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야경 좋다

다시 방콕 - 방콕 2일 차

by일화

깐짜나부리에서 버스로 방콕에 돌아온 우리는 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방콕에서의 남은 일정은 에어비앤비로 했는데,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장기 여행이니만큼 현지 가옥에서 지내는 체험을 해보고 싶었고, 간단하게 조리를 하거나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 편한 선택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장기 여행으로 투어가이드의 심적 피로 방지도 목적에 있었다. 아빠와 단둘이 떠난 여행인 데다 그 기간이 길어서 분명히 나의 피로도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었다. 아빠와 아무리 잘 지내는 딸이라고 해도 24시간 붙어 있는 걸 3주 동안이나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다고 호텔방을 두 개씩 잡을 수는 없으니, 방을 여러 개 이용할 수 있는 에어비앤비를 택한 것이다. 아빠와의 거리 두기가 가능한 시간이 일정 중 조금이라도 있어야 내가 긴 여행에 지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우리가 숙소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거의 9시였다. 장시간의 버스 이동은 상당히 피로했는데, 씻고 정리를 다 하고 나서 혼자 방에 누우니 그 노곤함이 싹 풀렸다. 아빠는 또 아빠대로 본인만의 시간을 보내시면서 새로운 방콕의 아침을 맞았다.


20251030_213024.jpg에어비앤비 숙소-현지 구옥이어서 커튼을 열면 바로 도로가 보인다.



아침이 되자, 배송을 맡겼던 우리의 캐리어가 도착했다. 아빠는 안전하게 도착한 짐을 신기하게 보셨다. 짐을 풀어 정리를 하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빨래 가방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우리의 숙소는 ‘사판탁신’ 역이 있는 지역이었는데, 이곳은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지역이라 아빠는 처음과 다른 방콕의 모습을 보실 수 있었다. 거리에 가득한 상점들과 관광객들을 지나서, 빨래방에 들어갔다. 지난 며칠간의 빨래를 세탁기에 맡기고, 유명한 족발 덮밥 집으로 향했다. 점심으로 먹을 족발 덮밥을 포장하고 돌아오며 빨래도 찾았다. 숙소로 여유 있게 돌아와 점심을 먹으니 하루 만에 꼭 방콕 현지인이 된 것만 같았다. 느긋하게 아빠는 낮잠을 잠시 주무셨다. 여행 초반은 부지런히 다니느라 바빴지만, 이제는 여유로운 시간들을 보낼 예정이었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왔다. ‘사판탁신’ 역 주변에 숙소를 잡은 이유 중 하나는 이곳에 선착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방콕을 가로지르는 짜오프라야강을 구경하며 식사를 하는 유람선은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관광코스 중에 하나였다. 오늘 우리의 일정은 딱 그거 하나였다. 많은 사람들이 보통은 저녁 8시경에 타는 디너크루즈를 타지만, 강에서 해지는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과 맥주가 서비스가 된다는 점 때문에 나는 ‘선셋크루즈’를 예약했다. 해당 배를 타려면 ‘아시안티크’로 향해야 했고, 사판탁신에 있는 선착장엔 바로 그곳으로 가는 셔틀 보트가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는 동안 아빠는 강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지셨다. 워낙에 강을 좋아하시기도 했지만, 많은 배들이 오가는 곳이다 보니 배 구경을 하시는 것도 즐거우신 듯했다. 아니 어쩌면 그냥 이 여행이 즐거우신 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시안티크에 도착한 다음 나는 크루즈 티켓을 찾아와야 해서, 잠시 아빠를 근처 벤치에 앉아 기다리시게 했다. 발품을 팔아 뛰어다니는 것은 투어가이드의 몫이고, 아빠는 강풍경을 구경하며 쉬시는 관광객의 몫을 하면 되었다. 부지런히 티켓을 찾아온 다음에는 배를 타기 전까지 잠시 아빠와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KakaoTalk_20261017_195708255.jpg조형물과 사진찍으며 장난치는 아빠 - 뒤에서 도와주고 있는 거라고 하심



크루즈 탑승시간이 가까워지자 빗방울이 조금 떨어졌다. 그 때문에 차양막 같은 것이 내려져 있어서 강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까 걱정했다. 우리 좌석은 풍경이 바로 보이는 곳은 아니었고, 크루즈 공연팀이 공연하는 무대 바로 옆이었다. 보통 이 크루즈는 신나게 음악을 연주하는데, 우리가 간 시기는 국상 중이었기 때문에 조금 느린 음악을 연주한다고 했다. 이 크루즈를 예약할 때, 뷔페 식사와 맥주 무한 리필도 중요했지만 사실 공연은 더더 중요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빠의 취향에 딱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국상으로 인해 아예 연주가 없을까 걱정했던 나는 라이브 공연은 진행된다는 사실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가 출발할 무렵에는 다행히 비가 그쳐서 직원들이 차양막을 올렸다. 덕분에 우리는 바깥 풍경도 즐길 수가 있었다.


“드셔. 다 찍어놨어.”


뷔페에서 음식을 떠 오고도 아빠는 바로 식사를 하지 못하셨다. 식사보다 촬영에 빠지신 탓이었다. 색소폰 연주 다음으로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식사를 시작한 다음에도 중간에 한국 가요를 부르기 시작하니 아빠는 다시 또 핸드폰을 드셨다. 적당한 날씨와 아름다운 강 풍경 그리고 라이브 음악이 술 좋아하는 부녀의 술맛을 돋았다.


“야경을 봐야지. 이게 진짜인데.”

“어우 멋있다.”


짜오프라야강에 해가 지고, 우리는 배 앞쪽 공간으로 나왔다. 강변에 있는 건물들이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는 야경이 이 밤의 낭만을 충족했다.


“잘 먹고, 야경 좋다~”


KakaoTalk_20261017_200022826.jpg촬영 중인 아빠



아빠는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시며 말씀하셨다. 아빠의 핸드폰에 촬영된 그 사진과 영상들은 곧 다른 친구분들에게 전송될 예정이었다. 좋은 구경을 하고 있다는 자랑, 딸과 함께 놀러 나왔다는 자랑이 될 거였는데, 특히 이번 여행은 일정도 긴 탓에 친구분들을 꽤나 길게 괴롭힐 것 같았다. 뒤늦게나마 우리 아빠의 기쁨으로 인해 고통받으셨을 친구분들 아니 그분들의 자녀분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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