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us Solum_ Archive
넌 대체 정체가 뭐니? 서구(The West)의 본질과 자기교정능력(self-Correction)
나는 스탠포드 대학교 후버 연구소의 스티븐 코트킨(Stephen Kotkin) 교수님을 정말 좋아한다.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조목조목 짚어내는 말솜씨를 듣고 있으면,
'총명한 사람의 눈은 이런거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글은 더 좋다.
그는 최근 스탈린 시리즈의 마지막을 탈고했다고 한다.
2014년 그의 스탈린 시리즈 1권(Stalin: Volume I: Paradoxes of Power, 1878-1928)이라는
벽돌바카라이 출간되었을때 내가 놀랐던 점은 그 바카라의 두께가 아니라 그 무거운 주제를
그렇게나 많은 대중이 기꺼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읽어낸다는 사실이었다.
2018년에 스탈린 2권(Stalin: Volume II: Waiting for Hitler, 1929-1941)이 출간되었을때도 마찬가지 였다.
당초 올해 2월로 예정되었던 마지막 3권(Stalin, Volume III: Totalitarian Superpower)이 건강문제로 순연되었지만
바로 6일전 업로드된 Uncommon Knowledge 대담(아래 링크 참고)에서 탈고 소식을 전했으니
올해 안에는 출간될 수 있을것 같아 두근두근..기대된다.
스탈린 관련된 사안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오늘의 주제는 '서구(The West/Western)'라는 개념이다.
코트킨 교수님은 프린스턴 대학에 계실때부터 이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셨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구(Western)는 지리적이 아닌 철저히 제도적 개념이다.
그는 웨스턴을 "가치와 제도가 하나로 묶인 패키지(Institutional Package)"라고 표현한다.
그 가치와 제도에 동의하고 이를 구현해 낸다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열린 클럽(Open Club)"인 것이다.
이 클럽의 핵심 가입 조건은 혈통(피부색)이나 지리적 위치가 아니다.
다음 4가지 가치에 대한 수호 여부로 결정된다.
1️⃣ 법의 지배 (Rule of Law)
2️⃣ 자유 민주주의와 3권 분립(권력 분립)
3️⃣ 사유 재산권과 열린 시장 경제
4️⃣ 개인의 존엄성과 다원주의 존중
그렇다면 예를들어보자, 러시아는 어떤가?
러시아는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톨스토이의 문학을 공유하는, 역사적·문화적으로 명백한 유럽 대륙의 일원이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의 시스템을 보면 1인 장기 독재, 심판(사법부)의 시녀화, 국가가 통제하는 과두제 경제 등 '웨스턴 클럽'의 가입 조건인 법치와 민주주의를 완전히 짓밟고 있다. 즉 러시아는 지리적으로는 유럽이지만, 제도적으로 서구(Not Western)가 아니다.
반면 일본은? 일본은 극동 아시아에 위치하며, 서구의 기독교적 뿌리나 백인 중심의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전후 일본은 다당제 민주주의, 확고한 법치주의, 고도화된 자본주의라는 '웨스턴 패키지'를 완벽하게 내재화했다. 일본은 지리적으로는 철저히 동양이지만, 서구 세계가 발명한 가장 강력한 무기인 '제도(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장착했기에
국제정치학적으로는 완벽한 '서방(Western)' 국가인 것이다.
한마디로 '서구(The West)'라는 개념은 방위를 뜻하는 서쪽 외에, 지리적 위치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어떤 제도로 통치되는가를 묻는 정체(政體, Regime)에 대한 질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종종 "도대체 그사람은 정체(正體)가 뭐야?" 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이다.
주로 눈앞에 보이는 겉모습이나 스스로 내세우는 명분이 아니라
'숨겨진 진짜 본질'이 궁금할때 그런말을 하게된다.
겉으로는 공익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행동은 철저히 이기적일 때,
즉 '말(Text)'과 '행동(Context)'이 충돌할 때 우리는 그 간극을 의심하며 "정체"를 묻는다.
왜냐하면 본질(正體)과 체제(政體)는 결국 하나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공개된
코트킨 교수님의 최근 Uncommon Knowledge(2006.5.30)
대담에는 생각해볼 화두가 많다. 내용을 살펴보자.
그는 이란 정권의 위기를 진단하며, 독재 정권을 '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악당들'로 치부하는
대중의 피상적인 시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정권은 곧 슬롯다(a regime is a society)"라면서
9천만 명의 이란인 중 대다수가 정권을 혐오하더라도,
정권을 위해 총을 들고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1,000만 명의 충성파(슬롯적 이동의 사다리로 정권을 택한 자들)가 존재하는 한
그 체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의 경쟁적 권위주의가
어떻게 소수의 권력자뿐만 아니라, 그 체제에서 이익을 얻는 방대한 '충성파 슬롯'를 구축하는지
어떻게 그 알량한 생명력을 유지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그는 2022년부터 주창해 온 ‘휴전(Armistice)’ 모델의 논리를 강화했다.
우크라이나는 동부의 폐허가 된 영토를 잃었지만,
수도 키이우를 지켜냄으로써 가장 거대한 '주권의 전투'에서 이미 승리했다고 분석했다.
파괴된 영토 1센치미터를 더 수복하기 위해 세대를 갈아 넣는 대신, 지금 당장 전투를 멈추고 보존된 영토와 훌륭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폴란드나 한국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웨스턴(Western) 시스템'으로 편입되는 진정한 승리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패권 균열 혹은 쇠퇴론에 대해서는 통계와 제도의 힘을 들며 반박했다.
미국은 군사력이나 경제력(1880년 이후 세계 GDP의 25%를 꾸준히 유지, 1946-1960에는 세계 GDP의 40%/ 제조업의 50%)를 뿐만 아니라,
역사상 그 어떤 제국도 가지지 못했던 두 가지 궁극의 힘을 가졌다고 평가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민(immigration)'과 '동맹 (alliances)'이라는 역량이다.
중국은 13억 인구에서 인재를 뽑지만
미국은 전 세계 80억 인구에서 인재를 흡수할 수 있는 제도를 가졌으며,
이 압도적인 소프트파워*가 결국은 체제 경쟁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참고> 조셉 나이(Joseph Nye)의 소프트파워(Soft Power) 3요소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을 창시한 조셉 나이는 이 힘의 원천을 세 가지로 명확히 규정
문화 (Culture): 타인을 매료시키는 문화적 매력 (대중이 아는 영역)
외교 정바카라 (Foreign Policies): 정당성과 도덕적 권위를 갖춘 외교
정치적 가치와 제도 (Political Values & Institutions): 국내외에서 실현되는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의 시스템
그런데 이 대담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제도의 자기 교정능력(self-Correction) 부분이다.
현재 미국의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와 소셜미디어로 인한 혼란, 심지어 부패까지도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소설가 필립 로스(Philip Roth)의 표현을 빌려 이를 "토착적 미국식 광기(indigenous American berserk)"가 분출된 상태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나 러시아의 독재와 서구의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다른 점은,
250년 된 이 헌정 공화국이 위기 때마다
스스로 궤도를 수정해 낸 '교정 기제와 진화(corrective mechanisms & renewal)'의 역사를 가졌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통치자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시민권의 확장과 치열한 내부 투쟁이라는 합법적 제도의 틀 안에서
스스로 오류를 바로잡는 시스템.
이것이 권위주의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서구(Western) 제도의 최종 병기라는 것이다.
결국 국가가 가진 힘의 원천은 군함의 숫자가 아니라, 그 슬롯가 어떤 인센티브 구조와 제도의 룰을 가졌는가로 귀결된다.
더 직관적으로 표현해 볼까? "당신 급여를 어떤 통화로 받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답이 바로 패권국가다.
아무리 새로운 다자주의 기구가 생겨나고, G2, G7,G20를 늘려간다고 해도
특정 신흥국의 미래를 유망하게 본다고 해도
정작 그 나라의 통화로 내 재산을 보관하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모든 답은 거기에 있다.
진정한 패권과 강대국의 힘은 '하드파워를 기반으로 한 소프트파워'에서 나온다.
단 여기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것은 '하드파워를 기반으로 해야한다'는 점이다.
뼈대 없는 살은 흘러내리고 만다.
이 구조에서 뼈대가 국가관과 정체성이라는 물리적 억제력(하드파워)이라면,
살은 세계의 인재를 매료시키고 스스로 오류를 교정해내는 '유연한 제도(institutions)'(소프트파워)다.
단 한번이라도 국적이나 인종, 성별로 차별받아본적이 있다면,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표면적으로 서류상의 국적을 바꾼다고 한들 내 피에 흐르는 정체성이 단숨에 바뀌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발 딛고 선 이 나라가 건강한 제도를 구축하고 자정능력을 갖춘 미래로 나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펄펄 끓는 물 속에서 쪄 죽는 줄도 모르고
낡은 이념에 갇혀 내부의 적만 찌르고 있다가는 끝도 없는 하향평준화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자유든, 평화든,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상위의 가치들은 결코 종이 위의 선언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나를 부당하게 때리면, 내 가치를 공격하면, 그 즉시 너도 파멸한다"는 압도적이고 물리적인 억제력(Deterrence)이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평화의 공간이 열린다.
미국의 국부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이 남긴 통찰은 25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If men were angels, no government would be necessary.
만약 인간이 천사라면 정부는 필요 없을 것이다.
If angels were to govern men, neither external nor internal controls on government would be necessary.
천사가 인간을 다스린다면 정부에 대한 그 어떤 외부적, 내부적 통제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In framing a government which is to be administered by men over men, the great difficulty lies in this:
인간이 인간을 다스릴 정부를 구성함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you must first enable the government to control the governed; and in the next place oblige it to control itself.먼저 정부가 피통치자를 통제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하고, 그다음으로는 정부가 스스로를 통제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방주의자 논고 제51편(Federalist No. 51), 1788>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제도는 공허하며,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힘은 맹목적이다.
권위주의의 어리석은 헌법적 하드볼 속에서도 민주주의가 끝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치열한 갈등 속에서도 끊임없이 스스로의 뼈대와 살을 갈아 끼울 수 있는
그 위대한 '교정의 힘'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가장 두렵고도 실존적인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만약 그 '교정의 힘'이 없다면?
애초에 그런것을 발휘해 본 역사적 근육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스스로 내부적으로 협의하고
고민해서 낡은 시스템을 고쳐본
'자정 작용의 성공 경험'이 없는 국가는,
과연 위기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직후, 한반도가 마주했던 비극의 기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가혹한 식민 지배를 견뎌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프랑스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승전국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
끝내 국토가 양단되는 뼈아픈 역사를 겪어야 했다.
거대한 국제정치의 역학이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으나,
가장 냉혹한 본질적 원인은 우리 내부에 있었다.
당시 우리는 해방 공간이라는 거대한 전환기 속에서, 국제슬롯를 향해 '하나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치열하게 대립하되 끝내 공통의 분모를 찾아내는 합의와 설득의 과정, 즉 '시스템의 자정 작용'을 스스로 증명해 내지 못한 것이다.
분열된 목소리는 외세의 논리 앞에 무력했고, 교정의 힘을 상실한 대가는 가혹한 분단과 전쟁이라는 형벌이었다.
합의와 설득은 결코 헌법전 속의 당위나 말만 청산유수인 바카라상물림의 언어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한발씩 양보하면서 끝끝내 공멸을 막아냈다"는 묵직한 '성공 경험'의 축적 위에서만 피어난다.
어쩌면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는,
대화로 시스템을 고쳐본 기억보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절멸시킴으로써 생존했던 야만의 기억이 더 짙게 배어있을지도 모른다.
합의의 성공 경험이 부재한 슬롯는 작은 위기 앞에서도 쉽게 체제의 붕괴를 입에 올리고 서로를 향해 헌법적 하드볼을 던진다.
뼈대 없는 살은 흘러내리고,
교정 능력을 상실한 국가는 표류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위기 앞에서 스스로 궤도를 수정할 자생력을 구축해 가고 있는것일까?
아니면 1945년의 그 분열된 광장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또다시 우리의 뼈대와 살이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것을 그저 방관하고 있는것일까?
이제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정체(正體)를 물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