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든 기쁨과 슬픔은 자기 언어로 저장된다.
무작정은 현실도피다. 어쩌면 산티아고로 가는 길도 도피일지도.
파리의 밤거리를 걸어도 그를 잃은 슬픔이 가실 것 같진 않았지만.
이곳 파리의 밤은 여기 살거나 다른 목적으로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적당한 비율로 섞여 있어, 슬픔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예술과 사랑의 도시, 파리.
하지만 나는 오늘 내게 들이닥친 힘겨움과 버거움을 몰아내려고 무작정 파리의 야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로 했다.
그의 부고를 나 자신과 그를 전혀 모르는 파리와 공유하려고 호텔을 나섰다.
파리 여기저기에 그를 잃은 슬픔을 떨어뜨려 이른 아침 한국말을 모르는 파리의 청소부가 그것을 수거해 가도록 할 생각이었다.
모든 기쁨과 슬픔은 자기 언어로 저장된다.
호텔을 나서자 바로 문 앞부터 낯선 도시의 이질감이 느껴졌다.
어둠이 깔린 골목을 조심하라는 호텔 도어맨의 안내에 따라, 나는 파리에 몰려든 관광객 무리에 끼어들어 일행처럼 걷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리자 여기저기서 켜진 조명이 마치 2차 대전 당시 대공 탐조등처럼 어둠을 격추하듯 몰아내기 시작했다.
파리의 밤이었다.
파리의 소란함은 서울에 비할 바 아니었지만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방언처럼 쏟아내는 말로 밤과 낮의 간극이 메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