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어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이들의 서투른 심리

'좋은 마음'을 건네고도 마음이 씁쓸해지는 날들에게

by담연

사무실이나 작은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소소한 호의를 베풀고 돌아설 때, 내 마음에 미묘한 헛헛함이 물결처럼 일 때가 있다.

대단한 감사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가벼운 목례나 따뜻한 눈인사 정도면 충분했을 텐데, 정작 돌아오는 것은 무뚝뚝한 한마디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무심함일 때가 그렇다.

대기업이라는 거친 일터의 최전선에서 30년 넘게 일해오며, 나는 수많은 마음과 호의가 오가는 풍경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어떤 호의는 따뜻한 온기나 가벼운 안부로 되돌아왔지만, 어떤 마음은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지며 내 마음에 작은 생채기를 남기곤 했다.

처음에는 받는 법을 모르는 상대의 무성의함을 속으로 탓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조직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니, 그 무심함이 꼭 악의나 무례함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부채감'이 부담스러운 요즘 사람들의 서툰 마음

내가 베푼 호의가 어떤 이에게는 고마움이 아니라, ‘어떻게든 갚아야 하는 부채’로 다가갔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요즘의 온라인 게임인들이나 타인과의 적정한 거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은,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마음의 빚을 지는 상황 자체를 꽤나 다루기 힘들어한다. 작은 호의라도 그것이 선배의 권위나 어른의 선의라는 이름으로 전달되면, 고마움에 앞서 '나중에 내가 뭘 해드려야 하지?', '혹시 어떤 대가를 바라시는 걸까?' 하는 부담감이 먼저 밀려오는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어색함과 무심함은, 사실 고마움을 몰라서라기보다 예고 없이 찾아온 부채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서툴게 반응한 모양새에 가까웠다.


내 마음 뒤에 은연중에 붙어 있던 미세한 영수증

한편으로 관찰자의 시선으로 나 자신과 지나온 삶을 솔직히 돌아보았을 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 한 조각과 마주하기도 했다.

베푼 뒤에 상대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섭섭했다면, 과연 나의 마음은 온전히 순수한 호의였을까.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타인을 잘 챙기는 좋은 어른'이라는 자기위안이나, 상대의 서글서글한 반응이라는 '감정적 영수증'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음을 내어주는 순간 그 마음에 은연중에 '대가'라는 작은 줄을 매달아 놓았기에, 줄이 당겨지지 않을 때 서운함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참된 호의는 내 손에서 떠나는 순간 이미 내 것이 아니어야 함을,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가슴으로 깨닫기까지 참 오랜 세월이 걸렸다.


흐르는 물에 마음을 띄워 보내는 담담함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고도 상처받지 않는 길은, 내 마음을 건네는 것으로 내 역할을 깔끔하게 끝내는 것이었다.

상대가 그것을 반갑게 받든, 어색해하며 구석에 치워두든 그것은 이제 상대의 영역이다. 고마워하면 다행이고, 설령 무심하게 넘어가더라도 '마음의 부담이 조금 컸나 보다' 하고 담담히 내 일상으로 돌아오는 무심함이 필요했다.

진짜 품격 있는 베풂은 상대에게 감정의 빚을 남기지 않는 것이며, 나 역시 내어준 사실을 굳이 기억 속에 오래 두지 않는 겸손함에서 나온다.


타인의 반응에 내 마음의 가치를 맡기지 않는 법

내가 건넨 소소한 친절과 배려가 언제나 따뜻한 응답으로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향한 마음의 문을 차갑게 닫아걸 필요는 없다.

오늘 하루도 내 정성을 알아주지 않는 누군가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헛헛했을 이들에게, 그리고 지나온 날의 나 자신에게 나직하게 이 말을 건네본다.

"마음을 건넸다면 강물에 띄워 보내라. 흘러간 마음을 돌아보지 않을 때, 내 마음의 평온도 비로소 완성된다."

타인의 반응에 내 선의의 가치를 맡길 필요는 없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심히 내어준 그 마음은, 상대가 몰라주더라도 먼 훗날 내 삶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깊은 온기가 되어 나에게 되돌아올 테니 말이다.

수요일 연재
이전 01화착한 사람과 호구 사이, 마음의 경계선이 필요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