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표 내림표

아 다르고 어 다른 개념

by엉금

어깨와 허리에 침을 꽂은 채로 엎드려 있다. 현재 자리한 곳은 한의원 침대. 의도 무관하게 여러 곳을 방문했지. 침대도 다르고. 조명도 다르고. 파동 역시 다르다. 적절한 단어가 있을 법한데. 어휘력 한계로 일단 최선을 주장한다. 대신 구체적으로 풀면 ‘귀에 들어오는’. 이걸 핵심으로 짚겠다. 의사가 침을 놓기 전 안내하는 말소리. 다른 칸 환자가 침대에 누우며 뱉는 의성어. 그리고 보드라운 음악이다.


마지막은 병원에 따라 유무부터 갈렸던 기억이다. 아니 다 있던가. 턱을 괴고 멍하니 궁리해야겠다. 정확한 사실 전달을 위해. 음 안 떠오른다. 기억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다. 한데 이건 있지. 그것을 거의 항시 재생하고 있었다면. 내가 기억 못할 리가. 확실히 자주 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빈도 때문인지. 병원이든 매장이든. 어디서나 틀어져 있을 법한 소리인데. 유심히 집중하게 된다.


무언가 다르니까. 많이 낯익은 가요인데. 물론 장소 특성상, 원곡이 아닌 피아노로 변주된 형태다. 5분가량 지긋이 들었을까. 그래 쓰담쓰담. 후렴을 소처럼 소화하니 찾게 되는구나. 정체를 인지하니 그것이 파닥거리는 생선으로 다가온다. 악기의 전환은 탁월하다. 이런 신선함을 제공하는 데에. 유독 그게 피아노라 그럴까. 해당 음을 하나하나 짚으며 감상하는 자신이다.


막바지에 달하니 이색을 또 하나 발견한다. 원곡이면 당연히 내림음으로 들릴 텐데. 처음이라 단정할 수 있을 만큼. 올림음으로 인식된다. 샵으로 읽고 ‘우물 정’ 자로 쓰는 그거. 내림음은 플랫으로 읽고 알파벳 소문자 ‘비’로 쓰고. 이거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서양 기호를 한글로 풀어 설명하기. 음차가 떠오른다. 불란서, 사천성, 미리견. 이런 표기를 뽑을 때 들어간 수고의 질량. 선조들은 이를 감당했단 말인가.


감히 필자도 그럴 예정이라니. 아니 그래야 한다. 내림이나 올림 여부에 따라, 어떻게 그리고 왜 다르게 들리는지. 요걸 어찌 풀어낼 수 있을까. 문제다. 바느질 한 땀 한 땀씩 짚으면 끝도 없는데. 기역부터 히읗...은 아니고 시옷까지 적어야 할 판이다. 글 성격이 혼탁해질까 걱정될 수준으로. 설명문이 아니다 설명문이. 결국 ‘파닉스’는 건너뛸 수밖에. 전달하려는 바를 바로 바스락바스락 두드려야겠다.


시작부터 한 음 올라가는 후반 전까지. ‘쓰담쓰담’의 반주는 고민이 담겨 있다. 나긋나긋하게. 떨지 않고 긴장하며 속마음을 턴다. 후렴 역시 튀지 않아서, 기조를 유지한다. 천천히 달래주는 분위기라 발랄, 긍정, 환희와 동떨어져 있다.


내림음의 특성을 여기서 찾는다. 심정의 명도가 내려가도록 만들지. 그것의 사전적 정의는 말 그대로인데. 피아노 건반을 상상해 보자. 하얀 건반에서 왼쪽에 붙은 그곳으로 위치를 옮긴다. 즉 자리 하나를 ‘내려서’ 음을 바꾼다는 의미지.


올림음은 정확히 그 반대 원리다. 톡톡 튀고 일견 발랄하기까지 했다. '쓰담쓰담'에 담긴 이야기는 신파와 백 만년 떨어져 있다. 되레 후반은 기뻐하는 주인공 얼굴이 선할 만큼. 즉 이야기 자체는 ‘오름’쪽 부류다. 반주가 이래서 무섭다. 뇌를 뺀 상태에선 저절로 나도 모르게. 그것에 치우치게 되니. 가사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전체를 평하도록 만든다.


그럼 방금 전에는 왜. 미 플랫을 레 샵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 오히려 가사가 없었는데. 그거 하나에 집중하기 최적의 환경일 텐데. 내가 이마를 베개에 기댄 채로 감상해서. 이런 자세 따위가 요인은 아닐 텐데. 아. 알고 싶다. 감질은 실로 간만이다.


아쉬움을 뒤로할지언정 하나 건졌다. 이런 노래의 이런 가사를 배제한 상태로. 앞서 묘사한 ‘올려서'의 풍미를 체감했으니. 자의적인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다. 같은 음계인데 어떻게 받아들이고 듣는지. 그에 따라 각 느낌이 판이하다고. 희한한 일이다. 내리면 내려가고. 올리면 올라가고. 재미있는 우연이다. 처음은 이리 생각했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 음계에서 그치지 않고, 앞서 말한 악기도. 어쩌면 그걸 넘어서는 영역도.


이렇게 결론지을 줄 알았는데. 뒤로 할 수 없다. 그 원리. 무엇이었을까.