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가 산속을 가다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다. 나무꾼이 옆에 있으면서도 베지 않았다. 그 이유를물으니 "쓸모없어서"라는 것이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집을 지으면 썩는다. 장자가 말했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천수를 다하는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친구 집에 머물렀다. 친구가 하인에게 거위를 잡으라 했다. 하인이 물었다. "한 놈은 잘 울고, 한 놈은 울 줄을 모릅니다. 어느 놈을 잡을까요?" 주인이 말했다. "울 줄 모르는 놈으로 잡아라."
제자가 물었다. "어제 산속의 나무는 쓸모가 없어 살았는데, 오늘 거위는 쓸모가 없어 죽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처신하시겠습니까?"
장자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의 중간에 처신하겠다. 그러나 그 중간이란 도와 비슷하기는 하나 참된 도는 아니므로 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의 도와 덕을 타고 유유히 떠다니는 자라면 그렇지 않다. 칭찬도 없고 비방도 없으며, 한번은 용이 되었다가 한번은 뱀이 되었다가, 시간과 더불어 변화하면서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조화로움을 법도로 삼을 것이다. 만물의 근원에서 노닐고, 사물을 부리되 외물에 의해 부림을 받지 않을 것이니 어찌 재난이 있겠는가."
내가 아는 사진가가 있다. 광고 사진을 찍으면 돈을 벌고, 자기 사진을 찍으면 욕을 먹었다. 광고는 "쓸모 있어서" 사람들이 찾았고, 자기 사진은 "쓸모 없어서" 사람들이 외면했다. 그는 중간에 서려고 했다. "절충안"을 만들었다. 광고 같은 예술, 예술 같은 광고. 그러나 중간은 더 빨리 욕을 먹었다. 광고 쪽에서는 예술 같다고 욕하고, 예술 쪽에서는 광고 같다고 욕했다.
그러다 그가 1년 동안 인스타그램을 껐다. 의뢰도 안 받고, 전시도 안 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동네를 찍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사진. 1년 뒤, 그는 말했다. "중간에 서려고 하니까 죽겠더라. 그냥 도망다니기로 했다. 가끔은 용처럼 보이고, 가끔은 뱀처럼 보이고. 칭찬도 비방도 없는 곳으로."
그때부터 그의 사진은 오래 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쓸모 있으면 산다고 배웠다. 그러나 장자는 보여준다. 쓸모 있어서 죽기도 하고, 쓸모 없어서 죽기도 한다. 나무는 쓸모없어서 살고, 거위는 쓸모없어서 죽는다. 기준이 쓸모에 있으면, 우리는 영원히 칼날 위에 있다.
그래서 장자는 중간에 서겠다고 한다. 그러나 곧바로 부정한다. 중간도 답이 아니라고. 중간도 여전히 남의 시선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진짜 답은 한 문장이다. "조화로움을 법도로 삼을 것이다. 만물의 근원에서 노닐게 하여, 사물을 부리되 외물에 의해 부림을 받지 않을 것이니"
자유로운 사람이란 쓸모 있는 사람도, 쓸모없는 사람도 아닌 사람이다. 칭찬을 좇지 않고 비방을 피하지 않는 사람. 무인 편의점에서 용이 되었다가, 회사에서 뱀이 되었다가, 시간과 더불어 변화하는 사람. 그만이 재난을 면한다.
사물을 부리되, 외물에 의해 부림을 받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