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 위에서 먹는 상추 한 쌈

by산너머 작은집

요즘은 텃밭에 상추가 넘쳐난다. 해마다 다 소비하지 못하는 상추를 올해는 맘먹고 조금만 심었는데, 작년 씨앗이 떨어져 제 멋대로 나온 상추까지 합치니 올해도 상추 풍년이다.


아무것도 주지 않고 그저 물만 주었는데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비라도 온 다음 날은 더욱 싱싱하고 부쩍 커져 있다. 배추포기만 하게 커진 상추를 한 움큼씩 뜯으니 금세 커다란 바구니에 가득하다.


한 바구니 가득 딴 상추와 쑥갓을 수돗가에 가서 큰 통에 넣고 지하수를 콸콸 틀어 살살 흔들어 씻어준다. 장독대에서 고추장 한 숟갈 듬뿍 떠서 시원한 마당 평상 위로 가져갔다. 상 위에 놓인 상추 한 바구니와 듬뿍 담긴 고추장만으로도 점심상이 푸짐하다.


상추를 여러 겹 싸서 한입 가득 넣고 먹는 상추쌈은, 평생 마트 상추만 먹던 우리에게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햇볕을 많이 받아 향긋한 상추 특유의 향과 연하면서도 아삭거리는 식감은 먹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맛이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을 때 손수 키우신 상추를 몇 번 갖다 주신 적이 있었다. 변두리 공터에 작은 땅을 일궈 몇 가지 채소를 키우셨는데 그때 먹어 본 솎음 상추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내가 상추를 직접 키워 먹으니, 그때의 맛을 다시 느낄 수 있을 법한데 아버지께서 키운 그 솎음 상추 맛을 다시 느껴보지 못했다.


“에고~ 우리 집 상추가 많아서 뜯어가라고 할랬더니 이 집도 상추가 넘쳐나네요” 하며 이웃 아주머니가 우리 집 평상 위 밥상을 보고 마구 웃는다. “네, 우리 집 상추도 많아서 다 먹지 못해요. 어디 나누어 줄 곳이 있는지 생각해 보고 좀 나눠줘야겠어요”


면사무소 옆에는 내가 자주 가는 자그마하고 아늑한 도서관이 있다. 바카라을 빌리러 종종 가기도 하지만 컴퓨터나 프린트를 쓰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그곳에 젊은 사서 선생님이 있는데, 인사하자마자 일단 호구 조사부터 들어갔다. “선생님 혹시 텃밭 농사지어요?”하고 물어보니 “아니요. 저는 읍내에 살아서 텃밭이 없어요” “그럼, 어머니가 요리해 주세요?” 하니 의아한 듯 쳐다보며 “네” 라고 머뭇거리며 대답한다.


나는 웃으며 왜 호구 조사를 했는지 이실직고했다. “우리 집에 농작물이 많은데 나눠주고 싶어도 요즘 젊은이들은 완성된 반찬 아니면 재료 주는 것 싫어한다고 해서, 어머니가 요리 해 주시는지 물어본 거예요” 하니 사서 선생님은 활짝 웃으며 “어머,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저희 어머니가 요리 다 해 주세요. 재료 가져가면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실 거예요” 한다. “알았어요. 이제 호박이랑 가지, 고추 등 많이 나오는데 앞으로 자주 갖다 줄게요.”


재작년에는 가지가 많이 열리더니, 작년 여름에는 유난히 호박이 많이 열렸다. 따도 따도 끝이 없이 열려서 많이 나누어 먹었다. 올해는 또 어떤 작물이 주렁주렁 열릴지 기대된다.


회초리같이 작은 묘목을 사다 심은 앵두와 오디가 몇 년이 지나니 올해는 제법 튼실한 열매를 맺었다. 상추와 쑥갓을 뜯고 앵두와 오디도 한소끔 씩 따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마침, 희망 도서가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은 터라 발걸음도 가벼웠다.


“선생님~ 제가 신청한 희망 도서 나왔다고 해서 가지러 왔어요”하며 가져간 보따리를 내려놓자 사서 선생님이 반색한다. “아휴 어떻게 해요? 저는 아무것도 해드린 것도 없는데 이렇게 받기만 해서 어쩌죠?”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이렇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데요. 애써 농사지은 것 버리게 될까 봐 걱정하였는데, 나눠주는 기쁨까지 덤으로 얻잖아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진심으로 말했다.


시골 생활 5년 차 이제는 초보 농부티는 벗어났다. 애써 키운 농작물을 하나라도 아까워 허투루 버릴 수가 없다. 봄에는 지천에 나물이 넘쳐나고 여름과 가을에는 내가 키운 작물들이 넘쳐난다. 내가 조금만 수고로우면 친구들이나 지인들하고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친구들은 값비싼 선물 받은 것보다 더 좋아하고 행복해하니 덩달아 나까지 행복하다.


오늘 저녁은 이웃들과 평상에 둘러앉아 커다란 소쿠리 가득 상추를 뜯어 삼겹살 파티나 해야겠다.









수요일 연재
이전 07화깊은 산골에도 택배는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