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주의 선언

하나의 정답은 폭력이다.



한 명의 인간은 자신의 삶의 주인, 개인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슬롯와 협상해야 한다. 슬롯의 존재가 인간을 야만과 달리 만든다. 그렇기에 한 명의 인간과 슬롯는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만 한다. 인간의 삶을 위한 수단으로서 슬롯가 기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슬롯가 인간의 위에 있는 가치가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결국 인간을 내면화시켜 노예적으로 예속시켜 버린다. 이 상태는 상당한 문제인데 이때 그는 그저 슬롯의 종, 즉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상태성 하에 목적으로서의 인간은 소외된다. 그는 결국 슬롯를 위한—타인을 위한 물건이 되어 버리며 자신의 삶의 주체성을 상실한다.



결국 이와 같은 논지에 따르면 내가 대의민주주의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간단해진다. 그 한 사람만의 역사성과 그 특수성이 그 사람이 정당으로 귀속되길 선택하는 순간. 동일시될 위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정당과 나는 어떤 일부의 교집합이 있고 그렇기에 한 사람은 그 정당과 정치인을 뽑는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는 아직 여집합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상적인 타인은 언제나 나의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매몰되기 마련이다. 정당정치가 곧 타인에게 나 그 자체로 전체화—동일시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나라는 개인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폭력의 순간이 된다는 것이다. 타인이 여집합도 보아줄 것이란 기대를 해서는 안되며, 타인은 언제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언제나 남을 구별 지어버리려 한다. 집단주의적 태도를 가진 그들에게 이에 대한 가장 쉬운 구별 짓기로는 정당정치에의 개인의 귀속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Being-for-Itself로 나아감에 있어 정당정치에의 참여는 언제나 위험하며 한국에서 존재의 폭력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어떤 어젠다가 현실로 내려오는 순간을 경계해야 한다. 지상의 정치(어느 당, 어느 정바카라, 어느 정권)로 내려온다는 건, 곧 하나의 입장에 서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의 정답을 믿는 것이다. 현실 정치의 구체적 편들기가 '통치성에 포섭되는 것'이다. 정답은 폭력이며 나는 그들에게 나의 결정권을 넘기지 않음으로써 그러한 폭력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무한한 반정립만이 자유이다. 나는 어디에도 나를 착지시키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