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년에 나 퇴사할 거야. 그리고 두 분 각각 환갑, 칠순 기념해서 여행 가려고!”
명분은 충분했다. 엄마는 환갑이 되는 해였고, 아빠는 칠순이 되는 해였으니까. 이미 아빠 환갑에 일본 여행을 기획했던 적이 있어서 엄마 환갑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물론 나는 이미 엄마랑 뻔질나게 놀러 다니긴 했다. 반면 아빠의 여권에 찍힌 도장은 일본이 전부였다. 그리고 나는 몇 년 전부터 퇴사 결심을 하고 있었다. 퇴사를 하고 새 출발 하기 전에 시간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여행을 다녀야겠다는 계산을 했다. 문제는 나는 외동딸이었고, 그 외동딸의 숙명은 오롯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열심히 경비로 천만 원 비축까지 끝낸 후에 나는 그렇게 선포했다. 여행을 가자고.
"그래라."
아빠의 반응은 조금 시큰둥하게까지 느껴졌다. 예상한 바였다. 어디 가자는 제안에 아빠가 먼저 신이 나서 떠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여행지에 대한 의견도 아빠가 먼저 내지 않을 것을 알았다.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으면 아빠는 '너 가고 싶은 대로 가.'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아빠의 환갑 때 일본 여행을 갔던 것도 사실상 아빠의 의견이라기보다는 전적으로 내 결정이었다. 그래서 아빠와의 여행지는 '태국'으로 내 멋대로 정해버렸다. 우선 내가 방콕을 몇 번 다녀와서 여행 난도가 높지 않았고, 멀리 떠나는 엄마와의 여행과 달리 아빠와의 여행은 더 긴 기간이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개인적인 일정만 아니었다면, 한달살이를 시도했을 거다.
"아빠랑은 그래서 태국 가기로 했어. 한 3주 정도?"
"아빠랑? 단 둘이? 대단하다."
나의 여행 계획을 들었을 때, 주변에선 대번에 저런 반응을 보였다. 부녀 단 둘이 떠나는 여행. 심지어 해외로 그것도 3주나. 물론 그것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또 그렇게 어렵다고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아빠와의 여행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증언에 의하면, 꼬마이던 나에게 주말에 아빠 따라 낚시를 갈 것인지, 엄마를 따라 백화점에 갈 것인지를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아빠 따라간다고 했던 아빠껌딱지였다. 아빠의 환갑에 일주일간 일본 여행을 했고, 국내도 몇 번 다녀와 봤으니 여행자체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다만...
"네가 알아서 해."
아빠가 나와의 여행에서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완벽한 맞춤형 일정을 짜야했다. 딸랑구 투어 가이드의 또 다른 미션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태국 낚시 규정', '방콕 낚시터', '낚시'... 그때부터 나는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하고, gpt까지 동원해서 태국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빠의 가장 큰 취미 중 하나가 '낚시'였고, 때문에 우리 여행엔 낚시를 뺄 수 없었다. 애초에 내가 태국으로 여행지를 결정한 이유 중 하나도 바다도 있고 강도 있는 나라라는 점이었다. 어디선가는 낚시를 할 수 있겠지.
"나 구글맵에 온갖 낚시 관련 다 저장했어."
친구에게 하소연하듯이 이야기하면서 내 구글맵을 보여주었다. 유튜브 영상으로 방콕에서 낚시하는 것을 찾아 아빠에게 보여드리기도 했다.
"저런 낚시터가 있데, 괜찮겠지?"
"채비를 해야겠네."
사실 아빠가 낚싯대가 어쩌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기억은커녕 알아듣지도 못했다. 어쨌든 낚시가 가능할 거란 이야기는 아빠에게 좋은 정보였고, 아빠가 의욕적으로 여행준비를 하실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후로도 나는 태국 관련 여행 유튜브와 TV프로그램들을 열심히 찾아봤다. 그중에서 괜찮다 싶은 것을 아빠에게 보여드리고 매번 반응을 살펴야 했다. 흥미로워하시는지, 관심이 있으신지, 별로라고 생각하시는지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그렇게 여행 일정표를 짰다. 엄마와의 여행은 디테일이 중요했다면, 아빠와의 여행은 여유가 중요했다. 빡빡하게 짜놓고 스케줄대로 다니자고 하면 피곤해하실 것을 알기 때문에 적당히 굵직하게 틀을 잡아두었다. 핵심 도시 3곳과 숙소와 이동동선만 잡아 두고 세부일정은 많이 열어둔 상태로 아빠에게 일정 보고를 마쳤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금 그때의 기록을 확인해 보니, 엄마에게 일정 브리핑을 한 총시간은 23분인데 반해 아빠에게 일정 브리핑을 한 시간은 14분이었다. 심지어 그것도 아빠는 대부분 호응하시는 말 몇 마디가 끝이었고 나 혼자 떠들었다.
딸랑구투어는 그렇게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