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발밑을 쓸며 걷는 사람

by도시은둔자


자이나교 수행자가 길을 걷는다. 한 손에는 작은 빗자루, 입에는 흰 천을 가렸다. 걸을 때마다 빗자루로 앞을 쓸며 간다. 땅에 있는 개미를 쓸어내기 위해서다. 물을 마실 때는 천으로 물을 걸러 마신다. 물속에 있는 작은 생명을 걸러내기 위해서다. 밤에는 불을 켜지 않는다. 불에 날아드는 벌레를 죽일까 봐서다.

사람들은 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수행자가 답했다. "나는 발밑을 쓸 뿐이다. 생명을 살리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죽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는 말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나처럼 살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그들의 첫 번째 계율은 아힘사, 폭력을 쓰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네칸타바다, 진실은 여러 얼굴을 가졌다는 것이다. 내 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편집자가 있다. 댓글을 절대 안 단다. 회사에서 누군가 틀린 말을 해도 바로잡지 않는다. 처음엔 비겁해 보였다. 물어봤다. "왜 말을 안 해?" 그가 말했다. "예전엔 틀린 사람을 보면 바로 잡았어. 그게 정의인 줄 알았어. 그런데 내가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누군가의 자존심이라는 개미를 밟고 있더라."

그는 요즘 글을 쓰기 전에 5분을 멈춘다고 했다. 이 문장이 누구를 밟을지 보기 위해서. 자이나교 수행자가 발밑을 쓰는 것처럼, 자기 문장 앞을 쓰는 것이다. 그 이후로 그의 글은 느려졌지만, 오래 가기 시작했다. 밟은 사람이 없으니까.


우리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배웠다. 틀린 것을 보면 말해야 한다고. 그러나 자이나교는 묻는다. 너의 정의가 다른 생명을 죽이고 있지는 않은가?

수행자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냥 발밑을 쓰는 사람이다. 무인 편의점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지 않는 것, 엘리베이터에서 향수를 많이 뿌리지 않는 것, 댓글로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 것.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 작은 아힘사.

장자가 말한 "사물에 의해 부림을 받지 않는 것"이 하늘이라면, 자이나교의 빗자루는 땅이다. 하늘만 보면 교만해지고, 땅만 보면 비굴해진다. 그래서 가끔은 빗자루로 발밑을 쓸며 걸어야 한다.

아네칸타바다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문장이다. 내 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내가 편의점에서 보는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외로움일 수 있다는 것. 그걸 아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폭력에서 멀어진다.


나는 생명을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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