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나를 ‘알밤’이라고 했을까

가시 속에 숨어 있던 엄마의 달콤한 말 한마디

by찬란한행운아

10월이 되니 엄마와 걷는 산바카라길에 밤송이가 하나둘 떨어져 있다. 가시에 싸인 밤송이 사이로 알맹이가 빠져나간 흔적도 보인다. 어떤 것은 속이 텅 비어 있고, 어떤 것은 아직 작은 알밤 하나를 품고 있다. 누군가 먼저 가져간 걸까, 아니면 청설모가 가져간 걸까.

빈 밤송이를 바라보다 문득 오래전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 참 알밤처럼 생겼어. 예쁘다는 말이야.”


엄마는 시장에서 깐 밤을 사 오는 날이면 가끔 내게 밤 하나를 먹여주었다. 껍질도 없고 떫은맛도 없는 동그랗고 매끈한 밤이었다. 엄마가 밤 하나를 내 입에 쏙 넣어주면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하나를 기다렸다.


평소 우리 엄마는 딸에게 예쁘다는 말을 잘하지 않았다. “우리 딸 예쁘다” 같은 말은 어쩐지 쑥스러워했다. 그래서인지 가끔 건네던 그 한마디가 어린 나에게는 꽤 특별했다. 밤이 맛있어서 기다린 것도 있었지만, 엄마가 어떤 말을 해줄지 은근히 기다렸던 것 같다.


우리 집 근처 야산에는 가을이면 밤나무가 많았다. 엄마는 예전에 나뭇가지에 달려 있던 밤송이가 갑자기 떨어져 눈을 맞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뒤로는 밤송이의 뾰족한 가시만 봐도 그때 일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좋아했던 것은 가시투성이 밤송이보다 그 안에서 나온 알밤이었다.


알밤은 참 묘하다. 겉을 둘러싸고 있던 가시를 벗겨내면 손바닥 위에 동그랗고 매끈한 알맹이가 남는다. 단단해 보이지만 한입 베어 물면 은근한 단맛이 퍼진다. 오래도록 가시 속에 숨어 있다가 가을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알밤이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가시가 생긴다. 상처를 받으면 마음을 닫기도 하고, 힘든 날에는 말이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이 남아 있다.


어쩌면 엄마가 내게 전하고 싶었던 것도 그런 것이었을까. 겉으로 조금 거칠어지더라도 속마음까지 모나게 만들지는 말라는 것. 사람에게 상처받더라도 나까지 다른 사람에게 가시를 세우며 살지는 말라는 것.


엄마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그저 시장에서 깐 밤을 사 오면 하나를 내 입에 넣어주고, 가끔 엉뚱한 말을 건넸을 뿐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짧은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아 있다.

엄마의 사랑은 어쩌면 늘 그런 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거창하게 사랑한다고 말하기보다 밥 한 숟갈을 더 얹어주고, 과일 하나를 깎아주고,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마음을 숨겨두는 것.


오늘도 엄마와 걷는 길에 빈 밤송이가 하나둘 보인다. 알맹이는 누군가 먼저 가져갔을 수도 있고, 청설모가 먹었을 수도 있다. 가시만 남은 밤송이를 한참 바라보다 보니 문득 어린 시절 엄마가 내 입에 넣어주던 달콤한 밤 하나가 생각난다.


그때는 그저 맛있는 간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작은 밤 하나에는 엄마가 딸을 바라보던 마음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엄마와 나란히 걷는다. 발끝에 밤송이 하나가 굴러와 멈춘다. 나는 잠시 걸음을 늦춘다. 뾰족한 가시 사이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때 그 안에 동그랗고 달콤한 알밤 하나가 들어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고, 마른 밤송이가 발밑에서 사각거린다.


가시는 바깥에 두고, 속은 둥글게. 어쩌면 엄마는 그 말을 알밤 한 알에 담아 내게 건네준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다시 엄마의 걸음에 맞춰 걷는다. 어린 시절의 그 한마디가 계절을 건너와 오늘의 내 마음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가을 산바카라길에 떨어진 밤송이처럼, 오래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 마음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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