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에 기생하며 명맥을 잇는 한국 '청년 정치'의 얄팍한 아마추어리즘과
도덕적 유토피아의 폐허 위에서 '차가운 효율'을 무기로 등장한 스핑크스, 알리스 바이델의 역설
전통과 초국적 자본, 권위주의가 융합된 '정치적 포식자'의 실체를 해부한다.
철학을 상실한 무능한 체제가 진화된 괴물에게 목을 내어주는 파국의 민낯
치열한 지적 서사 없이 기회주의로 연명하는 자들을 향한 서늘한 직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
ALTUS SOLUM 2026.9.9.(수)
내가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그 공동대표인 알리스 바이델(Alice Weidel, 1979-)을 진지하게 보기 시작한 계기는, 아무래도 일론 머스크가 그녀와 장시간 나눈 대담이었다. 그 대화의 궤적을 쫓아가다 보면, AfD를 그저 '독일의 네오나치'나 '시대착오적인 인종차별주의 정당' 정도로 피상적으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머스크는 바보가 아니다. 테슬라 기가팩토리를 독일에 세우고 운영하며 겪을 만큼 겪은 그가, 분 단위로 여러 개의 회사를 경영하는 그 바쁜 사람이, 그저 한가해서 네오나치 정치인을 만나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고 전 세계에 중계하지는 않는다. 그는 독일의 내부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대담에서 바이델이 펼친 논리에 머스크가 깊이 공감한 이유는, 그녀가 내뱉는 언어가 맹목적인 증오가 아니라 매우 노골적인 '현실의 논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민당(SPD), 녹색당, 그리고 중도 우파 기민당(CDU)마저 도덕적 유토피아에 빠져 있을 때, 바이델은 차가운 전문가의 얼굴을 하고 독일이 직면한 진짜 위기를 찌른다. 그녀는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이념적 몽상에 빠져 탈원전을 강행하고 국경을 통제 없이 개방함으로써 "국가를 완벽하게 망쳤다(ruined)"고 평가한다. 이념의 폐허 위에서 제조업이 무너지고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 현실. 이 압도적인 위기 앞에서 그녀의 진단은, 철학을 잃어버린 기성 정치인들의 텅 빈 구호보다 서민들에겐 훨씬 더 치명적인 울림을 주는 것이다. 도대체 알리스 바이델은 누구인가?
□ 바그너의 성지에서 자본주의의 칼을 벼리다
바이델은 1979년, 독일의 소도시 귀터슬로(Gütersloh)에서 태어났다. 겉보기엔 한적한 시골 마을 같지만, 이곳은 단순한 시골 동네가 아니다. 전 세계 명품 가전의 상징인 '밀레(Miele)'의 본사가 자리한, 작지만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은밀한 제국이다. 밀레와 찡칸(Zinkann) 가문의 합작으로 시작된 이 동네의 생태계는 독일 특유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거대 기업의 오너와 전 직원이 같은 동네에 살며 마트에서 장을 보고 아이들을 같은 학교에 보내는, 끈끈하고 가족주의적인 지역 밀착형 자본주의가 뿌리내린 곳이다. "독일인들의 유일한 불만은 밀레 세탁기가 30년이 넘어도 고장 나지 않아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귀터슬로는 가장 견고하고 실용적이며 '독일적인 전통'이 완벽하게 보존된 공간이다.
그러나 이처럼 끈끈하고 견고한 전통의 요람에서 자란 소녀가 20대 학업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공간은, 귀터슬로와는 멀리 떨어진 '바이로이트 대학교(University of Bayreuth)'였다. 하지만 바이로이트가 어떤 곳인가? 매년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오페라가 울려 퍼지는, 게르만 신화와 민족주의의 절대적 성지이자 아돌프 히틀러가 가장 사랑했던 문화적 수도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나치 친위대 소속 군사 법관이었다는 사실은 이 서사에 그림자를 더한다.) 독일 전통과 순혈주의의 그림자가 가장 짙게 밴 이 낭만주의의 성지에서,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차갑고 세속적인 글로벌 자본주의의 논리(경제학+경영학)를 흡수했다.
이 이질적인 결합은 그녀의 사생활에서 극에 달한다. 공개적인 동성애자인 그녀의 파트너는 스리랑카 출신으로 스위스에서 자란 영화 제작자이며, 이들은 두 명의 입양아를 키우고 있다. 더우 흥미로운 것은 독일에 적을 두고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고는 있지만, 정작 본인은 가족들과 주로 '스위스'에 거주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보수 정치'의 잣대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모순이다.
참고로 이런 모순적 궤적은 독일 기성 보수 정치 전반에 번지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최근 기민당(CDU) 원내대표직에서 불명예 퇴진한 옌스 스판(Jens Spahn, 1980-)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보건부 장관 시절 '여성 신체의 상업화'를 막아야 한다며 독일 내 대리모 금지법을 강력히 옹호했다. 그래 놓고 정작 자신은 동성 파트너와 아이를 갖기 위해 수억 원을 들여 미국으로 날아가 대리모 출산을 감행했다. 차라리 '가족의 다양성'을 당당하게 외쳤다면 모를까, 자신이 만든 엄격한 법과 도덕은 서민들에게만 강요하고, 자본과 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은 언제든 돈으로 국경을 넘어 법을 우회하는 지독한 위선(계급 정치)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바이델의 경우, 파트너가 동남아 출신이고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주류 언론의 공격을 튕겨내는 완벽한 방패이자 현대적인 알리바이로 작동한다. 기성 언론이 그녀를 향해 "파시스트이자 인종차별주의자"라고 공격할 때, 동성 파트너의 존재 자체가 그 비판을 무력화시킨다. 그녀는 낡은 과거의 망령이 아니라, 다문화와 초국적 자본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면서도 대중의 분노를 정교하게 조직해 내는 지극히 현대적인 정치적 영악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 골드만삭스의 권태, 그리고 '중국'
바이로이트를 졸업한 바이델이 향한 곳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심장인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였다. 그러나 그녀는 관료주의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서구 금융 시스템에서 곧 '지루함'을 느끼고 아시아로 떠난다. 홍콩을 거쳐 중국은행(Bank of China) 등에서 일하며 6년 넘게 중국에 거주한 것이다. 그녀가 2011년에 받은 박사 논문의 주제는 다름 아닌 <중국의 연금 제도((the future of the Chinese pension system)>였다.
그녀가 아시아의 심장부에서 목격하고 매료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평소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의 무자비한 경제적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그녀의 눈에 비친 중국은, 서구 민주주의의 복잡한 절차나 인권, 환경 단체의 반대에 발목 잡히지 않고 국가 주도로 거대한 인프라를 밀어붙이는 압도적인 '효율성의 세계'였다. 그녀는 무너지는 유럽 복지 국가의 대안으로 14억 인구의 자본과 생애 주기를 통제하는 중국 공산당의 권위주의적 연금 시스템을 해부했다. 그녀 내면의 융합은 기괴할 정도로 완벽하다. 견고한 지역 자본주의(귀터슬로)에서 태어나 게르만 민족주의의 심연(바이로이트)을 거치고, 초국적 금융 자본(골드만삭스)을 지나 아시아의 권위주의적 국가 자본주의(중국)의 효율성을 체득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녀를 '중국이 유럽을 분열시키기 위해 키우는 트로이 목마'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러나 철학적 차원에서 본질은 더 깊은 곳에 있다. 글로벌 금융인의 시각으로 중국을 지켜본 바이델이 뼛속 깊이 새긴 것은, 끝없는 도덕적 논쟁과 합의의 늪에 빠져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유럽식 민주주의의 무능에 대비되는 '권위주의적 효율성'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내면에는 엘리트주의적 효율성으로 국가를 통제해야 한다는 서늘한 실용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 스핑크스의 진짜 수수께끼: 야만보다 무서운 '효율'
바이델이 2013년 AfD에 처음 입당한 계기는 '반 이민'이 아니었다. 유로존 위기 당시 그리스 같은 남유럽 국가들을 돕는 '구제금융'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즉, 그녀의 본질은 나치와 같은 맹목적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능력 없고 게으른 자들에게 왜 성공한 자본과 국가가 희생해야 하느냐고 묻는, 지독하게 엘리트주의적인 테크노크라트다.
우리는 알리스 바이델의 기만적인 삶이나 배타적 노선에 동의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녀를 그저 '극우 선동가'라는 딱지로 재단하며 도덕적 우월감에 빠지는 것은 지독한 지적 게으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붕괴하는 유럽을 향해 서늘한 수수께끼를 던지며 길목을 지키고 있는 스핑크스다. 무능과 이념에 취해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치안을 무너뜨린 기성 정치는 그녀의 차가운 수치와 논리 앞에서 해답을 찾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그녀가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유는, 현재 독일과 유럽이 겪고 있는 구조적 위기가 끔찍할 정도로 '진짜(Real)'이기 때문이다. 이념과 도덕에 취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한 사민당과 기민당의 철학적 빈곤이, 결국 바이델이라는 기괴하고도 매력적인 돌연변이를 제1야당의 리더로 밀어 올렸다.
무능한 기성 정치가 남긴 텅 빈 폐허 위에서, 자본의 논리와 차가운 현실 인식으로 무장한 새로운 형태의 극우가 도래하고 있다. 우리는 이 낯설고 복잡한 인물을 비난하기에 앞서, 유럽이라는 거대한 문명이 어쩌다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지 그 파국의 근원을 서늘하게 직시해야만 한다.
스핑크스의 매력은 선동이 아니라, 붕괴하는 체제를 향한 차가운 진단에서 나온다. 무능한 기성 정치가 남긴 텅 빈 폐허 위에서, 자본의 논리와 차가운 현실 인식으로 무장한 이 새로운 돌연변이가 아직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본색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이 낯설고 복잡한 괴물을 비난하기에 앞서, 서구 유럽의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문명이 어쩌다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에 대한 근원을 직시해야만 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어쨌든 명확한 사실은 하나 있다. 오늘 만나본 알리스 바이델이나 옌스 스판, 어제 살펴본 울리히 지그문트(Ulrich Siegmund, 1990-)가 어떤 도덕적 모순과 비판을 품고 있든, 이들은 적어도 누군가의 덕으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종이 한장 없이도 몇 시간동안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는 지적 수련을 거쳤고, 그들만의 명확한 '정치적 서사'를 스스로 쟁취해 낸 사람들이다.
그러니 행여라도 이들을 지금까지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보아왔던 이른바 '청년 정치인'들과 같은 선상에 두고 평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 시대의 '누구 키즈', '누구 사람'이라는 타이틀만 달고 온라인 게임 생활 한번 제대로 해본적 없이 권력에 기생하는 자들. 말만 청산유수일 뿐 젊은 나이에도 90대 노인보다 더 고루하고 걍팍한 기회주의자들 수준으로 그들을 평준화 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 오늘 제목을 스핑크스라고 정한 이유? 신화 속 스핑크스는 사람의 머리,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가 기괴하게 하나로 합쳐진 존재다. 알리스 바이델이야말로 현대 정치에서 가장 완벽한 스핑크스인것 같기 때문이다. 극우 민족주의 정당의 공동대표(사자의 몸)이면서, 골드만삭스 출신의 글로벌 자본가(독수리의 날개)이고, 동성애자이자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사람의 얼굴)라는 절대 섞일 수 없는 파편들이 그녀 안에서 기괴하고도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이다. 뭔가 이질적인 것들이 결합된 키메라인데 아직 끝까지 자신의 밑바닥에 있는 뜻을 꺼내 보이지도 않았다. 지속 관찰이 필요한 인물이다.
<알리스 바이델 독일 분데스탁 홈피>
https://www.bundestag.de/abgeordnete/biografien/W/weidel_alice-1048026
<머스크와의 대담>
https://youtu.be/UlFyJmQQNtQ?si=BUpkLnwYe3hHSWv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