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으로 판단했다는 착각

형식이 실질을 압도하는 순간



1. 대중에게 알려진 정보



아마도 정보의 날조를 확신하는 태도란 상당히 그릇된 태도 일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는 모든 정보는
그 정보를 가공하는 사람들의 외력에 의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원형이 되는 사건으로부터
변형이 될 여지가 있다고 보는 건 틀리다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사건에 있어 우리 모두가 당사자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슬롯적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러한 정보는 누가 알리며, 또한 그것은 어떻게 퍼져나가게 될까? 생각해봐야 한다.


말 전달하기 게임을 생각해 보자. 맨처음 누군가 사물을 보고 그것을 옆사람에게 전했을 때에 한번 정보는 가공이 된다. 하지만 맨마지막 사람에게 도달한 정보는 거의 언제나 맨 처음의 그것과는 다르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봐도 이과정에서 여기서 수많은 왜곡, 선동, 날조가 일어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비록 그 나팔수에게 어떤 악의가 없다할지라도 말이다. 선의에 의해서든 악의에 의해서든 사람과 사람간의 정보의 전달은 해상도가 달라진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며 말에는 복사 붙여넣기가 되지 아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궁극적으로 공개된 정보는 비중립적이며 다만 그 정보가 얼마나 비중립적이지 않은가? 만이 판단의 대상이라 생각이 되어진다.






2. 허울 좋은 말이 무언가를 가릴 때



이런 측면에서 요즘 시대에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 정치적인 판단을 한 개인이 온전히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약간의 모순이 있다고 봐야한다. 모든 사실이 대중에게 공개가 되어 있지 않으며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는 모든 정보는 결국 누군가에 의해 가공되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의도를 거쳐 가공되는 모든 지식은 결국 어떤 권력을 지탱하며, 그것을 수용하는 한 개인은 보통 비판적 사고 없이 그것을 내면화할 뿐이다. 그 순간 어떠한 판단을 할 때 그가 그 자신의 자유의지로 판단을 했다는 착시가 일어난다. 사실은 그 자유의지가 일련의 의도가 부여된 정보들에 의한 내면화 과정을 거친 아주 편향된 그것임에도 불구.


이러한 사실은 최근 들어 ai 등을 통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세상이 더욱 고도화되며 알고리즘 그리고 이 지식망을 통한 과잉된 매스미디어는 대중에게 이러한 비이성적 내면화과정을 고도로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무의식적으로 누른 맨 처음의 그 슬롭 비디오가 결국 당신의 모든 생각을 결정해 버린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간극은 너무나 크다.



결국 정직, 공정, 정의 등 많은 어휘들은 애매모호하기에 허울 좋은 말로 보인다.
그러한 가치들은 결국 규범인데 결국 그러한 규범을 누가 슬롯에 안착시켰을까 생각해 보면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행위들을 해서 올라간 사람들이 사다리를 걷어차기 위해 만든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언들이 CEO에 많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직이라는 개념이란 무엇인가? 결국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권력의 통치행위라는 것.
저런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올라가고 아득바득 이권을 챙겨 가는 것이라 볼 수 있지 아니한가.


결국 시험 같은 전근대적 형식들은 겉일 뿐이고 그 실질은 누가 더 많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가 더 많은 사람들을 나의 행위에 동조하게 하여 자신의 아래에 서게 만드는가 이런 것만을 생각하는 전략가들이 우리의 위에 있다는 것 일 수 있다.


정직해 보이는 형식을 구실로 그 알맹이만 가져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과연 전근대와 근대로부터의 모든 규율이 정직이라는 말로 대변될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그건 또 아닐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