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사람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날카로워질까

은행나무가 내게 알려준 마음의 거리

by찬란한행운아

버스 좌석에 앉아 창밖의 가로수로 줄지어 선 은행나무를 보았다. 노랗게 익은 은행이 가지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나무 아래에는 은행이 사람들의 발에 밟히지 않도록 그물을 쳐두었다.


그물을 보는 순간, 으레 밟았을 때 풍기던 그 지독한 냄새가 코끝에 맴도는 듯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어릴 적 등굣길은 마치 지뢰를 피하는 게임 같았다. 깔끔한 것을 좋아했던 내게 누군가 밟고 지나간 은행 냄새는 매일 아침 견디기 힘든 고역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 열매에서 왜 그렇게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되었다. 열매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자신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말 대신 냄새로 보내는 신호인 셈이다.


그 이야기를 알고 나니 문득 사람이 떠올랐다.


살다 보면 유난히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 별것 아닌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고, 조금만 가까워져도 날카로운 말을 내놓는 사람이다.


나도 그런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 ‘왜 저렇게까지 하지?’ 생각한 적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밀어내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도 차갑게 돌아오는 사람을 보면 나까지 괜히 작아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 역시 마음이 다쳤던 날에는 누군가에게 차갑게 굴었던 적이 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있었던 때였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짧은 대답으로 선을 긋고, 혼자 있고 싶어 했고, 누군가 조금만 가까이 다가와도 괜히 경계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도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세요.”


말로 꺼내지 못한 마음을 차가운 태도가 대신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은행나무도 마찬가지였을까.


우리가 맡기에는 지독한 냄새지만, 그것은 열매를 지키기 위한 나무의 방식이었다. 사람도 때로는 날카로운 말과 차가운 태도로 자신을 지킨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반갑지 않아서가 아니라, 또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행동을 이해하거나 받아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상처받은 이유가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줘도 되는 것은 아니니까.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지켜야 할 선이 필요하다. 나무 아래 그물을 설치해 은행이 사람들의 발에 밟히지 않도록 막는 것처럼, 사람 사이에도 서로 다치지 않기 위한 거리는 필요하다.


다만 그 거리를 두면서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싶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 때문에 저 사람은 저렇게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겉으로 드러난 날카로움만 보고 그 사람의 전부를 판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버스가 출발하고 창밖의 은행나무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노랗게 익은 은행과 나무 아래 설치된 그물도 점점 멀어졌다.


그날 이후 가을이면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생각한다.

누군가의 날카로움이 때로는 나를 밀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보내는 신호일 수도 있겠다고.


그리고 어쩌면 그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과 그 사람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가장 지독한 냄새가 어쩌면 가장 절박한 신호일 수도 있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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