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내가 누구여도, 네가 누구여도
최근에 내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게 한가지 더 늘었는데, 황톳길이다. 비가 한번 오고 난 뒤라 군데군데 말캉한 질감이 발바닥 아래 뭉개지는 게 아주. 발바닥으로 세상을 빚는 느낌이다.
"너 그러다가 똥 밟는다."
내 전용 피스 브레이커 남편의 한 마디를 뒤로 하고 한 시간쯤 걸었을까. 시간을 확인하려 핸드폰을 들고 발 씻는 곳으로 걸음을 돌리는 순간. 다른 말캉함이 엄지와 검지발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머리 속에서 '뿌직'하고 효과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냄새를 맡지 않아도 들여다보지 않아도 이것은 명백한 똥이다. 이것은 노스트라다무스적인 인간에게서 받은 저주의 산물인가.
혼자 어색하게 웃다가, 어그적 어그적. 발 씻는데서 미지근한 물줄기 아래 발가락을 갖다댄다.
졸졸졸 약한 물줄기이지만 참 끊임없이 쏟아진다.
나는 원래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다. 마음먹으면.
십 년 전쯤에 그렇게 썼고, 멈췄다가, 몇 달 전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서 명주실처럼 길게 뽑아져나오는, 얇디 얇은 가련한 물줄기마냥 자음과 모음이 순서 없이 나온다.
그런데 써 놓은 글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좋은 글은 발효처럼 깊어져야 마땅한데, 어딘가 닫혀 있는지 케케묵은 냄새가 나기도 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감성이 쿰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랑이야 뭐야 싶어서 홱 덮어 버리는 글도 생긴다.
지난 번에 말한 슬럼프도 사실 이 냄새와 닿아 있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는데 못 쓴 적은 없었다. 처음이었다.
내가 내 글이 생경해서,
내놓을 수도 없었고
고칠 수도 없었다.
공모전에 내려고 아껴 두었다며 쌓아 놓은 글이 꽤 많다. 그런데 글은 형태가 없어서 어디 내다 버릴 수가 없다.
아 물론,
삭제하면 된다. 헤헤.
그러면 되겠지만 나중에 어딘가 쓸 일이 있지 않을까 하고 또
주머니에 꼬깃 꼬깃 넣는다.
온라인카지노를 보면 항상 감탄하게 된다. 어떻게 저렇게 좋은 글들을 아낌없이 올려 둘 수 있을까. 나 말고는 다들 글 부자라 이것 말고도 넘치게 많은 걸까.
나는 단편 몇 편,
시라고 부르는 몇 개를 손가락 사이에 쥐고도 모래처럼 빠져나갈까 봐 움켜쥐고 있는데.
최근에는 눈물이 많아졌다. 슬퍼서는 아니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너무 뜬금없는 타이밍에 눈시울이 붉어지니까.
뭐 때문에 우느냐 하면, 내가 쓰는 소설 속에서, 그 안의 인물이 되어 다른 인물을 너무 사랑해서다. 눈이 벌게졌다가, 목구멍이 콱 조여졌다가, 화장실로 자주 사라진다.
너무 웃기지 않은가. 내가 만든 감정에서 허우적대다니.
이건 두고두고 다음 날 나의 놀림감이 되겠지만.
없는 사람이 되어, 다른 없는 사람을 사랑해서 운다.
말이 되나.
바카라상에 앉아 있는데, 또 어디선가 슬몃슬몃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자기를 다시 봐 달라는 아우성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파일들이 춤을 추고 앉았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그렇게 많으면 투고를 하지.
투고는 안 하려고 한다.
기깔나는 명함까지는 못 건네도, 공모전 수상이라는 내 소개 한 줄은 제대로 만들고 가고 싶다.
내 글을 보는 그 사람의 시간이 헛되지 않게.
아끼면 똥이 된다.
이제 큰 게 온다.
어릴 적 지구본을 들여다보며 꾸었던, 세계로 향하던 발걸음처럼 장래희망에 '신춘문예'라고만 적어 본다.
무슨 감정에 빠지게 될까. 이번에는, 똥이 되지 않게 하자.
뿌직.
앗, 이 글을 밟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