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과 호구 사이, 마음의 경계선이 필요한 이유

'좋은 사람'이라는 틀을 내려놓고 나를 지키는 법

by담연

"내가 조금만 참으면 모두가 편해지겠지"

"그래, 내가 조금 더 고생하고 참으면 모두가 편해지겠지."

지친 퇴근길 버스 창가에 기댈 때마다, 곁에서 들려오던 선배의 나직한 혼잣말이었다. 그때의 그는 스스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거절하지 않고 남의 부탁을 다 들어주는 것이 배려이고 미덕이라 믿는 듯했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온라인 게임 생활을 지나오며 그 선배에게 돌아온 건 깊은 고마움이나 존경이 아닌, 미묘한 무심함이었다.

"그분은 어차피 다 들어주실 거야."

"원래 성품이 순하셔서 군소리 없이 다 해주실 테니까."

어느새 그는 마음 편히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라기보다, 언제든 쉽게 찾아가 선을 넘어도 허허 웃어주는 '편안함'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착함'이라는 미명 뒤에 숨겨두었던 조바심

어느 날 탕비실에서 차를 마시다, 문득 그 선배가 지나온 시간들을 담담히 털어놓은 적이 있다. 어깨가 무거운 온라인 게임 상사로, 또 집에서는 두 아이를 키워낸 아버지로 살아가며 스스로 집착했던 그 '착함'의 진짜 정체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것은 거창한 희생이나 순수한 선의라기보다, '남에게 서운한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조바심'이었고, 혹여 갈등이 생길까 봐 늘 한 걸음 물러서던 우유부단함이었노라고.

팀원들과의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정작 거절해야 할 순간에 말을 아꼈고, 아이들에게도 혹여 엄한 아버지로 남아 멀어질까 봐 단호해지지 못했던 날들.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정작 자신의 마음을 가장 먼저 다독이지 못했던 셈이다. 스스로 마음의 경계선을 자꾸만 허물어두었으니, 주변 사람들이 그 선을 가볍게 넘어오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작정 남의 기분만 맞추려 했던 모습은, 타인에게는 친절했을지 몰라도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너무나 무심하고 소홀했던 태도였다.


차분하게 선을 긋기 시작했던 날들

스스로를 내팽개쳐 둘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 그 선배는 비로소 아주 조금씩 '거절하는 법'을 익혀나갔다고 했다.

자신의 여력이 되지 않는 요청에는 "지금은 먼저 마쳐야 할 과제가 있어 도와드리기 어렵습니다"라고 차분하고 예의 바르게 선을 그었다. 아이들에게도 무조건적인 수용 대신, 아버지로서 지켜야 할 기준을 솔직하게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단호하게 거절했던 날, 선배는 밤잠을 설치며 서늘한 조바심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나를 정 없는 사람으로 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 희한하게도, 염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확실하게 자신의 기준을 세우자,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멀어졌고, 그의 시간과 기준을 깊이 존중해 주는 이들만 곁에 남았다. 마음의 경계선을 단정하게 세우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표정에 차분한 평온이 찾아왔다.


곁에서 바라보며 깨닫게 된 것들

그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 타인의 요구에 무조건 응하는 것은 마음의 넓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잠시 방치하는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짜 따뜻함은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킬 줄 아는 단단한 마음이 자리 잡은 뒤에야 비로소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내 마음의 문을 열어줄 사람과 선을 그어야 할 사람을 구분하는 작은 용기, 그것이 내 삶의 결을 다정하게 지켜내는 길이었다.

오늘도 퇴근길 지하철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 선배가 나누어 준 온기 어린 이야기를 가슴에 담아본다.

"남들 눈치 보느라 마음을 졸이기 전에, 나 자신에게 먼저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어야겠구나."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