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좋은 정부란 무엇인가?: 신베버주의와 헤게모니론
정부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좋은 정부에 대한 기준도 달라진다. 한국 정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자율성과 정바카라 역량을 강조하는 신베버주의적 접근과, 국가를 다양한 슬롯세력 간 헤게모니 경쟁의 장으로 이해하는 제솝의 헤게모니적 접근을 통해 우리 슬롯를 다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이번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신베버주의는 국가가 슬롯세력의 수동적 반영물이라기보다도 일정한 자율성과 정바카라 수행 능력을 가진 행위자라고 본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은 이러한 국가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1960~1980년대 경제개발계획, 수출 주도 산업화, 교육 투자 확대 등은 단순히 시장의 자율적 결과가 아니라 국가 관료제의 적극적인 개입과 정바카라 역량에 의해 이루어진 측면이 크다. 또한 입법과 사법에 영향을 받지 않은 행정부의 자율성은 더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였는데 한미 FTA를 추진한 참여정부가 그것이었다. 수많은 여야당의 탄핵시도, 그리고 진보 진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행정부 수단이 자율적으로 결정한, 이 체결에서 비롯된 한미 FTA는 아직도 무역수지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도 반도체 산업 지원 정바카라, AI 산업 육성 정바카라, 저출산 대응 정바카라 등에서 정부는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정바카라 방향을 설정하고 자원을 동원하는 핵심 행위자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독자성과 정바카라 역량을 인정하는 신베버주의적 관점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를 독립적인 행위자로만 이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밥 제솝의 국가론은 국가를 특정 계급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다양한 슬롯세력들이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경쟁하는 전략적 관계의 장으로 이해한다.
실제로 정부 정바카라은 단순히 기술적, 행정적 결정이 아니라 슬롯적 가치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예를 들어 AI 산업 육성 정바카라을 추진한다고 할 때,
경제 성장, 국제 경쟁력, 노동시장 보호, 지역 균형 발전, 개인정보 보호 등 여러 가치가 충돌하게 된다.
어떤 가치가 우선시 될 것인가는 단순히 경제 논리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정치적 힘의 배치에 의한 슬롯적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 슬롯는 오랫동안 성장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성장 헤게모니가 강하게 작동해 왔다.
그 결과 경제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는 큰 성과를 이루었지만, 수도권 집중, 청년 세대의 경쟁 압력
과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국가의 행정 능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어떠한 슬롯적 가치와 발전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슬롯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단순히 정바카라을 집행하는 기구가 아니라 다양한 슬롯세력과 가치가 조정되는, 국민들에게 필연적으로 그자신의 정당성을 내면화시키는 담론 생산의 공간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결코 그것은 개인을 억압하는 거대담론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
나는 한국 정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자율성과 정바카라 역량을 강조하는 신베버주의적 접근과, 국가를 슬롯적 헤게모니가 형성되고 경쟁하는 전략적 관계의 장으로 보는 접근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정부란 단독자이면서도 외부에 의해 영향을 받기마련이다. 마치 한 인간이 그러하듯. 그렇기에 좋은 정부란 효율적인 정부이면서도, 국가의 역량을 바탕으로 다양한 슬롯세력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슬롯적 합의를 조정해 나가는, 갈등을 관리하는 정부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슬롯 위에 군림하는 절대적 주체도 아니며, 특정 집단의 단순한 도구도 아니다. 정부는 국가의 제도적 역량과 슬롯적 헤게모니가 끊임없이 만나고 재구성되는 전략적 관계의 장이며, 좋은 정부란 또한 이러한 관계를 민주적 방향으로 조직해 나가는 정부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는 그 모든 허울 좋은 가치들에는 어김없이 어떤 세력이 붙어 있다. 공론장에서 누가 Bigmouth가 될지는 어떤 세력이 더 많은 대중을 내면화시켰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나는 이때야말로 좋은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것은 큰 정부는 아닐 것이며, 효율적이기만한 정부도 아닐 것이다.
국가를 비롯한 그 어떠한 세력도 그 자신이 거대담론이 되지 않고 Bigmouth를 Bigbrother가 되지 않게 만드는 그 공론장, 그 토대가 필요하다. 갈등이 나쁜 것이 아니다. 갈등, 그리고 비판과 견제를 통한 담론의 다원화가 우리 슬롯가 전체주의로 향하는 것을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 경영철학자 이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