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은 지금 백두산 여행 중에 있다.
나만 안 갔다. 아니 못 간 것이다.
영혼의 단짝 친구 5명 중 나만 빠진 여행이다. 백두산은 내가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여서,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었지만 망설이다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못 가” 결정은 했지만 내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이번에 가격도 싸고 좋은 기회니 너도 같이 가자. 너도 휴식이 필요하잖아.”
친구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나를 설득한다.
“안돼, 두어 달 후에 미국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또 백두산을 간다고 하겠니?"
이번엔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남편한테 얘기하면 다녀오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픈 남편을 두고 차마 백두산 여행까지 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작년에 동생들과 미국에 있는 언니를 만나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남편이 입원하는 바람에 계획이 어그러졌다. 다행히 남편의 건강은 어느 정도 회복 되어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으나 한번 잃어버린 건강은, 장거리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 여행도 쉽지는 않게 되어버렸다.
남편이 아프다 보니 내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내가 아무리 건강해서 세상 어느 곳 이든 다 여행을 할 수 있다 해도, 나만 건강해서 될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남편을 혼자 두고 며칠씩 집을 비울 수가 없어, 도시집도 잘 못 가고 시골집에만 있다 보니 우울감이 찾아왔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단짝 친구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나를 데리고 백두산에 가서 답답한 내 마음을 뻥 뚫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어그러진 미국 여행은 더 이상 꿈도꾸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의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언니~ 미국에 가자. 미국 큰언니를 언제 또 보겠어? 우리 나이를 생각해 봐. 우리도 점점 장거리 여행이 쉽지 않을 거야.”
동생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을 일깨워 주었다.
“그래. 맞아. 우리 자매들 이제 나이가 적지 않은데 다 같이 건강할 때 한 번이라도 더 만나야지 항상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을 거야.”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들면서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간 집을 비워야 하는 미국 여행 계획을 남편에게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남편은 흔쾌히 다녀오라고 한다.
“하루가 아니라 한 달이라고!! 나 없으면 밥은 어떻게 할 건데?!”
밥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는 남편이 얄미워 내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거야.” 남편의 말끝이 흐려졌다. 억지로 부리는 허세에 맘이 편치 않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하고 남편을 원망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대구에 살고 있는 시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잠시 휴직 중에 있는 시동생은 밥도 잘하고 집안일을 잘한다. 형을 잘 돌봐줄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한다. 돌덩이 같이 무거웠던 마음이 날아갈 듯하다. 아무 걱정 없이 자매들끼리 밤새 못다 한 얘기도 하고 오랜만에 조카들과 함께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여행할 생각에 너무 감격스러워, 그만 바보같이... 친구들과의 백두산 여행은 쿨하게 포기했다.
띠링~띠링~ 친구들이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며 사진을 보내준다. 모두들 환하고 행복한 얼굴이다. 나도 함께 했으면 좋았을걸… 친구들이 너무 부럽다.
심술이 나서 아무것도 모르고 TV를 보고 있는 남편을 살짝 흘겨보며 나 혼자 중얼거렸다. “에잇~ 나도 갈걸 괜히 포기했나?”
띠리리링~~ 이번엔 옆집 지인 전화다.
“언니, 나 친구들이랑 몽골 여행 갈 건데 나만 짝꿍이 없어. 언니 몽골 가고 싶댔잖아~ 나랑 같이 가자. 형부는 울 남편이 돌봐드릴거야.”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TV에서 눈을 떼지 않고 피식 웃으며 한마디 한다.
“자꾸 나 째려보지 말고 몽골 다녀와~”
“으응, 그럼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