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승차권 예매 전쟁기

해마다 두 번 돌아오는 전쟁 아닌 전쟁

by장호현

이번 주는 이틀 동안 아침 알람을 맞추고, 그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현직에 있을 때도 알람을 맞추고 자면 소리가 울리기 전에 눈이 떠지곤 했는데, 이날은 알람을 맞추지 않은 하루를 포함해 사흘 내내 이른 아침을 시작했다.


바로 ‘추석 연휴 승차권 예매’ 때문이다.


아침 7시 정각에 예매가 시작된다. 하루는 서울역과 청량리역에서 출발해 태화강역으로 향하는 표, 또 하루는 수서역에서 출발해 울산역으로 가는 표, 마지막 날은 서울역에서 출발해 울산역으로 가는 표를 노려야 한다.


특히 이번 예매는 KTX와 SRT가 통합된 후 처음 치르는 명절 예매인지라 다소 생소한 부분도 있었다. 앱 화면도 많이 바뀌어 한 번 접속하면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고작 3분뿐이라 원하는 표를 손에 넣기가 결코 쉽지 않다. 사전에 원하는 구간과 날짜, 시간, 인원수를 미리 등록해 한 번에 불러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두긴 했다.


노트북을 켜고, 오랜만에 태블릿도 꺼내고, 물론 휴대폰까지 대기시켰다. 태블릿 화면에는 초 단위까지 나오는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 그 시계를 보며 정각 07:00:00이 되는 순간 추석 명절 승차권 예매 메뉴를 클릭해야 한다. 정말이지 순간의 선택에 따라 수천 등수에서 수만 등수가 엇갈린다. 클릭이 조금만 늦어도 수십만 등수로 밀려나는 것은 부지기수다. 경험상 원하는 시간대는 대개 겹치기 때문에 5천 등 밖으로 밀려나면 사실상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여태껏 600등이 된 적도 있었고 4,000등을 기록해 원하는 시간대의 표를 여유 있게 예매한 기억도 있다. 반대로 2만 등, 14만 등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고 일찌감치 포기했던 날도 부지기수다.


나 혼자만의 싸움도 아니다. 아내가 언제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딸아이와 아들 녀석도 참전하곤 한다. 때로는 온 식구 4명이 모두 아침잠을 설치고 각자 접속해서 성공 확률을 높이기도 했다.


여수에 사는 후배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아들딸을 두고 있어 명절 연휴마다 이 예매 전쟁을 치른다고 한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직접 움직이는 당사자가 알아서 할 뿐, 가족 그 누구도 동참하지 않는다고 당연한 듯 말했다. 뭐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우리 가족이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마음을 모으는 모습 속에서 끈끈한 가족애를 보게 되니, 생각할수록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게다가 나는 나름의 ‘플랜 B’도 철저히 준비한다. 혹시나 예매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연휴 하루 전날이나 늦은 날 오고 가는 표를 미리 봐두는 것이다. 이 표들은 ‘추석 연휴 승차권 예매’ 기간이 아닌 일반 예매 대상이라 한 달 전에 오픈된다. 그때 바로 예매하거나, 최소한 이삼 주 전에는 서둘러야 겨우 원하는 시간대 표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수서 출발, 울산역 도착 표를 예매하던 날이었다. 시계를 보며 휴대폰과 노트북을 동시에 눌렀지만, 순간 접속이 지연되면서 다시 클릭하는 사이 나는 이미 당첨권에서 멀어졌다. 아내도 내 카운트에 맞춰 도전했으나 7만 등 내외를 기록해 원하는 날짜와 시간대 예매는 완전히 물 건너갔다. 완패였다.


딸아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침에 접속했냐? 몇 등이야?’ 한참 뒤에 답장이 왔다. 예매 사이트를 잘못 건드릴까 봐 노심초사하느라 이제야 확인했다고 했다. 5만 등, 역시나 가능성이 희박했다. 간밤에 아들은 사이트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미리 일러두었기에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완전한 실패였다. 수확물이 단 하나도 없었다. 밤잠을 설친 탓에 괜스레 몸이 더 무겁게 짓눌렸다.


다음 날은 서울역 출발, 울산역 도착 예매가 있는 날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시도해야 한다. 노트북을 클릭할 때 마우스가 살짝 미끄러졌던 것을 떠올리며, 오늘은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액션을 취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휴대폰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쓰라린 실패를 거울삼아 단단히 벼뤘다.


비빔밥으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과일 몇 조각을 입에 넣은 뒤,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 방으로 들어가 서둘러 눈을 감았다.


그날 저녁, 가족 단톡방에 짧은 글을 남겼다.
‘이제 남은 기회는 내일 아침 단 한 번… 모두 자기 전에 알람 맞추고 예매에 동참 바람.’


다음 날 아침,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전날과 똑같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7시 정각을 기다리며 아내에게 카운트를 외치고, 휴대폰을 조금 빨리 눌렀다. 이어서 노트북도 클릭했다. 어제와 비슷했다. 순간 클릭과 동시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한번 클릭했지만 모니터에 뜬 등수는 희망이 없었다. 예전보다 연이틀 결과가 참담하다. 시스템이 변했는지, 따라가지 못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내, 아들 모두가 순위 밖이다.


딸아이는 휴가를 사용하면 가능하도록 준비한 ‘플랜 B’를 가동해야 할 것 같다. 아들이 내려오는 표가 문제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휴가가 없는 대학원생이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표는 문제가 없다. 마침 추석 연휴가 끝나고 바로 부산에서 개최되는 학회에 참석할 예정이라, 며칠 더 부산에 머물다 올라갈 수 있도록 상경 표는 이미 따로 확보해 둔 상태이다. 아들 녀석은 이번 추석 연휴를 운 좋게도 며칠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멋진 그림을 완성해 낸 것이다.


이제 남은 방법은 결제가 끝나고 나오는 잔여 표에 기대를 걸고 이른 새벽에 자주 해당 앱에 들어가 보는 것이 유일하다. 예전에는 밤 12시쯤에 그날 예약을 해제한 표들이 앱에 올라왔다. 언젠가부터 시간이 새벽으로 바뀌어 올라온다. 물론 필요 시간대에 예약 대기가 있으면 무조건 해 두고 다음 날까지 기다려야 한다. 경험상 가능성이 무지 높다.


이틀, 아니 사흘간 이어졌던 전쟁 아닌 전쟁은 마침내 막을 내려다. 소득 없이. ‘플랜 B’로 예매한 표를 가족 단톡에 올려 딸아이에게 일정에 참고하라고 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들 한다. 명절 풍경도 예전과 다르다. 나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고, 내 삶의 방식도 조금씩 변해가는 중이다. 차례를 집에서 지내지 않고 가족 묘지에 찾아가 간단히 술 한 잔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으니 말이다.


연휴를 이용해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하지만 비록 명절의 풍속도가 변했다 한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명절이면 고향과 부모 형제의 품을 찾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도 원하는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이 수많은 인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다시 침대 속으로 파고들어 아침잠을 청했다. 바라던 대로 되었다면 어제보다 훨씬 더 달달하게 감기는 아침이겠지만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서인가 보다.


구하지 못한 표는 정확하게 원하는 시간대가 아니더라도 구해질 것이다. 추석 연휴에 고향으로 내려올 딸과 아들의 기차표를 예매하는 바쁜 손길 위로, 가족을 기다리는 따뜻한 온기가 포근하게 서려 있다. 이것은 다가올 기쁨을 미리 마중 나가는 ‘행복한 기다림’이다. 아침잠 조금 설쳐가며 준비하는 이 고생은, 정해진 시간에 배달될 반가운 선물 상자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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