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햇살을 닮은 꽃을 만나다.
앙증맞게 작은 예쁜 꽃이 날개를 활짝 폈다. 분홍색도 아니고 보라색도 아닌, 묘한 빛깔의 송엽국 한송이가 작은 화분에서 환한 미소를 내게 보낸다.
고맙고 예쁜 마음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따스하고 다정한 눈길로 미소에 답한다.
“이렇게 살아줘서 고마워. 여린 줄기로 낯선 곳에 정착하느라 힘들었지?
난 네가 온 힘으로 버텨내는 삶의 의지를 숨죽이며 지켜보았단다.”
새끼손가락만 한 송엽국 줄기를 처음 만난 곳은
늦 봄 가족과 함께한 묵호 여행 논골마을에서였다.
곳곳에 무리 지어 활짝 핀 꽃의 빛깔이 어찌나 화사하고 고운지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덩달아 내 마음도 환하고 고운 빛깔로 물드는 것 같다.
묵호의 짙푸른 바다 빛과 너무 잘 어울리는 분홍 보랏빛 꽃을 그때 처음 보았다. 무슨 꽃인지 사진을 찍어 챗 지피티에게 물어보니, 다육이과에 속하는 송엽국인데 솔잎 채송화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어쩜, 꽃도 예쁜데 이름까지 예쁘다.
논골 마을 가는 곳곳마다 온통 송엽국 천지다. 꽃더미에 정신을 빼앗겨 넘어질세라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는데 무리 진 꽃옆에 누군가에게 밟힌 한 줄기 송엽국이 눈에 뜨였다.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집어 올려 살펴보았다.
꽃은 이미 뭉그러져 떨어졌지만 가느다란 줄기는 아직도 수분이 남아 있다. 살려볼까 하는 마음에 종이컵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정겹고 예쁜 논골마을을 닮은 송엽국의 화사함을 우리 집에 옮겨놓고 싶었다.
집에 오자마자 작은 토분 하나를 꺼냈다. 흙을 담고 꺼져가는 생명을 살린다는 마음으로 줄기를 정성껏 심었다.
“힘내. 넌 혼자가 아니야. 내가 돌봐 줄게.”
손끝의 온기를 전해 주며 속삮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남편이 “살것 같지 않으니 그냥 버려. 꽃이 이렇게 많은데 뭐 하러 다 죽은 건 심느라 애를 써?”하며 메마른 목소리로 한 마디 한다.
남녀의 차이일까? 두 사람의 차이일까?
아무튼 남편과 나의 성향은 하늘과 땅 차이다.
“아직 살아있는 생명이야. 내가 잘 키워서 꽃을 피울 거야.”
내 목소리의 톤이 약간 올라갔다.
며칠 동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시들한 작은 줄기가 몸부림을 치고 있다. 나는 매일 손 끝으로 온기를 전하며 응원하였다. 며칠 후 차차 여린 줄기에 힘이 들어가더니 꼿꼿이 제 힘으로 서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뿌리를 내렸는지 줄기 끝에 또 다른 가지 하나를 뽑아내고 있었다.
애정 어린 시선은 햇살이 되고, 손끝의 온기는 물기가 되었다.
기특하게도 어린 줄기는 꽃망울을 두 개나 맺더니, 어느 날 아침 그중 한 망울에서 분홍 보라빛깔의 어여쁜 꽃을 활짝 피웠다. 반가운 마음에 화분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며칠 뒤 찬란하게 피워내던 분홍 보랏빛 작은 꽃송이가 제 몫을 다하고 서서히 시들어간다. 대신 옆에 있던 꽃망울이 앙 다문 입술을 살그머니 벌리고 있다.
자연의 모든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새로 싹트는 생명과 시들어 가는 생명이 공존하는 곳. 우주의 질서에 엄숙함이 묻어있다.
밟힌 한 줄기 작고 보잘것없는 생명체로도 회생과 퇴색의 질서가 있건만, 그 질서 앞에 정갈하지 못한 내 삶이 조금은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