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정사를 조롱하는 한국 정치의 기회주의와 43.8%라는 압도적 지지로 베를린을 포위한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의 부상. 도덕적 유토피아에 빠진 국가가 '홉스적 슬롯계약'을 파기했을 때 날아든 '필연적 청구서'의 실체를 해부한다. 철학 없는 정치가 맞이할 필연적 파국에 대한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
ALTUS SOLUM 2026.9.8.(화)
오늘은 ALTUS SOLUM을 만들고 글을 쓴 지 정확히 100일째 되는 날이다. 그리고 이 뜻깊은 날,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 선거 결과가 나왔다.
현재 한국 정치의 풍경은 참담하다. 꼼수 위성정당으로 두 번이나 비례대표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장관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인물이 '소수 정당'의 탈을 쓰고 의원직을 유지하겠다며 헌정사의 룰을 조롱하는 행태가 버젓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Politics)'도, 민주주의의 근간인 '정당정치'도 아니다. 오직 "불법만 아니면 다 된다"는 생존주의적 탐욕일 뿐이다. 어떤 말로 포장한다 해도, 본질은 그저 정치의 타락이다.
그러나 진정한 공포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묵직한 이념과 철학을 근거로 정면승부를 벌여온 유럽의 정치조차, 지금 시대의 거대한 파열음 앞에서 속수무바카라으로 붕괴하고 있다. 하물며 철학적 빈곤 속에서 기회주의적 꼼수와 권력 게임에만 몰두하는 한국 정치가 맞이할 종착지는 어딜까? 치열한 사상적 투쟁 끝에 맞이하는 파국이 묵직한 비극(Tragedy)이라면, 철학조차 없이 얄팍한 꼼수와 기회주의로 연명하다 맞이하는 몰락은 그저 저열한 촌극(Farce)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의 시선을 유럽의 심장, 베를린으로 돌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일 동부 작센안할트(Sachsen-Anhalt)주에서 불어온 거센 바람이 베를린의 견고했던 정치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2026년 9월 6일 치러진 주의회 선거에서 우파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은 43.8%라는 전례 없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제1당(39석)으로 올라섰다. 반면 주정부를 이끌던 주총리 스벤 슐체(Sven Schulze)의 기독교민주동맹(CDU)은 17.2%(15석)라는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고, 주총리 본인마저 지역구에서 낙선했다.
국내외 주류 언론들은 일제히 나치 독일의 '극우 부상'이라는 식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았다. 그러나 이 거대한 지각 변동을 단순히 '히틀러의 망령'이나 '대중의 무지'라는 도덕적 타락의 프레임으로 가두는 것은, 기성 정치권과 언론의 엘리트들의 지독한 지적 게으름이자 오만이다.
선거 결과를 살펴보자. 우선 투표율은 77.8%로 폭발했다.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40%가 넘는 유권자가 기존 체제를 부정하는 이단에게 표를 던졌다는 것은, 대중이 갑자기 파시스트로 돌변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국가 시스템이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과 실존적 불안을 대변하는 데 완벽하게 실패했음을 의미하는 가장 노골적인 증상이다.
더욱이 작센안할트라는 공간의 지정학적, 물질적 토대에도 의의가 있다. 이 지역을 비롯한 튀링겐, 브란덴부르크 등 구동독 연방주들은 수도 베를린을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AfD가 선전한다는 것은, 연방 정부(베를린)가 지방 정부들에 의해 정치적·심리적으로 완전한 포위망에 갇히게 됨을 의미한다. 물론 이 포위망은 하루아침에 구축된 것이 아니다.
이 거대한 정치적 지진의 기저에는 단순한 '반 이민 정서'를 넘어, 재통일(1990.10.3)* 이후 수십 년간 누적된 실존적 소외가 자리 잡고 있다. 제2차대전 후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을 토대로 통일을 이룩했다. 이후 수백조 원의 천문학적 자본이 동독 재건을 위한 연대협약(Solidarpakt)과 유럽연합(EU) 통합에 쏟아졌다. 그 이면에서 기적의 혈관이었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 등 구서독 산업지대 인프라는 미국의 러스트벨트((Rust Belt) 처럼 서서히 마모되었다. 동시에 구 동독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궤적이 폄하된다는 '2등시민'의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 한마디로 서독은 서독대로, 동독은 동독대로 각자의 자격지심을 가지고 지난 30여년을 살아온 것이다. 이만큼 통일은 복합적으로 섬세하게 다뤄져야 한다.
*독일에서 '독일 통일(Deutsche Einheit)'이라고 하면 1871년 비스마르크가 한 통일을 떠올린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분단극복의 1990년도는 재통일(Wiedervereinigung)이라고 표현하므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물론 독일도 지역색이 있다. 그러나 출신이 개인의 운명이나 슬롯적 계급을 결정짓는 제약이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독이라는 거대한 심리적 단층은 결국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실존적 상흔을 남기고 말았다. 즉 막대한 자본과 물질적 결합만으로는 결코 사람들의 마음을 묶는 '내적 통일(Innere Einheit)'을 이룰 수 없다는 적나라한 증명이다.
이러한 사례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과제를 가진 우리에게 매우 현실적인 교훈을 준다. 좁은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조차 영호남을 가르고 진영을 나누어 서로를 악마화하는 심리적 내전 상태를 방치한 채, 맹목적으로 북한에 자본만 쏟아부으면 통일이 완성될 것이라는 착각. 그것은 지독한 오만이다. 시민들 사이의 '내적 통일'에 대한 치열한 철학적 기반 없이 이루어지는 물리적 결합은 축복이 아니라, 지금 독일이 마주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할수 없이 끔찍한 파국을 만들어낼 것이다.
다시 독일의 현실로 돌아가 보자. 내적 통일이 지연되면서 발생한 실존적 소외와 피로감, 바로 이 심층적인 모순을 제대로 소화하지 않은 채, 국가는 'EU의 뼈대'를 자처하며 칸트적 보편주의와 낭만적인 난민 포용 정바카라에 심취해 온것이다. 이와중에 난민 문제로 인한 치안 불안, 주거 부족, 복지 시스템의 과부하라는 현실적 청구서는 오롯이 지방 소도시 서민들의 몫이었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홉스적 슬롯계약'이 파기된 폐허. 바로 그곳에서 대중은 기성 정당의 위선 대신, 자신들의 억눌린 분노를 가장 날카로운 언어로 대변해 주는 AfD를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서민들의 분노와 파괴의 에너지를 다루는 인물들을 들여다보면 사태의 본질은 더욱 복잡해진다. 짚고 넘어가야할 팩트는, 2013년 창당 당시의 AfD가 애초부터 지금과 같은 '반 외국인 정당'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본래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유로존(그리스) 구제금융 정바카라에 맹렬히 반대하며, 독일의 경제적 주권과 보수주의를 지키겠다는 기치로 출발했다. (이러한 당의 극단적 진화 과정과, 일론 머스크와의 대담으로 유명해진 알리스 바이델(Alice Weidel)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의 칼럼에서 깊이 다룰 것이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AfD의 후보 울리히 지그문트(Ulrich Siegmund, 1990-)는 당론의 입맛에 맞게 가볍게 소비될 쇼윈도 멍청이가 아니다. 그는 19세때 2009년 기민당(CDU)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나,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유로존 구제금융 정바카라 등에 반발하며 2014년 신생 정당이던 AfD로 당적을 옮겼다. 당시 메르켈의 노선에 반발해 기득권을 버리고 AfD로 합류한 기민당 당원은 2016년 기준 약 2,300여 명에 달했다.
이념과 철학이 다르면 미련 없이 기득권을 던지고 광야로 나가는 것, 그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뒤에서는 엄청나게 비난하면서도 배지를 달기 위해 당적을 세탁하고 위성정당에 기생하는 정치 모리배들과는 그 결기와 층위가 다르다.
현재 작센안할트 의회는 끔찍한 수학적 외통수에 빠져 있다. 단독 과반(42석)에 3석이 모자란 39석의 AfD를 배제하기 위해, 기민당(15석), 사민당(8석), 녹색당(8석), 좌파당(8석), 그리고 신생 정당 BSW(5석)가 모두 뭉치면 정확히 44석이 된다. 산술적으로는 방어가 가능하다. 그러나 지그문트는 권력을 위해 당의 강령을 희석하는 연정을 "조잡한 누더기 타협(Gewurschtel)"이라 일축하며 "타협할 바엔 재선거를 하겠다"는 벼랑 끝 전술을 펴고 있다. 만약 기성 정당들이 AfD를 막겠다고 극좌부터 중도우파까지 끌어모아 '5각 야합 내각'을 꾸린다면, 이는 끔찍한 국정 마비를 초래해 다음 선거에서 AfD에게 절대권력을 헌납하는 자살골이 될 것이다.
독일 내부의 자중지란은 외부의 치밀한 지정학적 공작과 맞물려 완벽한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5석을 얻으며 캐스팅보터로 부상한 BSW(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는 AfD와의 교집합으로 주저 없이 △대러시아 제재 반대와 △저렴한 러시아산 에너지 확보를 천명했다.
이 기묘한 친 러시아적 연대는 과거 슈뢰더 전 총리가 러시아 국영기업의 임원직을 꿰차던 수준의 사적 정경유착이나 포퓰리즘이 아니다. 이는 독일 정치의 기저에 흐르는 <라팔로 콤플렉스(Rapallo-Komplex)>가 여전히 그 의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컴플렉스의 진정한 연원은 1922년 라팔로 조약을 넘어, 독일에서 국제정치를 가장 완벽하게 통찰했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의 지정학적 강박까지 올라간다.
우리가 여기서 복원하고 배워야 할 비스마르크의 유산은 '친러시아'라는 결과적 현상을 단편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다. 오직 독일의 국익과 생존만을 중심에 두었던 냉혹한 '현실 감각(Realpolitik)'이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 러시아에 동시에 포위되는 양면전을 피하라"는 철칙 아래, 유럽 국가들과 얽히고설킨 복잡한 동맹의 거미줄을 조율해 낸 천재였다. 그는 1887년 러시아와 비밀리에 '재보장 조약(Rückversicherungsvertrag)'을 맺어 동부 전선의 안정을 확보했다. 황제인 빌헬름 2세(Kaiser Wilhelm II)와 갈등을 빚으며 해임당하는 순간에도, 죽기 직전까지도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와의 연결선을 절대 끊지 말라"고 경고한 것 역시, 러시아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독일의 번영을 지키기 위한 고도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오만한데 멍청하기까지 했던 빌헬름 2세(Kaiser Wilhelm II)는 이 현실적인 유훈을 무시했고 조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결국 러시아가 프랑스와 동맹을 맺도록 방치함으로써 독일을 제1차 세계대전의 양면전이라는 파멸로 몰아넣었다. 이것이 독일인의 집단 무의식에 각인된 '러시아와 등지면 파국이 온다'는 서늘한 트라우마의 시작이다.
문제는 비스마르크의 치밀한 지정학적 계산이 세월을 거치며 일종의 맹목적인 강박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이 역사적 트라우마는 1922년 고립무원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소련과 기습적으로 손을 잡은 '라팔로 조약'으로 재현되며 서방 세계에 깊은 충격을 안겼다. "독일이 언제든 서방의 안보를 버리고 러시아와 밀착할 수 있다"는 미국의 의심 섞인 눈초리는 노르트스트림(Nord Stream) 가스관 사업 때까지 이어졌다. 과거 철혈재상의 유훈이었던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얽히면 평화가 유지된다."는 명제는, 오늘날 우파(AfD)와 극좌(BSW)에게 뼈아픈 현실 감각이 거세된 맹목적인 콤플렉스로 전락해버렸다.
현실의 체스판은 이미 깨졌다. 최근 라이프치히-할레 공항에서 발견된 러시아의 폭발물 탑재 드론 사건은, 러시아가 더 이상 평화를 거래할 파트너가 아니라 본토 안보를 위협하는 적대국임을 공식화했다. 비스마르크의 잣대로 생각해 보면 즉각 환상을 버리고 안보의 판을 새로 짜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러시아 외무장관 라브로프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을 운운하며 독일의 무의식적 공포를 정교하게 타격하는 하이브리드 심리전을 펴는 와중에도, 독일 내에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갇혀 "제재를 풀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라"는 정당이 있는 것이다. 위대한 통찰조차도 시대착오적인 콤플렉스로 굳어질 때, 국가는 이토록 처참하게 적국의 심리전 먹잇감이 되고 만다.
국가가 국익(Staatsräson)이라는 차가운 현실을 버리고 도덕적 유토피아에 매몰될 때, 그 청구서는 언제나 가장 가혹한 파멸의 형태로 돌아온다. 과거 바이마르 공화국이 현실의 경제적 절망을 외면하다 스스로의 헌법적 토대를 무너뜨렸듯, 작센안할트의43.8%라는 수치는 21세기 독일이 스스로 자초한 위기들이 이자까지 단단히 붙어 날아온 가혹한 청구서다.
나는 그들의 배타적 사상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현상이 왜 탄생했는지에 대한 냉철한 이해나 합리적인 성찰 없이 '극우'라는 편리한 딱지만 붙이는 슬롯에는 아무런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위기의 근원을 똑바로 직시해야만 한다. 체제의 완충지대가 붕괴된 시대, 철학이 빈곤한 기성 정치는 더 이상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 극단주의의 부상과 하이브리드 전쟁의 위협은 이제 어쩌다 찾아오는 충격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고 감당해야 할 '상수'가 되었다.
지하에 잠든 비스마르크가 작금의 베를린을 본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복잡한 국제정치의 거미줄을 조율했던 위대한 철혈재상은, 자신의 냉혹한 현실정치(Realpolitik) 감각은 잃어버린 채 과거의 유훈(친러시아)을 맹목적인 종교로 전락시켜 국가 안보를 적국에 내어주려는 후손들의 참담한 지적 빈곤에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을 것이다. 맹렬하게 다가오는 역사의 서늘한 운율 앞에서,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 현실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남겨진 미래는 없다.
Das heiligste Recht einer Nation ist das, als solche zu bestehen und anerkannt zu werden.
국가의 가장 신성한 권리는, 국가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또 그렇게 인정받는 것이다
<1871 독일 통일 후 구성된 제국의회(Reichstag), 비스마르크 등 뒤에 걸려있는 문장>
<비스마르크 참고>
https://blog.naver.com/altus_solum/224328708283
<독일 언론>
https://www.tagesschau.de/inland/innenpolitik/landtagswahl-sachsen-anhalt-180.html
<국내 언론>
https://v.daum.net/v/20260907103808198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997186?lfrom=kak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