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테이블에 관한 단상

by해서 Madame Proust

살롱 드 리브르



턴테이블에 관한 단상


도서관 창가에 턴테이블이 몇 대 놓여 있다.


창밖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도 마련되어 있고, 근처에는 LP 음반들이 정갈하게 꽂혀 있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그 앞을 지나치는데, 어쩐지 무심히 지나치기가 어렵다.


반갑기도 하고, 마음 한구석이 조금 아련해지기도 한다.



내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학교 방송반에서 활동했다. 점심시간이면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고, 음악이 나오기 전에 곡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간간이 마이크로 학교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 대단한 활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일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고르고, 작곡가와 곡의 배경을 찾아보다 보니 어느새 클래식 음악이 좋아졌다.


그 무렵 클래식 음악 감상실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곡을 신청지에 적어 내면 DJ가 음반을 찾아 틀어주는 곳이었다. 음악다방과 비슷했지만 조금 더 조용하고 진지한 분위기였다.


명동에도 그런 감상실이 있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는 장소가 있었고, 신청한 곡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간 뒤로는 어쩐 일인지 그런 곳에 잘 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CD가 등장했다.


나는 반가웠다.

LP는 무겁고 부피가 컸다. 먼지도 잘 쌓였다. 음반을 재킷에서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고, 조심스럽게 바늘을 내리는 일도 번거로웠다. 솔직히 말하면 별로 예쁘지도 않았다.

그런데 CD라니.

이름부터 콤팩트하지 않은가.

작고 가벼워 보관하기도 편했고, 듣고 싶은 곡을 바로 찾아 들을 수도 있었다.

나는 속으로 울랄라를 외쳤다.

아날로그의 따뜻한 감성을 잃었다느니 하는 아쉬움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LP는 내 일상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CD조차 거의 듣지 않는다. 음악을 듣고 싶으면 휴대전화에서 곡을 찾아 재생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다시 LP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누군가는 음반을 꺼내 먼지를 털고, 턴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바늘을 올리는 과정을 즐긴다고 한다.


내가 그토록 반겼던 편리함을 두고 다시 번거로운 방식으로 음악을 듣고 싶어 한다니.


조금 신기하다.

물론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음악을 듣는 일에는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어떤 음악을 듣던 장소, 함께 있던 사람, 그날의 공기까지 음악과 함께 기억에 남는다.


가끔 카더가든이 부른 〈명동콜링〉을 듣는다.

이상하게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울컥한다.


노래 속 명동과 내가 기억하는 명동은 서로 다른 시절의 풍경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오래 전의 찬 공기와 잊고 있던 감정들이 밀려온다.


그 겨울의 명동.


차가운 거리를 걷던 소녀. 음악 감상실에 앉아 신청곡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시간.


스무 살 이전의 내가 그곳에 있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턴테이블 앞을 지나친다.


창가의 의자에 앉아 LP를 한 장 골라 들어볼까 싶다가도 그냥 지나친다.


LP가 그리운 것은 아니다.


그 시절의 내가 조금 그리운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아직은 바늘을 올리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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