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us Solum_ Archive
우리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 명시한다. 하지만 지난 40년의 역사에서 우리는 절반의 성공만을 거뒀다. 직선제와 투표라는 ‘민주’의 형식은 눈부시게 발전했으나, 그 권력이 공공을 위해 절제되며 행사되어야 한다는 ‘공화’의 가치는 실종됐다. 다수의 의지가 법이라는 탈을 쓰고 소수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선출된 권력이 국가를 특정 진영의 전유물로 여기는 현상은 바로 이 공화주의의 결핍에서 기인한다. 투표함 속에만 갇힌 민주를 넘어, 과연 우리 삶을 지탱하는 ‘공화’는 어디에 있는가?
공화(Res publica)는 라틴어로 ‘공공의 것’을 뜻한다. 이는 국가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님을 선언하는 것이며, 지배받지 않는 ‘자유 시민들의 연대’를 전제로 한다. 신공화주의자 필립 프팉(Philip Pettit)은 자유를 단순히 간섭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타인의 자의적인 의지에 종속되지 않는 상태’, 즉 비예속(Non-domination)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지금의 여의도는 어떠한가. 청년 정치를 권장한다는 위선적인 수사 뒤에는, ‘돈 없으면 꿈조차 꾸지 말라’는 비정한 금권의 장벽과 실력보다 권력자의 줄에 서서 영혼을 담보 잡혀야만 기회가 주어지는 ‘예속의 생태계’가 버티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재를 길러내는 ‘토양’ 자체가 반(反)공화적으로 황폐화 되었다는점이다. 민주주의가 데모와 집회를 통해 쟁취할 수 있는 폭발적 ‘분출의 역사’였다면, 공화주의는 시민적 덕성과 교양을 바탕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야 하는 ‘벽돌의 역사’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치는 사람을 키우지 않고 소모한다. 유능한 인재를 독립적인 전문가로 대우하기보다, 선거철 잠깐 쓰고 버리는 일회용 땔감으로 소비하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이러한 기형적인 환경에서는 필연적으로 정치의 질적 타락을 가져온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35조를 살펴보면 선거사무원에게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당만을 허용하고, 캠프의 전략을 짜는 핵심 인력도 법적으로 ‘무보수 자원봉사자’로 묶어두었다. 정당한 지적 노동의 대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누군가의 시혜나 향후의 ‘자리’라는 사적 약속에 의존해 정계에 입문한 인재들은 시작부터 ‘정치적 채무자’가 된다. 시작부터 예속을 배운 이들에게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공화주의적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이들이 가장 젊고 발전 가능성이 큰 시기에 ‘강약약강’의 생존법과 비굴한 예속을 먼저 배울 때, 정치는 정바카라의 비전 대신 선정적인 언어로 서로를 생채기 내는 ‘정치돌’의 전장이 된다. 이들은 기성 정치인과는 또 다른 결의 피로감을 주지만, 사실 뒤틀린 환경에 적응한 자들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가 관심을 두고 논의해야 할 부분은, 전문성을 착취하고 예속을 강요하는 ‘공화가 사라진 대한민국의 정치 설계도’다.
새벽녘 출근길의 고단함과 비루한 일상의 번민을 묵묵히 감내하며 규칙적인 온라인 게임인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이들, 슬롯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씩씩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기억이 없는 이들이 내놓는 정바카라이 국민의 삶을 바꿀 리 만무하다. 즉 평범한 ‘생활인’들이 정치에 들어올 수 없는 구조, 정당한 노동의 가치 대신 사적인 연줄이 통하는 이 비상식적인 생태계가 계속되는 한, 정치는 결코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공화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치를 향한 ‘진입로’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 첫째, 선거법이라는 물리적 장벽을 개정해야 한다. 법원은 선거운동이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이 아니라고 보지만, 이러한 낡은 인식이 오히려 유능한 시민의 진입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되고 있다. 당장 생계 걱정 없이 선거 캠프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청년이 우리 슬롯에 몇이나 되겠는가. 청년들이 자신의 이름과 바카라임을 걸고 수행한 전문적 작업에 대해 정당한 가치를 평가받는 ‘신의성실의 원칙’이 정치 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둘째, 나랏돈에 기대어 진영의 카르텔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실력으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며 정치에 기여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그래야 이러한 청년들이 자라서 민주와 공화의 마인드를 두루 지닌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