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내 입꼬리는 왜 내 의지를 배신할까

"미친 거 아냐?"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웃던 날

by고금

사람은 꼭 즐거울 때만 웃는 것은 아니다.


반가워서 웃고 재미있어서 웃지만 어색해서 웃기도 한다. 당황해서 웃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웃기도 한다. 상대가 무안해할까 봐 웃어주기도 하고 화가 나는데도 엉뚱하게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웃음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웃음은 아닌 셈이다. 어떤 웃음은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어떤 웃음은 상황을 무사히 지나가기 위해 얼굴에 먼저 올라온다.


나도 그런 웃음을 자주 지었다.


누군가 갑자기 선을 넘는 말을 했을 때, 속으로는 ‘뭐지?’ 싶으면서도 입에서는 웃음이 먼저 나왔다. 당황스러운 말을 듣고도 상대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고 굳이 웃을 일이 아닌데도 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 나서 자리에 돌아오면 그제야 생각했다.


‘내가 왜 웃었지?’


그때는 몰랐다. 내가 웃고 싶어서 웃은 게 아니라는 걸.


누구나 살다 보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눈과 입꼬리가 그랬다. 공기가 조금만 싸해지거나 누군가 당황스러운 말을 던질 때면 뇌에서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눈웃음이 튀어나오고 입꼬리부터 말려 올라갔다.


갈등을 만드는 게 피곤해서였고 예민하고 유별난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적당히 웃고 넘어가는 쪽을 택했다. 오랫동안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선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문제는 이 웃음이 정작 나를 지켜야 할 순간에도 먼저 튀어나온다는 것이었다.


그걸 처음 제대로 알아차린 날이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미친 거 아냐? 사람 면전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해?’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데 현실의 나는 오히려 웃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어느 날 업무차 외부에서 여직원 한 명이 우리 사무실로 출장을 왔다. 처음 보는 사이였기에 가벼운 인사 정도만 오갔고 각자 업무에 집중하려던 참이었다.


문제는 그 자리에 동석했던 평소 타인에 대한 배려나 교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어느 거래처 직원의 입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뜬금없이 출장 온 여직원과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내 얼굴을 위아래로 번갈아 훑어보더니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와, 이 회사에 이런 미인이 있었나? 언제 입사했어요? 칙칙한 얼굴만 보다가 눈이 다 환해지네.”


그가 ‘칙칙한 얼굴’이라고 말할 때의 시선은 정확히 나를 향해 있었다. 그것은 옆 직원을 향한 순수한 칭찬이 아니라 나를 깎아내리고 조롱하기 위해 굳이 비교 대상을 이용한 아주 교묘하고 천박한 화법이었다. 타인을 띄워 올리는 척하면서 내게 대놓고 흠집을 내는 그 얄팍한 의도가 너무나도 투명하게 보였다.


‘이거 봐라? 선을 넘는데?’


하지만 나의 뇌가 합리적인 대응바카라을 찾기도 전에 안타깝게도 내 몸에 깊게 밴 ‘생존형 미소’가 먼저 튀어나와 버렸다. 그냥 유머로 웃어넘긴 것이다.


무례한 사람들은 항상 농담이라는 비겁한 방패 뒤에 숨기 마련이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서 불쾌한 기색을 조금이라도 비쳤다면 그는 십중팔구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농담인데 왜 그래? 분위기 이상하게 만드네.”

혹은

“질투하는 거야?”


쿨하지 못하게 농담을 다큐로 받아치는 사람, 타인의 미모에 질투해서 속이 좁아진 사람. 그 억울한 프레임을 뒤집어쓰기 싫어서 순식간에 분위기를 망치는 쪼잔한 사람이 될까 두려워 나는 기꺼이 눈을 접어 웃어주었다. 내 자존감을 깎아내려 그 불편한 공기를 무마해 준 것이다.


왜 나는 웃었을까?


속으로는 욕을 하고 있었는데 왜 입꼬리는 올라갔을까. 나는 왜 매번 이런 상황만 되면 바보처럼 웃는 걸까. 나중에 심리학 바카라을 읽다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심리치료사 피트 워커(Pete Walker)가 소개한 개념인데, 보통 사람은 위협이나 스트레스를 마주했을 때 본능적으로 맞서 싸우거나(Fight), 도망가거나(Flight), 혹은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Freeze). 하지만 그는 여기에 하나의 반응을 더 추가했다. 바로 상대를 달래고 비위를 맞추는 ‘폰(Fawn)’ 반응이었다.


타인의 껄끄러운 태도 앞에서도 일단 그 사람의 말에 동의하고 웃으며 비위를 맞추고 보는 것. 그는 이것이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해서가 아니라 위협적인 상황에서 ‘일단 안전해지고자 하는’ 방어적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그날, 선을 넘는 거래처 직원의 말에 “그러게요”라며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던 내 헛웃음은 바로 이런 반응의 전형이었다. 나는 무던하고 성격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불쾌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는 오랜 생존 본능을 발휘했을 뿐이었다.


다행히 그 거래처 직원은 잠깐 스치듯 일하고 마는 사이라 이후로 자주 볼 일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 안에 남겨진 잔해들이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억지로 끌어올렸던 내 입꼬리가 떠올라 이불을 수십 번은 걷어찼다. 머릿속에서는 뒤늦은 시뮬레이션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그때 하하 웃을 게 아니라 그냥 빤히 쳐다볼걸.’

‘정색하고 뭐 하냐고 되물을걸.’

‘말을 받아치기 어려웠으면 최소한 정색이라도 할걸.’


나를 조롱거리로 만든 말에 동조하며 바보같이 웃어주던 내 모습이 그 인간의 무례함보다 더 수치스럽고 원망스러웠다. 상처를 준 건 상대방이었지만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린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안다. 그런 수준 이하의 발언에 똑같이 언성을 높이며 진흙탕 싸움으로 맞대응해봤자 내 손에만 진흙이 묻는다는 것을.


‘저런 사람과 똑같은 수준으로 전락하지는 말자.’ 이 생각 하나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영양가 없는 말들을 내 마음에 차곡차곡 담아두기엔 내 감정이 너무 아까우니까.


그저 ‘타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사람이구나’ 하고 선을 그으며 튕겨내 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런 말에 내가 또 오래 끌려다니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나에게 아주 뼈아픈 교훈 하나를 남겼다. 아무리 엮이기 싫은 진흙탕 앞이라도 그것을 피하기 위해 내 감정까지 속이며 웃어주지는 말자는 것. 내가 웃어넘겨서 모면한 건 그 찰나의 어색함이었을지 몰라도 결국 나는 나를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나를 무방비하게 방치해 버린 셈이었다.


앞으로 또다시 이런 선을 넘는 무례함을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더 이상 조건반사적으로 입꼬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과 똑같은 수준으로 쏘아붙이지는 않더라도 서늘하고 단호한 침묵으로 ‘당신의 말은 전혀 재미있지 않으며, 나는 불쾌하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줄 것이다. 내 소중한 미소는 그런 말에 낭비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니 이제 억지웃음으로 분위기를 살리고 내 마음을 죽이는 짓은 그만두기로 했다.


나의 다정함도, 나의 미소도,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내어주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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