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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적 강경전술(Constitutional Hardball)
헌법적 강경전술(Constitutional Hardball)은 야구에서 온 개념이라고 한다.
야구선수가 규칙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상대팀을 제압하기 위해 강한 공을 던지 듯이,
정치인들도 형식적인 헌법이나 법률의 테두리 내에 있는 수단을 동원하여 권력을 획득하거나 유지하려는 전략을 말한다.
이 개념은 2004년 미국 헌법학계의 권위자인 마크 투쉬넷(Mark Tushnet) 하버드 로스쿨 교수님께서 존 마셜 로 리뷰(John Marshall Law Review)에 기고한 논문(<Constitutional Hardball>)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논문에서 투쉬넷 교수님은 이 개념에 대해 법조문 자체를 명백히 위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헌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지탱해 온 '불문율(unwritten rules)'과 '기존의 규범'을 한계선까지 밀어붙이며 파괴하는 정치적 행위들을 지칭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개념이 대중에게 구체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아무래도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다니엘 지블랫(Daniel Ziblatt)의 저서인<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2018)>에서 구체적으로 인용하면서부터다. 현대 민주주의가 군사 쿠데타(Coup d'État) 같은 불법적 방식이 아니라 합법적 절차를 남용한 정치적 꼼수와 강경 전술에 의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설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론적 틀이 된 것이다. 헌법적 강경전술의 맥락은 단순히 개별 정치인들의 도덕적 타락이나 일시적인 일탈일뿐만 아니라, 제도의 구조적 결함과 권력 투쟁의 본질이 맞닿아 있기에 이는 매우 중요한 철학적, 제도주의적 화두라고 볼 수 있다.
헌법의 명문 규정(법의 문구)은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제도를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불문율(규범)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를 철저히 파괴하여 권력을 극대화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일말의 가바카라도 없이 이러한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만연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정치제도의 구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승자독식의 선거 및 권력 구조가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생존의 압력이다.
권력을 잃는 것이 곧 모든 가치와 이익의 상실, 나아가 정치적 소멸을 의미하는 구조 속에서, 정치 세력은 살아남기 위해 헌법이 허용하는 절차적 빈틈을 무자비하고 집요하게 파고들 수밖에 없는 강력한 유인을 갖게 된다. 상대를 절멸시켜할 적으로 간주하고 고도의 당파성을 유지하는 것만이 생존의 묘수인 것이다. 오늘날 정치적 담론과 타협이 실종된 것은 물론 개인의 지적인 토양부족이나 토론 문화의 부재도 있겠지만 이러한 구조적 생존 투쟁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둘째, 자정능력을 상실한 기성 정치 시스템이다.
과거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권력의 폭주를 제어하는 암묵적인 한계선이 작동했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헌법 조문이 아니라 정당의 제도적 수호(Gatekeeping)역할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로서 기능해야 할 기성 정치(정당, 정치인 등)(Establishment)들이 스스로 그 기준(Standards)을 상실하고 자정 작용에 실패했다는데 있다. 제도적 여과 기능이 무너지면서, 겉보기에 절차적 합법성만 띠고 있다면 아무리 반민주적이고 극단적인 진영의 요구라도 선거 패배의 두려움 때문에 최종적으로 굴복하고 수용하게 되는 치명적인 맹점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사법적 리스크가 있거나, 극단주의적이거나, 민주적 규범을 무시하는 선동가들은 애초에 권력 근처에 가지 못하도록 정당이 공천 과정에서 걸러냈어야 하는데 팬덤의 표를 얻기위해, 계파의 익익을 얻기 위해 정당 고유의 역할을 포기하고 엑스맨들을 스스로 집안에 들인 것이다. 우리는 어제 히틀러와 힌덴부르크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유사함을 보았다.
셋째, 규범적 바카라임성의 구조적 증발이다.
헌법적 하드볼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것이 철저히 합법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데 있다. 사법부 임명 지연이나 예산안을 볼모로 잡는 행위 등은 겉보기에는 매우 기술적이고 절차적인 논쟁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수평적 바카라임성을 형해화하려는 광범위한 당파전쟁이 자리하고 있다. 헌법의 활자는 지키되 제도의 철학적 존재가치는 훼손하는 이 방식은, 막스 베버(Max Weber)가 강조한 바카라임윤리(Verantwortungsethik)가 정치 시스템 내에서 완벽하게 증발해 버렸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그 누구도 바카라임지지 않은 채, 말만 청산유수인 말의 질서가 무너진 시대에 살고 있다. 상호관용이 약화되어 제도적 자제가 붕괴되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며, 민주주의가 후퇴(backsliding)하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
그렇다면 어제 살펴본 마크 트웨인을 다시 떠올리며 역사의 운율(Rhyme)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헌법 개정과 규칙의 무기화: 승자독식의 압력 속에서 자신의 권력을 영구화하기 위해 경쟁의 장 자체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재설계
-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어떻게 입법 권력을 독점하며 견제와 균형을 무력화하는지 보여준 사례로 헌법 개정과 게리맨더링(자의적인 선거구 획정)을 통해, 야당이 득표율에서 앞서더라도 의석수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기형적인 선거 생태계를 구축
제3지대나 새로운 정치 세력의 진입을 원천 차단하는 완벽한 합법적 독재의 구조화
-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Hugo Chávez)
집권 초기 제헌의회를 소집하여 헌법을 통째로 새로 쓰며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
정치 엘리트들의 자정 능력이 붕괴된 틈을 타, 합법적인 투표 절차를 거쳐 권력 집중을 정당화
최후의 보루 붕괴, 사법부 패킹(Court-Packing): 헌법적 강경전술의 타깃은 언제나 독립적인 감시 기구인 선관위, 헌법재판소, 대법원
-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Juan Perón): 1940년대임에도 매우 현대적 헌법적 강경전술의 원형을 시전
의회를 장악한 뒤 대법관들을 탄핵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법원을 채우는 '법원 패킹'을 단행
정당의 검증(Gatekeeping) 기능을 우회하기 위해 노동조합이라는 장외 대중을 직접 동원하여 체제 수호자들을 압박
-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Recep Tayyip Erdoğan) & 헝가리의 오르반:
에르도안은 쿠데타 시도라는 국가적 위기를 구실로 사법부 내의 반대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을 개조
오르반 역시 판사들의 정년을 갑자기 낮춰 독립적인 노장 법관들을 강제 퇴직시키고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인사들로 교체
경쟁적 권위주의로의 이행: 사법부와 선거 제도를 장악한 후, 이들은 언론과 야당의 손발을 묶어 본질적으로 경쟁적 권위주의 체제(Competitive Authoritarianism*)로 이행
- 튀르키예 & 베네수엘라: 야당과 언론이 존재하고 선거도 정기적으로 치러지지만, 실질적인 경쟁은 불가능
비판적인 언론사에 세금 폭탄을 물리거나 방송 면허를 취소하고, 국가 자원을 선거에 대거 동원하는 방식으로 미디어를 통제
겉보기에는 야당이 선거에 지고 언론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이지만,
내재적으로는 반대파의 생존 공간 자체를 조직적으로 해체
이들은 군부의 탱크를 앞세운 물리적 쿠데타가 아니라, 선거를 통해 획득한 권력을 바탕으로 헌법적 강경전술을 구사하며 민주주의의 면역 체계를 내부에서부터 차근차근 파괴해갔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상대를 합법적인 경쟁자가 아닌 절멸의 대상으로 보니 당연히 상호관용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 성설이다. 헌법적 강경전술의 사용이 일상화되다보니 제도적 자제 자체가 형해화된다. 결국 진영논리에 갇혀 경제적 및 슬롯적 불평등이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한다. 또 다시 반복이다. 무한반복이다. 앞이 아닌 뒤로...
1838년, 아브라함 링컨은 '정치 제도의 영속성(The Perpetuation of Our Political Institutions)' 연설에서
헌법 제정(1789) 후 고작 5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신생국 미국에 다가올 치명적인 위협을 경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If destruction be our lot, we must ourselves be its author and finisher.
만약 파멸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우리 스스로가 그 파멸의 저자이자 완성자가 될 것이다.
As a nation of freemen, we must live through all time, or die by suicide."
자유민으로 이루어진 국가로서 우리는 영원히 살아남거나, 아니면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링컨의 통찰은 헌법적 강경전술이 만연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놀랄만큼 정확히 들어맞는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이제 외부의 군대나 불법적인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선거로 선출된 지도자들이 헌법이라는 칼을 쥐고,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도의 숨통을 끊어놓는 합법적 자살의 길을 간다. 우리는 흔히 자유민주주의가 한 번 쟁취하면 영원히 유지되는 굳건한 기념비로 착각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제도의 흙을 뒤집고 규범을 가꾸지 않으면, 순식간에 극단주의와 혐오라는 잡초가 무성해져 금세 망가져 버리고 마는 아주 연약한, 매우 손이 많이 가는 생태계다. 승자독식의 압력 속에서 바카라임윤리가 증발하고 제도적 자제라는 보루가 무너진 체제의 끝은, 결국 방치된 내부로부터의 자멸 뿐이다.
역사속의 파괴적인 체제 붕괴의 궤적을 단순히 방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력이 제도의 취약점을 찌르는 방식을 통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헌법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비극의 공범이 될 것이다. 알면서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다르다. 역사의 비극적 운율이 현실을 집어삼키기 전에, 우리는 이러한 합법적 자살의 징후들을 명확히 분석하고 적어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
>>투쉬넷(Mark Tushnet) 교수님 논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