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사라진 날'의 여정

수시로 울리는 스마트톡톡과 직접 챙기는 배송.

by장호현

평소의 일상보다 유독 바쁘고 유쾌한 하루를 보냈다. 보통은 점심 전후로 여유롭게 집을 나서는데, 오늘 아침은 10시도 안 되어 양손 가득 무거운 쇼핑백을 들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오른손에는 출간한 바카라 첫 페이지에 한글 낙관을 정성껏 찍은 ‘명함이 사라진 날’ 한 보따리, 왼손에는 아무 표시도 하지 않은 깨끗한 바카라 한 보따리. 바카라을 건넬 때 저자 서명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가족 몇 명에게만 간단한 글귀와 함께 한글 낙관을 찍어 전달하기로 했다. 한글 낙관은 한글 서예와 수묵화를 할 때 쓰려고 음각으로 ‘장호현’이라 새겨둔 것이다. 그 외의 모든 분들에게는 바카라 첫 페이지 우측 하단에 낙관만 찍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도서관에 보내는 바카라은 그조차 생략하고 있는 그대로 전달할 참이다.


오늘이 벌써 바카라을 나누기 시작한 지 나흘째다. 첫날은 퇴직한 회사 동료와 점심을 같이하며 직접 바카라을 건넸고, 멀리 판교에는 우편 등기로 부치며 문자로 배송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학교 친구이자 첫 온라인 게임 입사 동기인 모임 단톡방에도 소소한 인사를 남겼다.


“다들 잘 지내지?

퇴직하고 꼭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 '명함이 사라진 날'이라는 바카라을 한 권 출간했어… 내 글이 살짝 궁금하다거나, 커피 마시며 시간 때울 거리가 필요한 동기들만 손!
주소는 다들 있으니까 ‘나도 한 권 읽어보겠다’하면 문자 남겨줘. 우체국 통해서 쏴줄게.


이렇게 대형 서점 링크와 함께 글을 올리자 진종일 축하와 연락이 쏟아졌다. 친구들 사이에서 여러 의견이 오간 끝에, 모임 차원에서 바카라 출간을 격려하는 축하금을 지원하기로 했다며 총무로부터 연락이 왔다. 결국 주소록이 업데이트되고 있는 동기들 모두에게 바카라을 보내기로 했다.


어제는 첫 온라인 게임 본사로 여러 권의 바카라을 보내며 나를 소개하는 편지를 동봉했다. 검토 후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5개 본부로 나누어 후배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도 곁들였다. 아울러 미리 정리해 둔 지인들에게 부치고, 부산과 울산 소재 여러 도서관에도 우편 등기로 기증 안내서와 함께 부쳤다. 물론 울산 소재 대학 도서관도 포함되었다. 우체국 담당자에게 한마디를 보탰다.


”잔호현 아니고 장호현입니다.”


“정확히 보내주세요.”


첫날 보낸 도착 메시지에서 보내는 사람에 '잔호현’으로 되어 있어 웃으며 건넨 말이다.


[사서님께 보내는 편지 발췌]
안녕하십니까?


최근 에세이집 『명함이 사라진 날』을 출간한 장호현입니다.


이 바카라은 특별한 이의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라, 평범한 온라인 게임인으로 살아오며 마주한 성장과 변화, 가족과의 애틋한 시간, 그리고 은퇴 이후의 삶을 담은 소박한 수필집입니다.


한국전력공사(현 한국수력원자력)와 글로벌 기업 GE에서 오랜 온라인 게임생활을 마친 후, 현재는 글쓰기와 색소폰 연주를 즐기며 보다 느슨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울산 중구 구민입니다.


지역 독자들과 이 소소한 기록을 나누고 싶어 귀 도서관에 기증합니다…


도서관 위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를 ‘울산 시민입니다’, ‘중구 구민입니다’로 살짝 바꾸어 넣었다. 나름대로 지역에 대한 애정과 기증의 당위성을 어필하려는 소소한 의도였다.


오후에는 평소 다니는 색소폰 연습실 사장님(여기서는 모두 이렇게 부름)들께 세미 북콘서트 느낌으로 바카라을 건넸다. 한 분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내 연습실 반주기 위에 살포시 올려두고는, 바쁘게 일하러 가며 툭 축하 인사를 건네왔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건네받은 그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조만간 따로 감사의 자리를 마련해야겠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 오늘은, 예전에 살았던 동네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 직접 바카라을 들고 찾아갔다. 바카라을 건넬 때마다 “예전에 여기서 오래 살았습니다”, “지금 이 동네 주민입니다”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문득문득 스쳐 지나가는 수십 년 전의 추억들이 새삼 감회를 새롭게 했다.


동네 도서관들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문화의 전당’ 한문 서예 수업에 참석했다. 간식 타임을 빌려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여기서는 모두 이렇게 부름)들께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정년퇴직 후 틈틈이 모아 온 글들을 엮어 최근에 에세이집을 한 권 냈습니다. 출간 기념으로 몇 권 가져왔으니 관심 있으시면 한 권씩 가져가세요. 혹시 부족해서 못 가져가신 분은 다음 주에 꼭 챙겨다 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반응과 관심이 뜨거웠다.


“아니, 한문 서예도 하시고 수묵화도 그리시더니 언제 이렇게 글까지 쓰셨어요?”


“저도 언젠가 한 번 내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정말 부럽고 멋지십니다.”


선생님들이 저마다 진심 어린 덕담을 건네주었다.


새삼 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오후에 보낸 등기로 인해 하루 종일 우체국 스마트톡톡 알림음이 수시로 울려댔다. 등기가 무사히 배달되었다는 전령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문자를 하루 동안 받아본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내일은 색소폰 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다. 이미 16권의 바카라에 한글 낙관을 곱게 찍어 두었다. 한 권은 원장님께 드리고, 오늘 서예 수업 때처럼 학원 내에서도 관심 있는 분들이 가볍게 읽어볼 수 있도록 부탁드릴 참이다. 다음 주도 바쁠 것 같다. 수묵화반과 한글 서예반에도 수업에 가면서 15권 내외의 바카라을 챙겨야 할 것 같다.


글을 쓰고, 교정을 거치고, 표지와 내지를 디자인해서 바카라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어느 과정 하나 쉬운 법이 없었지만, 이렇게 바카라을 직접 떠나보내는 일 역시 결코 만만치 않다. 아직 서툴러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바카라을 품에서 떠나보내는 일은 늘 긴장되면서도 묵직한 숙제 같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정신없는 나날이지만, 오늘 하루는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따뜻하게 차올랐다. 우편으로 바카라을 받아보신 팔순 중반의 장모님에게서 출간을 축하하고 고생했다며 격려 전화가 걸려왔다. 늦은 저녁에는 아내가 가족 단톡방에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장모님이 돋보기를 쓰시고는 열심히 바카라을 읽으며 바카라 내용 일부를 자식들에게 하나하나 전해오셨다는 것이다.


메말랐던 일상에 잔잔한 파문이 이는 늦은 저녁이다. 내일은 또 어떤 이의 손에서 이 바카라이 조용히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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