에서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조치를 마치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조치인 것처럼 포장할 때 나타난다.
오웰은 권력자가 언어의 어휘 수를 줄이고 의미를 단순화한 '신조어'를 만들어 대중에게 강요한다고 묘사했다. 언어가 단순해지고 획일화되면, 대중은 복잡하고 구조적인 모순(예: 권력의 사유화, 승자독식 제도의 폐해)을 인식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도구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다양한 '다른' 생각을 표현할 단어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은, 명백히 상충되는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진실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심리적 조작이다.
방금 전까지 무자비한 권력을 휘둘렀으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가장 약자이며 탄압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대중은 이 인지부조화 속에서 점차 진실이 무엇인지 따지는 것을 포기하고, 권력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는 뭘까?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제창한 개념으로,
자신의 신념과 객관적 현실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뜻한다.
인간은 이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현실을 인정하고 신념을 바꾸거나(자기반성),
아니면 신념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왜곡(자기합리화)하는 것이다.
자신의 무능(세수 펑크, 민생 파탄)이나 도덕적 결함(사법 리스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권력적 자아를 붕괴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자아를 방어하기 위해
"대체불가 국가"라며 뇌를 속이며, 객관적 지표 자체를 호도하는 것이다.
인지부조화는 정신승리(Mental Victory)라고 쉽게 표현되기도 한다.
권력과 결합한 망상이다.
중국 작가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에서 유래한 '정신승리법'은,
현실에서는 철저히 패배하고 짓밟혔음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인 망상 속에서 자신이 승리자라고 위안하는 하층민의 자기기만을 뜻했다.
그런데 21세기에는 진화되었다.
보통 사람의 정신승리는 개인의 우스꽝스러운 자기방어로 끝나지만,
이것이 국가 권력 및 통계 조작과 결합하면 대중에게 그릇된 환상을 선사하는 거대한 '폭력'이 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결국 목적은 설득이 아니라 '기준의 파괴'라고 강조했다.
권력자가 뻔한 거짓말과 인지부조화적 발언을 쏟아내는 궁극적인 목적은,
대중이 그 거짓말을 진실로 믿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목적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그 기준 자체를 붕괴시켜,
대중이 현실 판단을 포기하고 냉소주의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The ideal subject of totalitarian rule is not the convinced Nazi or the convinced Communist, but people for whom the distinction between fact and fiction (i.e., the reality of experience) and the distinction between true and false (i.e., the standards of thought) no longer exist."
"전체주의 통치의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나치나 헌신적인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경험의 현실성), 진실과 거짓(사유의 기준)의 구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전체주의의 기원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1951)>
"The result of a consistent and total substitution of lies for factual truth is not that the lie will now be accepted as truth and truth be defamed as a lie, but that the sense by which we take our bearings in the real world—and the category of truth vs. falsehood is among the mental means to this end—is being destroyed."
"사실적 진실을 일관되고 총체적으로 거짓으로 대체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이제 거짓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진실이 거짓으로 비방받는 것이 아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방향을 잡는 감각—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범주도 이 목적을 위한 정신적 수단 중 하나이다—
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진리와 정치(Truth and Politics, 1967)>
그렇다면 거짓말이란 뭘까? 왜냐하면 일반 거짓말과는 조금 결이 다른 듯해서 말이다.
여기서 프랑크푸르트(Harry Frankfurt) 교수님의 에세이 <헛*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 1986)>가 떠올랐다.
프랑크푸르트 교수님은 거짓말 쟁이(Liar)과 헛소리 꾼(Bullshitter)를 엄격히 구분했다.
*맥락이나 의미전달이 충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를 의도적으로 '헛'으로 수정
거짓말쟁이는 무엇이 진실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 진실의 힘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것을 숨기려고 반대되는 말을 한다.
역설적으로 거짓말쟁이는 진실과 거짓이라는 게임의 룰 안에서 활동하고,
그 진실을 존중한다.
그런데 후자는 애초에 진실이 무엇인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이 말이 지금 내 목적(상황 모면, 자기 과시, 대중 선동)에 부합하는가'뿐이다.
진실의 여부는 철저히 논외의 대상이다.
프랭크푸르트 교수님은 헛소리가 거짓말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해악이 크다고 단언한다.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가리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해야 하므로 어느 정도 제약을 받지만,
헛소리꾼은 진실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므로 상상력과 뻔뻔함이 닿는 곳까지
무한대로 말을 지어낼 수 있는 것이다.
거짓말은 진실에 흠집을 내는 정도지만,
헛소리는 아예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도록
그 토대를 지워버린다.
또한, 프랑크푸르트 교수님은
현대 슬롯에서 헛소리가 범람하는 이유 중 하나로,
사람들이 '자신이 정확히 알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일반 우리는 진실과 거짓/ 헛소리를 비판적으로 구분하고 걸러내기가 어렵다.
정치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Anthony Downs)는 이를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대다수의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에 시달리고, 당장의 생업을 유지한 채 일상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한 개인(유권자)이 통치자의 연설에 숨겨진 거시경제 지표, NPT 체제의 복잡성, 사법 시스템의 이면을
일일이 팩트체크하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비용(정보 탐색 비용)을 요구한다.
따라서 대다수의 우리는 내용의 정합성을 따지기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태도', '자신감', '유창함'을 척도로 삼아 판단하려는 인지적 지름길을 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이러한 띄엄띄엄 정보 처리 방식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뿐이다.
다수의 우리가 '합리적 무지'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면,
그 빈 공간을 채워야 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매개 제도(언론, 학계, 의회, 정당)이다.
통치자의 유창한 궤변을 해체하고, 그 안에 숨겨진 독소를
대중의 친절한 언어로 번역해 경고하는 것이 이들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현재 승자독식 구조 속에서 이 매개 제도들은 철저히 망가졌다.
언론은 진영 논리에 포획되어 나팔수나 맹목적 비난자로 전락했고,
학계와 지식인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파편화되었다.
결국 통치자의 궤변을 걸러낼 '필터'가 사라진 상태에서,
유창한 포퓰리즘의 언어가 대중에게 직접 뿌려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건강한 민주주의 슬롯가 유지되려면
언어적 소통이 '진실성'과 '정당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다.
오웰식 화법은 이 소통의 합리성을 근본적으로 파괴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적어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 지금 내 귀에 들리는 것이 뭔지.. 진실인지 거짓인지 헛소리인지 구분해야한다.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