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을러서 급했던 사람
단체 이야기방, 한 친구가 링크를 올린다. 연애할 때 자신이 어떤 성격인지 알아보는. 너 불안형이야 회피형이야. 흔히 이렇게들 묻지. 정식 명칭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 그거. 한 끗 때문일까. 대분류를 직접 꺼내면 어감이 확 달라진다. 애착유형. 괜스레 피스타치오 껍데기 같고 학술적이다.
깊은 수심으로 가지 않는 한, 양자택일로 그치는 이유로 본다. 반응 없어서 두려우냐. 반응 잦아서 성가시냐. 이런 ‘택 1’ 경우가 아닌. 각 잡고 파고든 경우를 못 봤다. 본인 역시다. 다섯도 아니고 세 손가락은 됐나. 간혹 안정형을 동경하며 대화를 매듭짓기. 다른 마무리라 하면 이 정도뿐이지.
쓰고 있는 자신은 이렇다. 라는 내용을 풀기 전 찾아본다. 내가 몰랐던 사항이 또 있는지. 네 가지로 유형이 나뉜단다. 정말 있네. 불안 회피 안정. 나머지 하나는 공포회피 되시겠다. 쓰자마자 빨간 밑줄이 나타나는데 퍽 거슬린다. 그 분야 내에서 합성어로 정의하는데. 이 기기는 그 사실을 외면한다. 다른 명칭으로 혼란형이 나온다. 그래 이걸로 적자.
아니 얘도 그 밑줄이 나온다고. 이러면 안 나오겠지 하고 썼는데. 구조 문제가 아니었다. 기기마저 얼마나 최악으로 봤으면. 혈서를 쓰면서까지 ‘백스페이스’ 누르라고 안간힘을 썼을까. 뒤로 하고 읽어보니 기계 놈 마음을 좀 알겠다. 가히 환장할 조합이라 싫어할 만하다. 회피 앞에 붙은 살. 공포. 그게 복선이었다.
애정을 계속 갈망하여 상대에게 집착하려 한다. 동시에 상대를 믿기 힘들어 스스로 거리 둔다. 하나만 못하는. 머리는 하고 싶지만 몸이 따르지 않는. 그 자신도 얼마나 야속할까. 상황 개선 측면에서 비춰도 해답은 여전하다. 없지. 각성을 직접이 아닌 상대에 의한다. 가정을 해보자. 불안형은 제공하면 된다. 유기당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육안으로도 느껴지는 행동. 완화는 아니어도 순간이나마 악화는 멈추니까.
회피형은 여기서 타이레놀 먹고 싶어진다. 상대가 햇볕을 비추든 실온에 방치하든. 물리적 심리적 간격을 결정하는 존재. 결국 회피 당사자라. 그가 꿈틀대지 않으면 무소용이다. 하나 또 공포회피란다. 이건 제주도에서 빌린 자동차 바퀴의 공기압이다. 언제 터져도 안 이상하지. 공포 없는 회피는 악화라도 안 된다. 미동이 없으므로 그게 꿈쩍도 안 할 텐데. 혼란한 이놈아는 섭리를 거스른다.
존재해선 안 될 자가면역질환. 내게로 향하는 상처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비례한다. 그게 커지면 관계 진전 도중 우려될 상처를 직접 받는다. 더군다나 우려‘될’이다. 저런 선급 결제가 어딨나. 아니 먼저라는 표현마저 확실치 않다. 어음일지도 모르지. 그때가 되면 나 상처 받을게요. 이리 약속하고 우선 상처를 가져가는 모습. 진짜 이런 유가증권이 어딨나. 혼란하다 혼란해. 쓴이가 내밀 수 있는 성의. 위로밖에 없다.
필자는 유동형이다. 미지의 영역. 제5의 영역. 아니고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뜻이다. 인간은 갈대라는 신조에 충실하지. 초기에는 불안하고 후기에는 회피하고 싶다. 진전의 중흥기에는 떨리고 말기로 갈수록 귀찮아진다. 그래. 이기적이지. 적자마자 불성실로 미화할까 했다. 그나마 도의적으로 보이고픈 가식 욕구에.
됐다. 난 귀찮음이 맞다. 미룬이가 아니다. 답장 시작이 제일 무섭지도 않고. 내용이 완벽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미련이 줄었다. 혹은 여유가 생겼다 할까. 확실히 본인은 성급으로 차 있었다. 언제 작업이 완료될까. 답장받을까. 장소에 도착할까. 이들을 적으며 회상하니 일종의 모순이다. 게을러서 급하다. 얼핏 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근데 이 말 대로다. 의자 방석에 허리를 뉜 채로 언제 끝내지. 하던 일 내팽개치고 언제 오지. 2시간 거리를 약속 시간 110분 전에 출발하고 언제 가지. 자기모순의 희극이요. 관객의 웃음은 참이 아닌 비다. 적을수록 내는 혼란형인가 하는 혼란에 빠진다. 완성에 달하려는 욕구가 커지면 되려 그것에 멀어지니. 위에 나열한 모습들 아닌가.
애착유형은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것은 집안일, 운동, 과제. 작업 모두에 대입할 수 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본인이 접하는 모든 대상을 어찌 다룰지. 우리가 언급해 왔던 그 개념은 미시적이다. 무언가를 대하는 마음. 괜스레 자기개발서 어감이라 쓰기 싫은데. 마땅한 표현이 안 생긴다.
하여튼 저리 포괄로 다룰 수 있지 않을까. 나이 먹는 시간을 짚어보니 고개를 움직이게 된다. 세월 때문인지. 힘이 빠져 촉박할 기운도 줄었다. 거기서 비롯된 느긋한 태도. 배움 하나를 제공한다.
회피형이 살기 확실히 편해. 미안하다 내 모든 상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