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태도가 곧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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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태도가 곧 운명(Ethos anthropoi daimon)


현대 정치학자 아담 프셰보르스키(Adam Przeworski)는

민주주의를 "결과는 불확실하지만, 절차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체제(certain procedures, uncertain outcomes)"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절차적 확실성'에 대한 집착은 민주주의의 태동기인 고대 아테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국가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 시민'들은,

자신들의 공적 절차에 한 치의 의구심도 남기지 않기 위해 클레로테리온(κληρωτήριον)이라는

기계적 추첨 장치의 완벽한 작동에 집착했다 .

선거에 쓰이는 물리적 도구의 무결성이 곧 권력의 정당성이며, 체제를 유지하는 유일한 신뢰 자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클레로테리온의 홈에 피나키아(시민 명패)를 꽂아 넣은 예시 <아테네 고대 아고라 박물관>


기원전 4세기 클레로테리온의 파편 <아테네 고대 아고라 박물관>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21세기의 대한민국 현실은 이 2천 년의 정치철학적 상식을 산산조각 내고있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쟁취해 낸 대한민국,

그것도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투표용지가 동나 주권자가 투표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것은 단순히 특정 후보의 당락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엄격하고 확실해야 할 제도의 기본(투표용지 교부)마저 불확실해졌다는 것을 확인한 기형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선거는 누가 이겼는지를 확인하는 사후적 게임이 아니라,

모든 주권자가 동등하게 발언권(Mandate)을 행사했다는 절차적 동의를 구하는 민주적 의례다.

국가 인프라가 시민의 권리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박탈해 놓고,

단순한 행정 과실(실수라는 표현을 쓸수 없는 사안이다)인 양 사과로 바카라임을 면하려 한다면

이는 철저히 관료화된 행정 편의주의이자 주권자에 대한 오만이다.

제도적 아키텍처가 무너진 상황에서, (승리/패배)결과론적 안도로 절차의 훼손을 눈감아주는 문명국가는 없다.

그런데 이와중에 독일의 선거와 재투표가 언론에 회자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오늘은 당시 그 선거를 한번 짚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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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9.26 일요일, 베를린에는 4개의 투표를 동시에 진행했다.

1️⃣연방하원 총선(Bundestag, 국회의원)

2️⃣베를린 주(Land) 의회 선거(Abgeordnetenhaus, 광역의원)

<참고> 독일은 연방(Bund)과 16개의 주(Länder)로 구성된 철저한 연방제 국가다. 우리가 2번(바이마르에서 본까지) 글에서 접했듯이, 1871년 비스마르크의 제국 통일 이전까지 수많은 영방국가(Territorialstaat: 역사적으로 신성로마제국 내에 존재했던, 독자적인 주권(영토, 군대, 조세권, 외교권)을 행사하던 개별 영토 국가들을 뜻하는 정치사적·법제사적 개념)로 나뉘어 있던 역사적 유산은 오늘날에도 각 주의 강력한 독자성으로 남아있다. 뮌헨이 속한 바이에른(Bayern)의 강렬한 정체성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의 주(Länder)는 한국의 지자체와 같은 단순한 하부 행정조직이 아니라, 고유한 헌법과 사법 최고기관을 지닌 주권적 실체(Gliedstaat)다.

3️⃣자치구의회 선거(Bezirksverordnetenversammlung, BVV) : 베를린 시(City) 내에 분할되어 있는 12개 행정 구역의 구의회

4️⃣대형 부동산((Deutsche Wohnen & Co.) 몰수를 위한 주민투표

심지어 그날 베를린 마라톤이 도심 한복판에서 열려서 도로는 전면 통제되었고, 투표소 시스템은 마비되어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지막 투표 현안인 부동산 몰수 주민투표 사안이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결정하기에 굉장히 무겁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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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투기자본과 대형 거대 부동산 기업이 베를린에 진입하면서 세입자의 천국이라 불리던 곳은 지옥이 되었다.

높은 임대료에 장기간 시달리던 시민슬롯가 들고일어나 주민투표를 발의했는데, 그 타깃이 바로 베를린 내에 3,000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거대 영리 부동산 기업들이었다.대표적인 타깃이 '도이체 보넨(Deutsche Wohnen)'과 같은 상장 기업이었는데, 이들이 소유한 약 24만 채의 아파트를 베를린 주(Land) 정부가 강제로 몰수(유상 매수)하여 공공 소유로 전환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투표가 전 세계 정치학자와 법학자들을 경악하게 만든 이유는,

그들이 내세운 법적 근거가 독일 헌법(Grundgesetz) 제15조 '슬롯화(Vergesellschaftung)' 조항이었기 때문이다.

"Grund und Boden, Naturschätze und Produktionsmittel können zum Zwecke der Vergesellschaftung durch ein Gesetz, das Art und Ausmaß der Entschädigung regelt, in Gemeineigentum oder in andere Formen der Gemeinwirtschaft überführt werden. Für die Entschädigung gilt Artikel 14 Abs. 3 Satz 3 und 4 entsprechend."

(토지, 천연자원 및 생산수단은 슬롯화의 목적으로, 보상의 종류와 정도를 규율하는 법률에 의하여 공공재산 또는 기타 형태의 공공경제로 전환될 수 있다. 보상에 관하여는 제14조 제3항 제3문 및 제4문을 준용한다.)

기본법 제15조는 자본주의의 근간인 '사유재산제'를 헌법의 틀 안에서 부분적으로 해체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예외 조항으로

1949년 제정 이래 한 번도 실제로 발동된 적 없었다. 이 '잠자던 조항'이 베를린의 부동산 문제를 계기로 70여 년 만에 소환된 것이다.

투표 결과는 찬성 56.4%로 압도적인 통과였다.

다만 이 투표는 즉각적인 법적 구속력을 갖는 법안 투표가 아니라, 주 의회에 법안 제정을 요구하는 '결의성 주민투표(Beschlussvolksentscheid)'다.

하지만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엄청났다.

우선 유권자들이 연방하원, 주 의회, 구의회 선거 투표용지뿐만 아니라, 이 복잡하고 이념적인 '부동산 몰수' 투표용지까지 총 4개를 받았는데,

이 안건이 워낙 무겁다 보니 유권자들이 기표소 안에서 지문을 읽고 고민하느라

체류 시간이 통상적인 3분을 넘어 5~10분까지 길어진 것이다.

베를린 선관위는 부동산 몰수라는 뜨거운 감자가 동시에 선거에 미칠 병목 현상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기표소의 회전율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밖에는 줄이 수백 미터 늘어섰고, 그 와중에 투표용지마저 동나고

마라톤 통제로 인해 추가 투표용지 배달이 몇 시간씩 지연되었다.

투표 마감시간이 지났음에도 대기자가 너무 많아 일부 투표소는 저녁8시가 넘어서까지 투표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 언론의 출구조사 결과가 방송으로 발표된 후에 투표하게 되는 제도적 모순이 발생하여 비밀선거를 침해했다.

더욱이 기나긴 대기 줄과 지연을 견디지 못해 수천명의 유권자가 투표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행정 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된 것이다.

https://www.spiegel.de/politik/deutschland/bundestagswahl-2021-chaos-in-berlin-dann-bat-das-wahlamt-die-helfer-beim-rathaus-neue-stimmzettel-zu-holen-a-1721bfb4-7846-4368-89be-f76eedee11ce​



이 베를린 선거 대혼란 사태가 발생한 후 3일 만에 베를린 선거 관리의 최고 바카라임자였던 페트라 미하엘리스(Petra Michaelis) 베를린 주 선거관리위원장(Landeswahlleiterin)은 전격 사퇴했다.

"Ich übernehme die Verantwortung im Rahmen meiner Funktion..."

(저는 주 선거관리위원장이라는 제 직바카라의 틀 안에서, 이번 선거 진행 상황에 대한 모든 바카라임을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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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그녀 역시 "구(Bezirke) 단위 선관위의 실무적 문제"라며 바카라임을 회피하려는듯 했으나, 쏟아지는 비판 속에 결국 선거 시스템을 설계하고 통제하는 최고 관리자로서의 결과적 바카라임을 인정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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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선거 제도를 총괄하는 정치적 최고 바카라임자였던 안드레아스 가이젤(Andreas Geisel)

당시 베를린 주 내무장관(Innensenator)은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그는 야당과 시민슬롯의 거센 사퇴 요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텼다. 그가 내세운 변명은 관료제 특유의 바카라임 회피 논리였다.

"Laut Wahlgesetz und Verfassung habe ich nicht die Fachaufsicht, sondern die Rechtsaufsicht"

(선거법과 헌법에 따르면 나에게는 실무 감독권이 아니라 법적 감독권만 있다.)

"Was würde es besser machen, wenn ich zurücktrete? (...) Nein, ich habe die Wahl nicht organisiert."

(사퇴한다고 해서 무엇이 더 나아지겠는가?(...) 아니다, 나는 그 선거를 (실무적으로) 조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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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선의나 법적 권한의 한계를 방패 삼아, 현장에서 벌어진 참담한 결과에 대한 '바카라임윤리'를 방기한 것인데...

이런 사람은 어딜가나 있기 마련이다.

다만 그런 사람이 좀 더 다수인지,

좀 더 소수인지의 차이일뿐...

결국 안드레아스의 인생 말로가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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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독일 연방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 수립 이후,

선거를 관리하는 국가 기관의 '물류 및 시스템 통제 실패'로 인해

주 의회(Landtag) 규모의 선거에 이러한 혼란이 생긴 것은 독일 민주주의 헌정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혼란이 벌어지고 나서 "내일 당장 선거 무효!"라며 재판부가 즉각 판결을 내린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는 것은 국민의 총의를 뒤엎는 가장 극단적인 조치이므로, 아무리 명백한 시스템 붕괴가 있었다 하더라도 헌법이 정한 엄격한 '선거 심사 절차(Wahlprüfungsverfahren)'를 거쳐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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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장 놀라운 점은..

(이런데서 국가의 철학과 정신적 깊이,

미래세대에 대한 바카라임과 본분이 나타난다.)

혼란 직후

가장 먼저 문제제기 한 것은

선거를 주관했던

다름 아닌 행정 바카라임자들이었다.

본인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들이 관리한 선거에 대해 '무효화(Einspruch, 이의 제기)'를 청구했다. 사퇴한 베를린 주 선관위원장을 대신해 업무를 맡은 베를린 주 선관위(Landeswahlleitung)가 베를린 주 헌법재판소에 주 의회 선거 이의 제기를 청구했다.

연방 선관위원장(Bundeswahlleiter)이었던 게오르크 틸(Georg Thiel)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자체 파악한 뒤 베를린 내 6개 선거구의 연방하원 선거 결과에 대해 직접 이의 제기를 청구했다.

즉, 야당이나 패배한 후보가 억울하다며 소송을 건 것이 아니라,

제도의 운영자(선관위) 자신이 "우리가 설계한 제도의 절차적 인프라가 마비되었으니, 이 결과는 정당성이 없다"며

스스로 제도를 사법부의 수술대 위에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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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연방제 국가이기 때문에,

선거의 종류와 층위가 달랐기 때문에,

당연히 심사 과정도 완전히 분리되어

'주의회 선거'와 '연방하원 선거'의 두 트랙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특히 연방하원 선거의 경우 곧바로 헌법재판소로 간 것이 아니었다.

주 의회선거 : 베를린 주 헌법재판소 관할, 심리 착수

연방하원 선거: 독일 기본법(GG) 제41조, 연방 선거의 이의 제기는 사법부가 아닌 '연방하원(Bundestag) 자체'가 먼저 1차 심사권 보유

- 의회 내에 '선거심사위원회(Wahlprüfungsausschuss)'를 꾸려 스스로 조사하고 표결한 뒤, 그 결정에 불복하는 자가 있을 경우, 비로소 연방헌법재판소(BVerfG)로 넘어가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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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약 1년에서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선거일의 붕괴(2021년 9월 26일): 베를린에서 투표용지 부족, 기표소 마비, 18시 이후 투표 등 사상 초유의 선거 시스템 붕괴 발생

행정 바카라임자 사퇴 및 이의 제기(2021년 10월 ~ 11월): 페트라 미하엘리스 베를린 선관위원장이 사퇴하고, 연방 및 주 선관위가 직접 선거 이의 제기 절차(Einspruch) 개시

[주의회선거] 베를린 주 헌재의 '전면 무효' 판결(2022년 11월 16일): 베를린 주 헌재가 주 의회 및 구의회 선거에서 발생한 구조적 결함을 인정, 사상 최초로 100% 전면 무효 및 재선거를 명령. (이에 따라 2023년 2월 베를린 전체 재선거 실시)

[연방하원선거] 연방하원의 '부분 재투표' 의결(2022년 11월 10일): 독일 연방하원이 자체 선거심사위원회의 조사를 바탕으로, 문제가 심각했던 베를린 내 431개 투표구에 대해서만 '부분 재투표'를 하기로 의결

야당의 헌법소원 제기(2022년 12월): 연방하원의 '부분 재투표' 결정이 너무 축소되었다고 반발한 보수 야당(CDU/CSU)이 "더 넓은 범위의 재선거가 필요하다"며 연방헌법재판소에 제소

연방헌법재판소(Bundesverfassungsgericht, BVerfG)의 최종 판결(2023년 12월 19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야당의 주장을 일부 인용 및 조정하여, 최종적으로 베를린 내 455개 투표구의 부분 재투표를 명령 (이에 따라 2024년 2월 해당 지역 재투표 실시)

https://youtu.be/a3jTqrS8KQk?si=8xd1QMLQI1M8C_Nl​

그런데 너무나도 흥미롭게도 어제 다루었던 3번(헌법적 강경전술)이 여기에 등장한다.

연방하원선거 관련 조치를 자세히 살펴보자.

당시 집권하던 신호등 연정(빨강: SPD/사민당, 초록: 녹색당, 노랑: FDP/자민당)은 재선거 구역이 넓어질 경우 자신들의 의석이 날아갈 것을 우려했다. 결국 그들은 시스템 전체의 정의가 아닌 정당의 생존 인센티브에 따라, 전체 2,256개 선거구 중 오직 431개 투표소(일부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재선거를 치르겠다는 결정을 하원으로 통과시킨 것이다. 이에 분노한 야당(CDU/CSU,기민/기사당)은 "이는 집권 여당의 정파적 이익을 위한 꼼수(하드볼)"라며 연방헌법재판소(BVerfG)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에 연방헌법재판소는 역사상 최초로 연방 총선의 일부 무효 및 재선거 명령을 확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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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VerfG의 판결문핵심논리>

Art. 79 Abs. 3(2번 글:바이마르에서 본까지, 영구조항)의 기본 정신이 흐름

선거 원칙의 침해: 헌재는 "수천 명의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못했거나, 부당한 조건에서 투표했음이 확인되었다"며, 이는 헌법에 명시된 선거의 자유(Freiheit), 보편성(Allgemeinheit), 평등(Gleichheit)의 원칙을 명백히 침해했다고 판시

의회의 가이드라인 교정: 연방헌재는 여당이 합법적 다수결로 밀어붙인 431개 구역안을 기각하고, 자신들이 직권으로 조사를 확대하여 오류가 입증된 455개 선거구로 재선거 범위를 확대하라고 명령

형식주의에 대한 경고: "절차가 다소 혼란스러웠더라도 전체 결과에 영향이 미미하다면 덮고 가야 한다"는 행정적·형식적 합법주의적 논리를 연방헌재는 단호히 거부. 선거 관리가 유권자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방해했다면, 그 자체로 대의제의 정당성은 오염되었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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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사퇴를 거부하고 버티던

안드레아스를 다시 떠올려보자.

대혼란에 대한 바카라임 지기를 끝까지 거부했던 그가 프란치스카 기파이(Franziska Giffey) 시장이 이끄는 새로운 내각에서 '도시개발·건축·주거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며 뻔뻔하게 권력을 연장을때 베를린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고 베를리너들은 결코 잊지 않았다.

베를린 헌법재판소가 2022년 말 "100% 전면 재선거"를 판결하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2023년 2월에 치러진 '재선거'에서,

선거 관리 부실과 행정 무능에 분노한 베를린 시민들은 안드레아스가 속한 사민당(SPD)을 응징했고 역사적인 참패를 안겨주었다.

수십 년간 베를린의 제1당이자 시장직을 독식해 오던 사민당(SPD)은 보수 야당인 기민당(CDU)에게 제1당 자리를 빼앗겼고, 결국 베를린 시장직(Governing Mayor)을 기민당의 카이 베그너(Kai Wegner)에게 넘겨주었다. 권력이 교체되고 기민당-사민당 간의 대연정이 꾸려지는 과정에서, 선거 혼란의 주범이자 민심 이반의 원흉으로 지목된 안드레아스는 새로운 주정부 내각(Senat) 명단에서 완전히 축출되었다. 장관직을 잃고 하루아침에 평의원으로 전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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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2021년 선거 대혼란을 이토록 자세히 살펴본 이유는 명확하다.

독일은 우리 언론이나 정치권의 사례로 종종 언급되곤 한다.

법왜곡죄 도입하는데 독일에도 있단다.

그런데 법왜곡죄는 북한에도 있다.

선거대혼란이 독일에서 있었는데 그때 재투표했다더라. 그러니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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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연 우리가 배워야할 것이 열매라는 결과뿐일까? 그 배경과 절차, 결과를 아우르는 맥락(Context)이 아닐까?

우리가 진정 2021년 독일의 선거 대혼란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재투표를 했다'는 등의 사후적 결론이 아니다.

행정 실패를 마주한 직후부터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1년 반이라는 지난한 시간 동안, 정부와 사법부, 정치권과 깨어있는 시민들이 훼손된 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함께 고통을 감내하며 제도를 가꿔나간 그 '과정'이다. 나치 부역 사법부나 분절된 영방국가라는 역사적 뼈대 등 우리와 근본적인 맥락 자체가 다른 제도를, 스스로 환경을 일궈낼 노력도 없이 껍데기만 수입해 온다고 해서 어떤 효능감도 발휘될 수 없다. 제도는 조문이 아니라 그것을 운영하는 슬롯의 치열한 합의 과정 속에서만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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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지금 우리 정치권과 슬롯 공동체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제도를 운영할 '성숙한 시민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자문하기 위함이다. 제도의 발전은 유능하고 원칙 있는 야당이 존재할 때 비로소 여당의 유능함도 강제되며 이루어진다. 그러나 지금 야당은 어떠한가. 선거 시스템이 무너져 내렸음에도, '절차적 붕괴'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진정으로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을 고민하는 정치 세력이라면, "우리가 승리했다 할지라도 주권자의 투표권이 물리적으로 제약받은 이 선거는 정당성이 없으므로 다시 치러야 한다"고 단호하게 선언해야 옳다. 당장의 특정 개인이 당락하는 것보다 국가의 제도가 훨씬 중요하다. 알량한 승리에 취해 제도의 기초 하드웨어가 박살 나는 것을 방관하는 정치권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그 누구도 이 사태에 바카라임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 선거 제도의 진화는 없다. 승패의 결과로 시스템의 붕괴를 눈감아주는 슬롯는, 결국 그 붕괴된 시스템에 의해 심판받게 될 것이다. 바카라임을 회피했던 베를린의 내무장관 안드레아스의 말로는 이를 증명하는 완벽한 희극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의 태도가 곧 그의 운명이다(Ethos anthropoi daimon)'라고 했다. 실무 감독권이 구청에 있다며 핑계를 대던 안드레아스의 그 얄팍한 태도(Ethos)는, 당장의 사퇴는 면하게 해주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바카라임을 방기한 오만함은 결국 재선거라는 심판대를 거치며, 장관에서 일개 평의원으로 전락하는 그 자신의 찌그러진 운명(Daimon)을 자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