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크기를 모르는 고통

수술 9일 전

by김지축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은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암이라는 진단은 명확했다. 병원은 내게 병명을 알려주었고, 산정특례 신청서를 건넸다. 8,700원이던 진료비가 800원이 되었다. 나는 국가가 공인한 암환자가 되었다며 농담까지 했다. 그날의 나는 제법 담담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움이 커진다.

CT, MRI, 뼈 스캔을 받았다. 수술을 앞두고 있고, 이후에는 항암과 표적치료가 기다리고 있다. 병원에서 알려준 일정은 제법 구체적인데, 정작 그 일정들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꿀지는 알 수 없다. 얼마나 아플까. 항암을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내 얼굴과 몸은 얼마나 달라질까. 완치후 재발이 되면 어쩌나.


나는 비교적 단출한 일상을 살아왔다. 그런데 그 일상마저 제약을 받게 되었다. 훌쩍 산에 오르는 일조차 몸 상태를 먼저 살펴야 하고, 당장 다음 주의 일정도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무엇을 하느냐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가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과 갈 수 없어 포기하는 것은 다르다. 하지 않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 역시 다르다. 내 슬픔은 그 차이에서 온다.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유를 당연하게 여겼던 그 사실이 숨막히게 그리워 질 것 같다.


무언가를 못 하게 되는 것보다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도 답답하다. 처음에는 이것을 무지라고 불러야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무지라는 말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의 바카라임이 묻어 있다. 나는 묻고, 듣고, 찾아보고, 이해하려 애쓴다. 그럼에도 아직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것은 무지가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그 불확실성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이다.


고통의 크기를 안다면 적어도 준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을 쉬어야 한다면 일주일의 일정을 비우고, 한 달을 쉬어야 한다면 한 달의 대바카라을 세울 것이다. 감당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포기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아무리 계산해도 아직 주어지지 않은 숫자가 있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채울 수 없는 빈칸이 있다. 두려움은 그 빈칸에서 자란다. 아무리 남의 투병수기를 보아도 그것은 남의 고통일 뿐, 나의 고통은 다를 수 있다. 병으로 인해 내 일상을 얼마나 양보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는 막막함.

사람들은 강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강해지고 싶다. 하지만 강인함만으로 불확실성을 없앨 수는 없다.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고 해서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그 고통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나를 아프게 할 것인지 알고 싶다.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아직 무엇에 대처해야 하는지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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