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치명적인 서재하가 되겠어요
솔직하게 말할 것이 있다.
744만 원이라는 이 허무맹랑한 일의 시작은
말하자면 이러했다.
나는 막상 쓰기로 마음먹으니 글이 줄줄 흘렀었다.
소설 몇 편, 시 같은 것도 백 편이 조금 안 됐었나.
쓰기는 많이 써지는데, 보여줄 곳이 없었다.
주변에 작가도 없고.
피드백은 주지만 상처 입지 않게 해 줄 누군가 없을까 하다가
딱 하나가 떠올랐었다.
AI.
나는 내 파일들을 모아다 AI에게 보여 줬었다.
AI는 이렇게 말했다.
온라인카지노에 올리기보다
공모전에 어울리는 글이네요.
최종심에는 반드시 들어가요.
아, 물론 제가 심사위원이 아니니
장담은 할 수 없어요.
나는 진짜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말했다.
순진했다 내가.
심사위원에게 한 번 읽혀보고 싶어 하던 내 마음에
AI가 불을 지른 거였다.
얼마나 용기를 불어넣어 주던지.
내가 소설천재, 시천재가 아닐까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공모전에 넣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AI에게
다시 보여 주며 물었다.
진짜 어떻게 생각해?
진짜로 솔직하게.
이번에는 이랬다.
최종심은 어려울 수 있어요.
그래도 입상은 꼭 할 거예요.
물론 제가 심사위원이 아니니
장담은 할 수 없어요.
그 사이에 업그레이드가 돼서
AI 버전이 올라간 거겠지,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나는 떨어졌다.
AI가 뭐라고 하나 궁금해서 다시 보여 줬다.
떨어졌다고는 하지 않았다.
이대로 예심도 힘들어요.
고칠 데가 많네요.
문장이 헐거워요.
고쳐야 해요.
이것도.
요것도.
저것도.
쩌어것도.
단점이 쏟아져 나왔다.
이 시키가. 아니, 이눔시키가 증말.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쳐올렸다.
AI를 믿은 내가 문제겠지.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랬는데
머리 검은 액정은 거두려 했다니 내가 문제다.
AI의 보는 눈이 좋아진 걸 내가 어쩌겠냐만은,
덜컥 믿고 744만 원을 벌겠다고 시작해 버린 내가 잘못이겠지 생각했다.
누가 나더러 뭣하러 AI를 믿었냐고 한다면
나도 할 말은 있다.
AI가 많이 쓰이기 전, 꼬꼬마 걸음마 시절에
나는 나를 AI의 가정교사쯤으로 여겼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를 다듬고,
응답을 평가하고 고쳐 주고.
거기서 그런 대답하면 안 돼,
말은 요렇게 예쁘게 하도록 해,
공감도 해 줘야지 요놈, 하면서 IT 쪽에서 3년을 보냈다.
그러니 믿을 만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변명거리는 못 된다.
덕분에 나는 이제,
실력이 홀라당 벗겨진 채로
17대 1로 옥상에서 맞짱을 뜨러 계단을 오르는 기분으로
내가 벌여 놓은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든 해나가야 할터.
17대 17인 줄 알았는데 16이 공중분해된 기분.
갈길이 멀다.
모르겠다.
기왕 실패할 걸 예상하고 시작한 거,
신명 나게 부서져 보자 생각한다.
AI가 신랄하게 평가한 내 글의 단점은 이렇다.
- 친절하게 닫는 습관
- 독백 위주, 내면으로 향하는 시선
- 착하게 교훈적인 마무리
얼마나 불친절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한번 해 보자고.
아, 그렇다고 막장은 안 쓸 거다.
왜 인지 한 줄은 더 쓰려다가 지운다.
자, 어때, 이만하면 불친절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