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4일 차
바로 전날 쇼핑해 온 셔츠를 아빠가 꺼내 들었다. 태국 하면 유명한 코끼리 바지. 그 그림이 들어간 옷을 아빠는 세트로 사셨다. 나 역시 코끼리가 그려진 원피스를 입었다. 부녀의 코끼리커플룩이 된 상태로 외출을 나섰다. 태국 느낌을 내겠다고 차려입은 것이지만, 실상은 ‘우리 관광객입니다.’를 광고하는 셈이긴 했다. 오늘은 여유롭게 쇼핑몰이나 가자고 나섰다.
“야시장 스타일로 만들어진 곳이야.”
나는 아이콘시암에 있는 쑥시암으로 아빠를 안내했다. 구경할 것도 많고 사진 찍을 것도 많은 곳이라서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아빠가 여행 출발 전에 메모해 놓은 메뉴를 파는 매장이 이곳에 있었다. 오늘 점심은 거기서 먹을 예정이었다.
“엄마랑 전에 여기서 가방 왕창 샀어. 이모들꺼까지.”
쇼핑몰을 돌다가 Naraya 매장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직진하였다. 아빠에게 살짝 매장을 소개한다는 핑계로 나는 또 엄마와 내가 쓸 가방을 하나씩 골랐다. 엄마와 원격으로 의논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는데, 그걸 기다리는 동안 아빠는 그러려니 하고 기다리셨다. 그러다가 아빠도 손수건 하나를 고르셨다. 우리 가족은 모두가 손수건을 사용하는데, 사실 아빠의 영향이 컸다. 아빠는 절대 어딜 가든 손수건을 빠뜨리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나는 덜렁이라 잘 잊어먹지만 말이다. 간단하게 쇼핑을 마치고 나온 부녀는 갈증이 났다.
“코코넛 마실까?”
코코넛을 그대로 마실 수 있게 파는 매장이 있었다. 그래도 동남아에 왔는데 코코넛주스를 한 잔 마셔야지 싶어서 아예 통째로 잘라주는 것을 구매했다. 아빠의 머리만큼 커다란 코코넛이었는데, 기대에 찼던 것에 비하면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래도 이런 여행지에서 즐기는 맛 중에 하나니까. 코코넛으로 목을 축인 다음에 우리는 위층 식당가로 갔다. 쇼핑몰 위로 올라가서 전망을 구경하기로 했다. 원래 아이콘시암의 스타벅스로 올라가면 발코니에서 짜오프라야강을 내려다보며 전망을 즐길 수가 있다. 그런데 밖에 비가 엄청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비로 인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매장 안쪽이 차단되어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서 나가도 풍경을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비를 기다릴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지 하고 한 걸음 물러나 이번엔 아빠가 드시고 싶다는 메뉴가 있다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팟키마오가 메뉴에 없는데?”
분명 인터넷에선 이 집에서 팔 거라고 했는데, 아무리 메뉴판을 확인해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직원을 붙잡고 그 메뉴가 없는지 물었더니,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그 사이에 메뉴가 바뀐 모양이었다. 아빠는 어쩔 수 없지 하셨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거 먹으려고 온 건데, 이러면 의미가 없지. 그냥 가자.”
별거 아니라고 해도 아빠가 드시고 싶어 하는 것을 드시게 하고 싶었다. 방콕에서의 일정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닌데 아빠가 한국에서부터 메모해 온 요리를 빠뜨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식사를 포기하고 우리는 다시 쇼핑몰 아래로 내려왔다. 당장 배가 고프신 게 아니라면, 차라리 숙소로 배달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숙소로 가기 위해 다시 매장을 내려오고 있는데, 눈앞에 원두를 잔뜩 파는 매장이 들어왔다.
“여기 커피 많다.”
아빠는 커피를 많이 좋아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걸음은 자연히 멈췄다. 매장엔 다양한 종류의 원두를 파는 것뿐만 아니라 안쪽에서 주문도 가능한 카페였는데, 우리는 모닝커피 겸 한 잔 마시고 가기로 했다. 조금 특별한 커피를 주문할 수 있다면 그것이 아빠의 기분을 좋게 할 것 같았다.
“맛이 어떻습니까?”
“기가 막힙니다~!”
커피는 둥근 유리병에 담아져서 나왔는데, 유리잔도 살짝 얼려 있고 그 안에 크고 둥근 얼음이 들어 있었다. 마치 위스키라도 따라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 났다. 아빠 역시 진을 마시는 것 같다며 커피를 드셨다. 아빠가 커피를 드시는 동안 딸은 바빴다. 열심히 검색을 해서 팟키마오를 파는 매장을 찾아야 했다. 그렇다고 맛이 없는 집을 고르면 안 되니까 검색에 검색을 해야 했다. 숙소에 돌아갈 타이밍에 맞춰서 배달이 도착할 수 있도록 시간도 생각해야 했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원단이 좋네.”
“거기 원단 좋아.”
아빠가 아까 산 손수건을 뜯어보시며 말했다. 나는 잘 사신 거라고 옆에서 바람을 넣었다. 아빠의 하루가 빠짐없이 즐거우시길 바랐다. 그러나 팟키마오를 찾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태국어로 팟키마오를 검색 하는데, 배달앱의 자체 번역이 한국어로 바뀌면서 더 헷갈리게 했다. 번역기와 배달앱을 번갈아 봐 가면서 거진 십 분은 걸려서 겨우겨우 팟키마오 파는 매장을 찾았다. 우리가 숙소에 도착할 시간을 고려해서 배달 주문을 하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향했다.
“그래 이 넓은 면.”
드디어 아빠가 원하던 ‘팟키마오’. 제대로 찾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가 메뉴를 보더니 TV에서 본 것과 같다고 하셨다. 그럼 된 거다 싶었다. 이렇게라도 드시고 싶어 하신 것을 드시게 하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조금 늦은 점심을 그렇게 먹고는 남은 오후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아빠는 낮잠을 조금 주무셨고, 나도 내 방에서 나만의 시간을 조금 가졌다. 그리고 다시 해가 질 시간이 되어서야 우리는 집에서 나왔다.
사판탁신역, 낚시 둘째 날.
어제와 같은 장소로 낚시를 나왔다. 아직 사람들이 없어서 빈 테이블을 우리가 먼저 선점하고 앉을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제 보았던 낚시꾼과 그의 여자 친구도 나와 있었다. 두 번째 보는 거라고 서로 가볍게 인사도 나눴다. 그와 그의 여자친구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처음엔 아빠와 내가 둘을 부녀인가 부부인가 남매인가 온갖 추측을 하긴 했었다. 물론 명확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둘을 커플이겠거니 결론 내리긴 했다.
“여기 같이 쓰라 그래.”
아빠가 테이블 한쪽의 공간을 비우고는 그 여자친구분이 와서 앉도록 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도 이미 돗자리 준비를 해 온 게 있어서 자신들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낚시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다. 이미 아빠의 낚싯대는 몇 번의 허탕을 친 후였다.
“또 걸린 거 아니야?”
큰 강과 수로가 만나는 지점이라서 낚싯줄이 잘 걸리고 있었기 때문에 또 그런 줄 알았다. 아빠도 그런가 싶어 끌어올리는데, ‘빼꼼’ 물고기의 머리가 보였다. 그러나 아빠의 낚싯대로 쉽게 들어 올려지지 않았다. 어딘가 뭐에 걸린 듯싶었다. 문제는 우리는 뜰채가 없었고, 아빠는 조심조심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오오!”
“올라왔다!”
방콕 짜오프라야강에서 아빠가 드디어 물고기를 잡았다. 나는 액션캠과 핸드폰 카메라까지 들고 아빠의 낚시를 열심히 기록했다. 긴 수염이 달린 물고기는 아빠 말로는 메기 종류라고 하셨다. 아빠가 하루 만에 손맛을 보셔서 너무 다행이었다. 아빠의 낚시를 어렵게 했던 것은 강바닥에 끊어져 있었던 버려진 낚싯줄이었다. 아빠는 그 낚싯바늘과 엉킨 줄을 제거하셨다. 애초에 우리가 물고기를 잡아먹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방생했다. 아빠는 잠시간 내가 찍은 사진을 친구분들에게 전송하였다.
“나더러 강태공은 강태공이래. 태국까지 가서 물고기를 잡는다고.”
아빠가 소리 내어 웃으셨다. 특별한 관광이 없었던 하루였는데도 그 물고기 한 마리가 방콕에서의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