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제 좀 눈이 높아져서요

시, 그리고 설탕 세 스푼

by서재하


어릴 때, 아주 어릴 적에 집에 녹차 티백이 있었다.
선물 들어온 거라며 엄마는 고이 찬장에 모셔 두시곤 하셨다.
그 무렵 텔레비전에서는 사람들이
녹차를 음미하며 마시는 장면이 몇 번 나왔었는데
나도 그 고상함에 합류해 보고 싶었다.

나도 나도.


그래서 마셨다.
우아하게 한 입, 첫맛이 으악.
이게 무슨 맛이야 싶었다.
설탕을 세 스푼 넣고서야 이제 좀 마실 만하군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 앞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 녹차 마실 줄 알아. 생각보다 먹을 만해."


마치 즐겨 마시는 사람처럼 고상을 떨어 보았다.

시간이 지나며 세 스푼이던 설탕은
두 스푼, 한 스푼. 줄어들어 갔다.

어른이 된 지금은 설탕이 없어도

입안에 맴도는 향긋함을 느낄 수 있다.

불과 얼마 전,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처음으로
신춘문예 당선 시를 찾아 읽었었다.
내 입에는 너무 썼다.

제2외국어처럼, 시어는 다른 세계의 언어가 아닐까 싶었다.
같은 시라는 이름을 쓰는데

내가 쓰는 시와는 다른 나라 말 같았다.

내 글은 시가 아니었나
국문학과를 나왔어야 했나 생각했다.

툭툭, 불친절하게 썰어 놓은 단어들을

도무지 맛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앞으로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한 지 석 달 정도나 됐으려나
오늘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생각으로
신춘문예 시 앞에 다시 앉았다.
신문사별로 하나하나 읽어 갔다.

아직도 가끔은 떫고 쓴맛이 난다.
그래도 아름다웠다. 향이 맴돌았다.

아름답다.
그게 가장 마음에 남는 감정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 몇 십 편의 시어들을 다듬으며,
다른 이들의 좋은 시를 눈으로 받아들였던 덕분일까.

손과 눈이 자라는 속도가 달라서일지도 모른다.
눈은 제법 아름다움을 따라가는데
손은 아직도 서툴고 투박해서
내가 원하는 만큼 아름다움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일지도.

그래도 이제는
조금은,
설탕 없이도 입안에 맴도는 향긋함을 느낄 수 있어서
녹차를 꽤 좋아한다고
시를 읽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을 뚝 떼다가 잘 덖어서
곱게 말려 향긋하게 다시 우려내리라 생각해 본다.
이제 제법 눈이 높아졌다 으스대보련다.

시 말이야,
제법 내 취향이던데. 하면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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