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let me Go(2005)를 처음 읽게된 것은 바카라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였다.
이 작가의 The Remains of the Day(1989)도 너무 좋았기 때문에 믿음이 있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5세 때 영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전부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데,
'화자'와 '기억의 재구성'이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과거를 회고할 때 진실을 직면하기보다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 기억을 기만하거나 편집한다.
회피의 방식이 매우 고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독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작품을 읽으면 화병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한다.
사이다 쾌감을 원하는 요즘 세태에는 맞지 않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은 단 한 번도 도망치거나 시스템에 반항하지 않는다.
다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커플은 살아남을 수도 있다는 그 실오라기 같은 희망에 기댄다.
이 바카라을 읽고 나면 미셸 푸코를 다시한번 꺼내보게 된다.
그가 말한 '생명정치'의 극단적 은유가 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권력은 주체를 무력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규율과 교육을 통해 주체 스스로 권력의 의지를 내면화하도록 만든다.
헤일셤은 클론들에게 물리적 억압 대신 '자부심'과 '순응'을 주입하며,
이들이 자신의 죽음을 슬롯를 위한 숭고한 의무로 받아들이도록 길들인 완벽한 '판옵티콘' 그 자체다.
그렇게 바카라이 나온지 20년이 지났다. 그리고 최근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짧은 2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https://youtu.be/PIYx14nN9Cw?si=3Y15YKW_X5zKCxmi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동안 자신이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대체 왜 주인공들은 그 끔찍한 디스토피아에서 도망치거나 시스템에 반항하지 않는가?" 였다고 한다.
이시구로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부조리한 시스템에 맞서 싸우는 '영웅적인 반항'을 주로 다루지만,
자신은 오히려 반대 지점에 매료되었다면서,
"바카라과 영화 밖의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은 보통 반항하지 않는다"면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 같은 광산이나 공장에서 일했고, 노예로 살았으며,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참혹한 전쟁터로 끌려가 죽거나, 끔찍한 결혼 생활을 그저 견뎌낸다는 것이다.
이시구로는 "자신에게 쥐어진 참혹한 패를 체념하듯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아내는 평범한 인간들의 역사"를 다루고자 했다고 한다.
"그것이 당신이 아는 전부라면, 그 세계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당신은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그 경계(boundaries)조차 볼 수 없으며,
무엇에 대항해 싸워야 할지도 알지 못합니다."
판옵티콘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평생을 살았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를 애초에 인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신 사람들은 그 끔찍한 운명 속에서도
어떻게든 사랑, 우정, 그리고 의미 있고 품위 있는(decent)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때로는 영웅적으로(heroically) 애를 씁니다."
나는 요즘 decent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데,
보통 이 단어를 '품위 있는, 예의 바른, 괜찮은' 정도로 번역하지만,
솔직히 그 정도로는 'Decent'의 본질을 절반밖에 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Decency는 귀족적인 우아함이나 격식을 차리는 예의의 맥락에서만 쓰이는 단어가 아니다.
Decent는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 절대로 밑으로 내려가지 않아야 할 도덕적 하한선"을 지키는 태도를 뜻한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묵묵히 전염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리외 의사에게
누군가 왜 그렇게 헌신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이것은 영웅주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품위(Decency)*의 문제입니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품위를 지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Decency는 거창한 희생이나 대단한 선행이 아니다.
세상이 무너지고 부조리한 재난이 닥쳐도,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
즉, '괴물이 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려는 평범한 선함'의 발현이다.
'평범한 선함'이라... 쓰면서도 이게 뭐였지??를 생각하게 되는 생경함..
길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가 버스 노선이나 지도를 물어보시면
같이 고민하는거나 알려드리는거,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반사적으로 일어나 양보하는거,
내가 이런일을 하면서도 왜 하는지 설명이나 의식조차 하지 않는 그런거.. 아닐까?
한국어에서 사실 이와 가장 맞닿아 있는 단어는 '염치'일것이다.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그런데 또 염치를 써버리면 전반적으로 글이 너무 혼줄모드가 되어 버린다.
아무튼..
아무튼 가즈오 이시구로가 인터뷰에서 "그 끔찍한 운명 속에서도 어떻게든 의미 있고 품위 있는(decent) 것을 찾으려 애쓴다"고 했을 때의 그 'decent' 역시, 죽음 앞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염치와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실존적 방어선인 셈이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캐시가 토미를 잃은 지 2주가 되었다고,
자신도 한달 후에 첫번째 수술(기증) 통보를 받았다면서도 그와중에 이렇게 되내일때 맘이 너무 아프다.
"I remind myself I was lucky to have had any time with him at all."
(나는 내가 그와 조금이라도 함께할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운이 좋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처럼 고요하게 받아들이고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을 정성스럽게 간직하는 일이 가즈오 이시구로가 보여주고 싶었던
최후의 순간에 빛나는 인간의 Decency(품위)였던 것이다.
나의 유한함과 세상의 잔인함 앞에서도 결코 이성을 잃지 않고, 분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며,
죽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내 삶의 가장 온전한 의미(사랑했던 기억)를 지켜내려는 그 차분한 태도
이 소설을 읽고나면 마음이 너덜너덜해진다.
그럼에도 매우 좋은 작품이다.
인간이 온전히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달까?
https://youtu.be/vIECpiR8y04?si=gpbr224Eddgv-_0U
<연계 인터뷰>
https://youtu.be/DgB3WS1vDek?si=3nNE00WjhJbHnZ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