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단감을 먹을 때면 이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에 ‘단감 탭댄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by찬란한행운아

가을이 오면 단감이 나온다. 마트에 들어서면 주황빛 단감이 가지런히 쌓여 있고, 단단한 껍질을 손끝으로 눌러보면 묵직한 탄력이 느껴진다. 나는 그 계절이 오면 자연스럽게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는 평소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식탁에 과일이 있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런데 단감만큼은 달랐다. 마트에서 단감이 보이면 걸음을 멈추고 하나씩 골라 들었다. 손끝으로 단단함을 확인하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러고는 꼭 말했다.

“나는 단감 귀신이야.”


엄마가 스스로 붙인 별명이었다. 그만큼 좋아했다. 하루에 두세 개씩 먹을 때도 있었다.

엄마는 단감을 자르지도 않았다. 통째로 들고 그대로 입으로 골인시켰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말했다.

“엄마, 이빨도 좋지 않은데 깎아서 먹어.”

그러면 엄마는 단감을 손에 쥔 채 웃으며 말했다.


“그냥 먹는 게 맛있어.”

정말 그랬다. 칼로 잘라 접시에 올려놓는 것보다 손에 쥔 채 바로 베어 먹는 것이 엄마에게는 더 맛있는 모양이었다.


단단한 껍질을 앞니로 깨물면 단감 특유의 경쾌한 소리가 났다. 단단했던 과육이 이 사이에서 부서지고, 달큼한 즙이 혀끝으로 퍼졌다. 시원하고 맑은 단맛이었다. 씹을수록 은은한 향이 코끝까지 올라왔다.


엄마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앞니가 먼저 단감을 깨물면 어금니가 뒤를 이어 과육을 부드럽게 으깨고, 혀는 남은 조각을 이쪽저쪽으로 옮겼다. 한쪽으로 몰렸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넘어갔다. 단감이 손에서 점점 작아질수록 엄마의 입안에서는 작은 움직임이 더 분주해졌다.


그런데 엄마에게는 아주 귀여운 습관이 하나 있었다. 변비를 유발한다며 단감 속 하얀 부분은 먹지 않았다. 입안에서 그 부분을 귀신같이 찾아내 쏙 빼놓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달콤한 과육만 골라 먹었다. 좋아하는 것은 끝까지 먹되, 싫은 것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 엄마의 방식이었다.


다 먹고 나면 손에는 껍질만 남고, 접시에는 씨 하나가 놓였다. 그렇게 깨끗하게 비워진 모습을 보면 엄마가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엄마의 입과 이가 추는 춤에 이름을 붙였다. ‘단감 탭댄스.’ 평소 음악이 나와도 몸 하나 움직이지 않는 엄마인데, 이것만큼은 입과 이가 제멋대로 춤을 췄다.


엄마는 그렇게 좋아하던 단감을 올가을부터 끊는다고 했다. 혈당이 걱정돼서 이제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는 한번 마음먹으면 정말 단호하다. 건강을 위해 콜라도 끊었고, 믹스커피도 끊었다. 끊겠다고 한 뒤로 나는 엄마가 콜라나 믹스커피를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드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좋아하던 것이라도 건강을 위해 내려놓을 줄 아는 엄마가 나는 참 멋지다.


그래서 이번에도 엄마는 마음먹은 대로 할 것이다.


마트에 단감이 가득 쌓여 있어도 이제 엄마는 그냥 지나친다. 예전 같으면 하나를 집어 들었을 손이 멈추지 않는다. 식탁 위에 놓여 있어도 손대지 않는다. 한때 그렇게 빨리 사라지던 것이 이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마트에서 단감을 볼 때마다 예전의 엄마를 떠올린다. 손에 단감을 꼭 쥐고, 칼도 없이 통째로 베어 먹던 모습. “깎아서 먹어”라는 내 말에 “그냥 먹는 게 맛있어” 하며 웃던 얼굴. 하얀 부분은 쏙 골라내면서도 맛있는 과육은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던 모습.


그때의 엄마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기억 속 엄마는 지금도 단감 하나를 손에 들고, 입과 이로 신나게 탭댄스를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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