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번 영어회화 동아리에 함께 하자고 했던 분 옆에 앉았다.
늘 함께 앉던 짝꿍이 오늘은 나오지 않았다. 몇 번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수업이 시작되면 다들 열심히 연습한다.
각자 악보를 펼쳐놓고 바이올린을 켠다. 여기저기서 서로 다른 곡이 들린다. 나도 스즈키 바카라을 펴고 연습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친다.
“쉴 시간이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이올린을 내려놓는다. 오래 배우신 언니도 합류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악기를 내려놓고 이야기에 끼어든다.
조금 전까지 각자의 곡을 켜던 사람들이 둘러앉아 웃고 떠든다.
그러다 또 누군가 바이올린을 꺼낸다.
연습하고, 쉬고, 이야기하고, 다시 연습한다.
이 수업에는 그런 느슨한 리듬이 있다.
오늘도 선생님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수강생이 스무 명 남짓이다 보니 선생님은 한 사람씩 돌아가며 봐준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정작 내 차례가 돌아와도 레슨은 몇 분 남짓이다.
옆자리 언니와 거의 두 시간을 연습하다 보니 슬슬 지쳤다.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턱을 괸 채 다른 사람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언니가 학원 레슨을 받아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는 별로 안 늘 것 같아.”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득 물었다.
“여기 샘한테 비브라토를 배울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을까.”
둘이 웃었다.
웃기는 했지만 조금 걱정되기는 했다.
정말 이렇게 그냥저냥 흘러가는 건가.
다시 스즈키 1권을 펼쳤다.
첫 곡부터 시작해 다음 곡, 또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예전에 배웠던 곡들이라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몇 곡을 연습하는데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은 내 연주를 보다가 활을 잡은 손을 지적했다.
손 모양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순간 조금 허탈했다.
나는 몇 곡이나 앞으로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활 잡는 손이라니.
그럼 나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가.
차라리 이번 학기에는 곡을 많이 나가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활 긋는 것만 제대로 연습해 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대체 나는 왜 여기에 와 있는 걸까.
바이올린을 얼마나 잘하고 싶은 걸까.
어디까지 가고 싶은 걸까.
생각해 보면 답은 단순했다.
나는 바이올린을 놓고 싶지 않아서 이곳에 왔다.
그렇다고 바이올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따로 학원에 다니며 일주일에 몇 번씩 연습하고, 진도를 정하고, 반드시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야겠다는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놓고 싶지는 않다.
바이올린을 배운 지도 몇 년이 되었다. 아주 잘하지는 못해도 이제는 내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싫다.
그래서 도서관까지 바이올린을 들고 온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받고 있으면 자꾸 효율을 따지게 된다.
오늘은 무엇을 배웠지.
지난주보다 얼마나 늘었지.
이렇게 해서 비브라토는 언제 배우지.
두 시간을 투자했는데 내가 얻어가는 것은 무엇이지.
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무언가를 배우러 갔을 때는 더 그렇다. 시간과 돈을 들였으면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고, 배웠으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래서 이 수업의 방식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많이 배웠다는 충만함도, 오늘 하나를 확실히 익혔다는 성취감도 별로 없다.
세 시 반쯤 수업을 마쳤다.
비브라토를 잘하는 언니와 함께 바이올린 가방을 메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걸으면서 오늘 수업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할 수 있다면 이 수업을 계속 나오고 싶다고 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학원에 다닐 정도의 여유는 없지만 바이올린의 끈을 놓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곡은 집에서 연습하면 된다고도 했다.
그러더니 웃으며 말했다.
“나도 오늘 활 잡는 손 지적받았어.”
조금 놀랐다.
언니는 바이올린을 오래 했다. 비브라토도 자연스럽게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활 잡는 손을 다시 지적받는다니.
“20년 동안 고착된 습관이라 고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
그 말을 듣는데 아까의 허탈함이 조금은 사라졌다.
몇 곡을 지나왔는데 다시 활 잡는 손이라니.
나는 처음으로 돌아간 줄 알았다.
그런데 20년을 한 사람도 다시 활 잡는 손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이것은 뒤로 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평생교육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배우는 것.
그런데 어른의 배움은 어떠해야 할까.
젊을 때처럼 목표를 세우고, 단계를 통과하고, 결과를 만들어내야만 배웠다고 할 수 있을까.
문득 나선형 계단이 떠올랐다.
경사가 완만한 계단.
빨리 올라갈 수는 없다.
빙글빙글 돌면서 천천히 올라간다.
걷는 사람에게는 자꾸 같은 자리를 지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자리는 아니다.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오늘도 나는 스즈키 1권을 펼쳤다.
이미 배운 곡을 다시 켰고, 활 잡는 손을 다시 고쳤다. 연습하다가 쉬었고,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동아리에 함께 가자던 사람과 조금 더 가까워졌고, 오래 바이올린을 한 사람도 여전히 자기 습관을 고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브라토는 배우지 못했다.
새로운 곡을 많이 나가지도 못했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얻지 못한 걸까.
어쩌면 나는 아직도 배움의 결과를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가 없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비브라토를 배우고 싶다. 조금 더 예쁜 소리를 내고 싶고, 지금보다 잘 켜고 싶다.
다만 어른의 배움에서는 즐긴 시간도 결과에 포함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 곡을 더 켠 것.
잘못된 손 모양 하나를 발견한 것.
사람 하나와 조금 가까워진 것.
연습하다 함께 웃은 것.
그리고 다음 주에도 바이올린을 들고 이곳에 오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그것도 모두 진도라면.
세 시 반, 두 사람은 바이올린을 등에 메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언니가 말했다.
“그래도 끈은 놓고 싶지 않아.”
나도 그랬다.
빨리 올라가지 않아도 좋은 걸지도 모른다.
같은 자리를 도는 것처럼 보여도 괜찮은 걸지도 모른다.
바이올린을 등에 메고 이 완만한 계단을 조금 더 걸어보기로 한다.
어쩌면 어른의 배움은,
다음 주에도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조금 올라간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