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만 되면 엄마는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날부터 달토끼가 다르게 보였다

by찬란한행운아

요즘 아침저녁으로 부쩍 쌀쌀해졌다.

아직 나뭇잎의 색은 그대로인데, 공기부터 먼저 계절이 바뀌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다. 낮에는 햇볕이 따뜻하지만 해가 지고 나면 창문을 닫게 되고, 어느새 긴소매를 찾게 된다. 이런 날이면 몇 주 전 지나간 추석이 생각난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늘 비슷한 풍경이 남는다. 음식을 만들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밥을 먹고, 누군가는 부모님을 만나러 먼 길을 다녀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엄마에게 명절은 조금 다르다. 엄마는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같은 말을 한다.

“명절만 되면 이상하게 엄마가 더 보고 싶어.”


엄마는 평소에도 연휴가 싫다고 한다. 연휴가 시작되면 평소 다니던 도로는 한산해지고, 텔레비전을 틀면 고속도로가 막히고 기차가 붐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저마다 부모님을 만나러 길을 나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엄마는 그 모든 일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예전에는 엄마에게도 명절이면 만나러 갈 사람이 있었다. 외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은 몸은 고되어도 마음은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기차를 타고 먼 길을 가는 것도 힘든 줄 몰랐다. 만나서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돌아올 때가 되면 그제야 아쉬움이 밀려왔다. 헤어지는 게 그렇게 싫었다고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라타면 차라리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할머니와 헤어지는 게 싫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때는 다시 만날 날이 있었다. 다음 명절이면 다시 갈 수 있었고, 기차를 타고 그 길을 다시 달릴 수도 있었다. 보고 싶으면 찾아갈 수 있었고, 헤어질 때마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 길을 갈 수 없다.


사람들은 명절이면 부모님을 만나러 길을 나서지만, 엄마에게는 그 길 끝에 더 이상 외할머니가 없다. 명절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집은 있지만,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엄마의 집은 없다. 그래서였을까. 엄마가 연휴를 싫어한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그 말 뒤에 있는 마음을 조금씩 알 것 같았다.


명절이 오면 오래전 풍경도 함께 돌아오는 것 같다. 기름에 전이 익어가던 냄새, 식탁 위에 차려지던 음식들, 분주하게 오가던 사람들의 모습. 엄마는 지금도 명절이면 음식을 한다. 누가 많이 오는지, 얼마나 먹을지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예전과 다르지 않게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린다. 그저 손을 움직인다. 전을 부치고, 국을 끓이고, 그릇을 꺼내고, 음식을 하나씩 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어쩌면 엄마에게 음식을 만드는 일은 지나간 시간을 이어가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명절을 다시 불러내고, 그때의 식탁을 다시 차리고,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람을 잠시나마 곁에 두는 일.


나는 그런 엄마를 가만히 바라봤다. 처음에는 엄마가 참 오래도록 외할머니를 잊지 못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엄마가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니구나.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엄마에게 기대고 싶은 어린아이가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밖에서는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엄마 앞에서는 여전히 딸이고 싶은 사람.


생각해 보면 나도 그렇다. 나는 아직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매일 엄마를 보고, 같이 밥을 먹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눈다. “밥 먹어.” 그 한마디에도 엄마가 있고, 냉장고 문을 여닫는 소리와 집 안을 오가는 발걸음에도 엄마의 하루가 묻어 있다. 너무 익숙해서 소중한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이다.


그러다 문득 무서워진다. 언젠가 나에게도 엄마가 그리운 날이 오겠구나. 지금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엄마가 없는 날에는 가장 선명하게 떠오를지도 모른다. 아무렇지 않게 들었던 “밥 먹어”라는 말 한마디가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말이 될 수도 있으니까.


추석이 지나고 어느 가을밤이었다. 창문을 닫으려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차가운 바람 사이로 둥근달이 환하게 떠 있었다.


어릴 때는 저 달에 정말 토끼가 사는 줄 알았다. 달 한가운데에는 하얀 토끼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긴 귀를 세우고 앞발로 절구를 꼭 붙잡은 채 떡메를 들고 있었다. 하얀 달빛 아래에서 떡메를 들어 올렸다가 쿵, 하고 내려치는 토끼. 밤새 떡을 찧느라 귀가 달빛에 반짝이는 것까지 상상했다.


그때는 그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달토끼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어쩌면 사람들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마음속에만 담아두기 어려워서 달에라도 올려놓았는지도 모른다. 저 달 어딘가에 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멀리 떠나버린 것 같지는 않을 테니까.


같은 둥근달을 보면서 누군가는 달빛만 바라보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얼굴을 찾을 것이다. 엄마도 그랬을까. 명절 밤, 모두가 잠든 뒤 창밖으로 달을 바라보며 외할머니를 생각했을까. 기차를 타고 먼 길을 달리던 날을 떠올렸을까. 다시는 갈 수 없는 그 길을 마음속으로 한 번 더 걸어보았을까.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은 달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지금 곁에 있는 엄마를 한 번 더 바라봤다. 언젠가 내가 저 달을 보며 엄마를 떠올리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릴 때처럼 토끼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둥근달 한가운데, 긴 귀를 세운 작은 토끼가 조용히 떡방아를 찧고 있을 것 같았다.


쿵.

쿵.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엄마가 바라보던 달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싶었다. 어쩌면 달빛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을 마음으로 한 번 더 만나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오늘 밤의 달도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곳일 것이다. 엄마가 오래 바라보았을 그 달을, 나는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창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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