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총생산이 증가하면 국민은 행복해질까?

한계소비성향과 hand to mouth


1. 흐를 구멍이 있어야 물이 흐르지


낙수(trickle-down)라는 말은 이상하리만치 강한 은유다.

위가 차면 아래로 넘친다는 이 문장에는 물의 성질에 대한 신뢰가 있다. 그러나 은유가 감추는 것이 하나 있다. 사실 물이 흐르려면 배관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에서 그 배관의 이름은 전달경로(transmission channel). 상위 소득의 증가가 투자로, 투자가 고용으로, 고용이 임금으로, 임금이 소비로, 소비가 다시 총수요로 이어지는 길고 가느다란 관. 낙수론은 이 관이 뚫려 있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이 전제는 어떤 집단에서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거의 언제나 신앙의 대상으로 취급되어 왔다.

거시경제학을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바로 이 전제다. 그런데 교양 한 학기, 유튜브 몇 편으로 경제학을 스치고 지나가면 남는 것은 은유뿐이다. 은유는 배관을 묻지 않는다. 배관의 온전성만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2. 배관의 이름은 MPC다


전달경로를 숫자로 바꾸면 한계소비성향(MPC)이 된다. 추가로 1원이 들어왔을 때 그중 얼마가 소비로 나가는가. 낙수가 성립하려면, 위쪽에 쌓인 돈의 MPC가 충분히 커야 한다.

그런데 MPC는 소득이 높을수록 낮아진다. 이것은 이념이 아니라 관측이다. 그리고 이 관측을 정교하게 만든 개념이 Hand-to-Mouth(HtM), 말 그대로 입에 풀칠하는 가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HtM이 곧 빈곤층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산은 있으나 그것이 부동산 같은 비유동자산에 묶여 있어 당장 쓸 현금이 없는 가계, 즉 Wealthy HtM 가 존재한다. 박기영(2017)이 한국 가계자료(KLIPS)로 추정한 구성은 이렇다.


Non-HtM 64.0%


Wealthy HtM 32.2%


Poor HtM 3.8%


한국 가계의 약 36%가 HtM이고, 그 대부분이 '부유한' HtM이다. 소득 기준으로는 중산층이지만 유동성 기준으로는 제약가계인 사람들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한다는 뜻이다.

MPC의 서열은 Poor HtM > Wealthy HtM > Non-HtM 순으로 나타난다. 같은 1원이라도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소비로 전환되는 비율이 다르다. 배관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며, 굵기가 서로 다르다.

낙수론은 가장 가는 관에 물을 붓고 아래가 젖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3. 우리나라는 교과서 속 삼면등가가 성립하지 않는다: 기형적 가계 자산구조


생산과 소득과 지출은 사후적으로 같다. 삼면등가의 원칙이다. 그러나 이 등식이 순환으로서 작동하려면, 소득이 다시 지출로 돌아와야 한다.

한국에서 이 회로는 두 군데에서 끊긴다.

하나는 가계다. 고소득 가계는 저MPC 가계이고, 부동산 중심의 자산구조 속에서 추가 소득의 상당 부분을 비유동자산 유지나 해외 소비, 해외 자산으로 돌린다. 국내 총수요로 되돌아오는 몫이 얇다.

다른 하나는 기업이다. 경제 발전을 명분으로 세부담이 낮아져도, 그 이익이 반드시 국내 투자나 배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사내유보로 남거나, 투자하더라도 인건비가 낮은 해외로 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IMF조차 2015년, 부의 낙수 효과가 실증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위쪽 소득의 증가가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낙수론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결론이었다.

그러니 한국에서 낙수는 이념적으로 틀렸다기보다, 구조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부동산에 과잉 고착된 가계 자산과 유보 지향적인 기업 형태가 결합할 때, 삼면등가는 회계적 항등식으로만 남고 순환으로서는 멈춘다.


결국 한국에서 국민소득 삼면등가의 규칙은 저소득층 및 서민에게 다다르지 않으므로 낙수가 실패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잉 비유동적 자산구조(부동산 편중), 그리고 불투명한 금융구조는 어느 정도 이상의 소득계층까지에서만 그 생산과 소득이 소비로 등가하게 만들며 상당히 비합리적인 경제 주체를 생산한다. 결국 내가 하고자하는 말은 생산의 산물과 이에 이어지는 고소득층의 고소득이 소비를 통해 서민경제에게 흐르는 것이 아닌 지대에만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과 우리나라의 낙수의 배관 차이.



4. 그렇다면 생산성이 오르면 우리는 더 행복한가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의 다른 얼굴이다.

절대적 결핍의 구간에서 생산성은 곧 생존이다. 그 구간에서는 총량이 곧 후생이다. 그러나 어느 임계를 넘어서면 후생을 결정하는 것은 총량이 아니라 배열이 된다. 나는 그 지점 이후로 생산성과 국민후생의 상관성이 체감(점차 줄어듬)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GDP 증분이라도 그것이 저MPC 계층에 쌓이면 국내 순환으로 거의 돌아오지 않는다. 숫자는 커졌으나 흐름은 커지지 않았다. 통계는 성장을 말하고 사람들은 정체를 체감한다. 이 괴리는 착시가 아니다. 지표가 측정하는 것과 삶이 겪는 것이 애초에 다른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때 남는 것은 절대적 개선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이다. GDP 증분이 곧 국민후생의 증가인가, 아니면 분배 실패로 인한 상위 소득계층으로의 부의 쏠림이 한 번 더 고착된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이 성장률 논쟁보다 훨씬 앞에 놓여야 한다고 본다.



5. 대표적 개인이라는 지우개


두 논의는 결국 하나의 물음에 도달한다.

낙수효과라는 어휘와 생산성=후생론은 암묵적으로 무엇을 지우는가?

거시모형의 오랜 관습인 대표적 개인(representative agent)은 경제 전체를 한 사람으로 축약한다. 평균이 곧 전체가 되고, 전체가 곧 개인이 된다. 이 축약은 아름답고, 다루기 쉽고, 그리고 위험하다. 축약의 순간 '누구에게 얼마나 돌아갔는가'라는 질문이 모형에서 물리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질적 가계를 명시적으로 다루는 최근의 New Keynesian 계열 모형(HANK)이 보여준 것은 단순하다. 유동성 제약을 인정하고, MPC의 이질성을 인정하는 순간, 총량과 후생 사이의 등호는 곧바로 부등호가 된다. 재정승수의 크기조차 '얼마를 썼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손에 닿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 문제는 '통계가 거짓말한다'가 아니다. 통계를 사용하는 방법이 가치판단에 따라 편향되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6. 정바카라의 좌표는 소득이 아니라 유동성이다


여기서 실천적인 함의가 하나 나온다.

복지는 오랫동안 최빈층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생계보장이라는 목표에서 이는 정당하다. 그러나 소비 진작과 내수 순환이라는 목표를 함께 놓으면 좌표가 달라진다. Wealthy HtM이 두텁게 분포한 구간, 주거비와 교육비, 원리금 상환에 눌려 소득은 있으나 현금이 없는 중위소득 75~125% 구간에서 이전소득은 상당 부분 즉시 소비로 전환된다.

반대로 중위소득 150% 이상에서는 Non-HtM 비중이 우세하고, 추가 소득의 상당 부분이 저축과 자산으로 귀착된다. 이 구간에 대해서는 이전지출보다 조세와 금융정바카라이 더 정확한 도구다.

요컨대 선별의 기준을 소득 하나로 두는 설계는 정확하지 않다. 부채, 유동자산, 주거비 부담을 함께 보는 설계로 이동해야 한다. 낙수의 반대말은 분수가 아니다. 경로 설계다.



7. 재질문


trickle-down effect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볼 때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들이 틀렸다기보다, 그들이 쓰는 모형이 다른 세계의 모형이라는 편이 정확하다. 마찰이 없고, 유동성 제약이 없고, 모두가 평균인 세계. 그 세계에서 낙수는 정리(theorem)다. 문제는 우리가 그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학이 현실설명력을 잃었다는 소문의 원인은 경제학의 정교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교하게 만들어진 세계와 우리가 사는 세계 사이의 거리를 너무 자주 생략해왔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증분은 어디로 흐르는가. 그 흐름을 막고 있는 배관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후생이라 부르기로 합의했는가.

성장률은 답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질문의 시작일 뿐.



8. 공급 측면 경제학과 나의 수요 측면 접근


다만 요즘 경제 현황에서 근거해봤을때, 애초의 낙수의 첫 시작의 불가능성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항상 글에서 말한 건 시작점이 아니라 낙수의 흐름과 과정의 병목가능성을 말하고 있었다. 애초에 낙수를 기대해 볼 기업가 정신이 제도에 의해 제약될 수도 있다는 점에 나는 언제나 동의한다. 하지만 글에서 나는 물이 서민에게 흐를 수 있는가? 이 과정의 가능성에 대해서만 의견과 논지를 전달하고 있다. 결국 내 글의 논점 부분과 공급측면의 경제학이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다른 것이었다.


거시경제학적으로 진짜 본다면 공급 측면에서의 기업활동 유인은 내가 써온 글들의 논지인 수요 측면 거시접근과는 별개의 중요한 문제. 그래서 나는 공급 측면 경제학의 의견도 인정한다. 다만 내 글은 언제나 공급이 이루어졌다는 전제가 있다하더라도 그 성과가 소비와 가계후생으로 얼마나 전달될지를 논하고자 하였다.


나의 답은 그것이었다. 공급측면 경제학이 바라는 낙수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







Reference


Kaplan, Greg, Benjamin Moll, and Giovanni L. Violante. 2018. "Monetary Policy According to HANK." American Economic Review 108 (3): 697–743.


박기영,「The Wealthy Hand-to-Mouth Households in South Korea」, Global Economic Review, 2017.


IMF 낙수효과 관련 분석 보도(KBS, 2015.6.16).


Causes and Consequences of Income Inequality, IMF SDN/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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