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가 끝나고, 힘과 자본으로 판을 나누는 미·중 '전략적 안정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케네스 월츠가 통찰한 '공포의 균형'과 NPT 체제의 붕괴, 사우디의 우라늄, 대만을 협상 테이블의 칩으로 던져버린 제국의 거래주의를 살펴본다.
그러나 미국은 그와중에도 중국을 정조준하며 자국을 지켜내는 법안을 초당적으로 통과시킨다.
거대한 지정학적 지각변동을 읽지도 못한 채 국내 권력의 부스러기를 놓고 이전투구만 벌이는 한국 정치의 참담한 민낯을 해부한다. ▶
ALTUS SOLUM 2026.9.10.(목)
□ '인내'의 시대가 저물고 '안정'의 야만이 오다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고문에서는 다가오는 9월 워싱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매우 의미심장한 프레임을 띄웠다. 양국이 이념적 성전을 멈추고 '전략적 안정성(Strategic Stability)'의 단계로 진입했다는 선언이다.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가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질서라는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상대가 굴복하기를 기다리던 무바카라임한 방관이었다면, 트럼프와 시진핑이 합의해 가는 '전략적 안정성'은 그 본질이 완전히 다르다. 이는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를 폐기하고, 서로를 파괴할 수 있는 압도적인 물리력과 자본을 인정하며 철저히 이익을 나누겠다는 'G2만의 독점적 타협'이다. 도덕적 위선의 베일이 찢겨나간 자리에, 힘과 거래만이 지배하는 야만적 현실정치(Realpolitik)가 복귀한 것이다.
이 도덕이 증발한 카지노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잔혹하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더 큰 무역·기술 타협을 위해 지난 5월 민주주의 동맹인 대만에 대한 140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중단하며 대만의 안보를 거래의 칩으로 던져버렸다. 한편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와의 종전 협상을 언급하며 "우크라이나는 자금도 무기도 없으니 유연성을 보이라"고 조롱했다. 스스로 지킬 물리력이 없는 국가는 영토를 내어주고 해체된다는 서늘한 진실이다.
이 거래주의의 정글에서 제국은 가치를 위해 피를 흘리지 않는다. 오직 비용의 청구서를 들이밀 뿐이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Scott Bessent)는 엔화 방어를 위해 "내가 곧 룰을 통제하는 하우스(The House)다"라며 자유시장의 원칙을 스스로 찢어버렸다. 가장 거대한 전주인 일본을 지키기 위해 무소불위의 공권력을 휘두른 것이다.
□ 케네스 월츠와 무너지는 NPT의 위선
이 '전략적 안정성'의 논리가 가장 노골적으로 관철되는 곳이 바로 글로벌 핵 질서다. 일찍이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 1924-2013)는 1981년 자신의 전설적인 기고문 <핵무기의 확산: 많을수록 좋을 수 있다(The Spread of Nuclear Weapons: More May Be Better)>에서 낭만주의자들의 도덕적 평화론에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평화는 선의에서 오지 않는다. 핵무기는 전쟁의 비용을 소름 끼칠 정도로 높게(frighteningly high) 만들며, 바로 그 공포의 균형이 국가들이 전쟁을 시작하지 못하도록 억제한다." 고 강조했다. 즉, 평화는 오직 서로를 완벽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공포의 균형에서만 유지된다는 것이다. 워싱턴 주류는 이를 지적 유희라며 외면했지만, 결국 그들이 쥐고 있던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야말로 기득권 강대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용 위선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 중국을 정조준한 미국 '보수우파'의 싸움법
힘과 자본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국가의 생존이 찢겨나가는 시대, 그렇다면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적어도 지금 우리가 한국 정치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지금 중국 공산당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름이 있다고 한다. 미국 아이오와주의 공화당 3선 하원의원, 애슐리 힌슨(Ashley Hinson)이다. 그녀는 최근 <국제 무역 범죄로부터 미국 산업 및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PAIL Act:Protecting American Industry and Labor from International Trade Crimes Act)>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관세 회피, 불법 환적 등으로 미국 산업을 갉아먹는 중국 기업과 범죄자들을 단순히 세금으로 제재하는 것을 넘어, 미국 법무부(DOJ)가 직접 '형사 기소'하여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을 쥐여준 법안이다. 값싼 중국산 농산물과 공산품의 공세로 파산해 가는 자신의 지역구인 아이오와 농민들과 노동자들의 생존권(자본)을 지키기 위해, 국가 공권력을 동원해 중국 공산당의 목줄을 정조준한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강경한 법안이 초당적 지지를 얻어 통과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사건건 대립하던 민주당마저 이것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않고 기꺼이 찬성표를 던졌다. 중국의 불공정 무역이 미국 노동자와 농민의 밥그릇을 깨뜨리는 현실 앞에서, 당파적 이념보다 국가의 실질적 이익을 앞세우는 최소한의 '국가 이성'이 작동한 것이다. 이것이 진짜 보수가 국가를 지키는 방식이며, 시스템이 살아 있는 정치의 품격이다. 중동의 전쟁 위기 속에서도 "미국 항공모함이 뒤에 버티고 있지 않은 협상은 담보 없는 대출과 같다"며 끝까지 강경한 안보 노선을 지켜낸 그녀는, 이념적 순결성이 아니라 자국의 밥그릇과 생존을 위해 피 튀기게 싸우고 있다.
□ 가짜 보수들과 우물 안 개구리들의 나라
다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모든 룰이 해체되고 오직 압도적인 물리력과 자본만이 생존을 담보하는 지각변동 앞에서도, 한국 정치권의 멍청한 게으름은 절망적일 정도다. 일본은 '비핵 3원칙'이라는 평화주의자의 가면을 쓰고 국제슬롯의 칭송을 받으면서도, 뒤로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즉각 핵무기를 조립할 수 있는 플루토늄 재처리 기술과 농축 능력을 비축해 두었다. 평화라는 꿈결같은 환상에 취하지 않고, 실질적인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조용히 '문턱 앞의 능력(Threshold Capability)'에 도달한 영악한 국가 이성이다.
반면 우리의 야당이 펼치는 자칭 '보수' 정치는 어떤가? 지금의 무능하고 무바카라임한 여당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야당 덕분이다. 온 국민이 다같이 분개하는 와중에도 그 오갈곳 없는 민심이 결코 그쪽으로는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정녕 느끼는 바가 없다는 것인가? 국가의 산업과 국민의 생존을 위해 타국과 목숨 걸고 싸우기는커녕,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의 부스러기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졸한 이전투구와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국가 이성을 상실한 '가짜 보수'들이다.
스스로 카지노의 '하우스'가 될 수 없다면, 최소한 하우스의 판돈을 쥘 실력(기술적·자본적 레버리지)이라도 치밀하게 키워야 한다. 진영의 이익에 매몰되어 국가 이성을 잃어버린 채 아마추어리즘을 뽐내는 정치권이 이 가차없이 냉혹한 정글의 룰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크라이나가 강요받고 있는 저 비참한 '유연성'은 곧 우리의 묵시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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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린 어페어스 기고문>
https://www.foreignaffairs.com/united-states/emerging-us-china-detente
H.R.1869 -
Protecting American Industry and Labor from International Trade Crimes Act of 2026
https://www.congress.gov/bill/119th-congress/house-bill/1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